현실 외면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정안
취약계층 학생들이 피해 고스란히 떠안아
[고양신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사회의 비극을 모든 가치를 ‘계산 가능성’으로 환원하는 냉혹함에서 찾았다는데, 지금 정부와 재정 당국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대하는 시선이 딱 그러하다. 학령인구가 줄어드니 교육 예산도 기계적으로 깎아야 한단다.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맞춰 55년간 유지된 내국세 자동 연동 방식을 손질해 재정 효율성을 높이고 대학 경쟁력 강화, 첨단 인재 양성 및 평생, 고등교육 분야에 대한 전략적 재투자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탁상 위에서 두드리는 그 정교한 계산기 소리 속에 정작 교실 안 아이들의 숨소리는 빠져 있다.
도입하겠다는 새 개정안 산식을 가만히 뜯어보면 참으로 비정하다. 2026년 예산을 기준선으로 딱 못 박아두고 감소하는 학생 수 비율을 직접 곱하겠다고 한다. 반도체나 경기 회복으로 기대되던 안정적인 교육 재정 확충 기회는 원천 차단된 채, 예산 축소라는 결론을 정해둔 계산식이다. 전년도 명목 금액을 보전해 준다며 생색을 내지만, 물가상승률이나 매년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교직원 호봉 승급분(연 2.4조원)을 감안하면 매년 수조원의 교실 예산을 깎아내겠다는 소리와 같다.
더구나 부칙에 적힌 「미래대응기금 설치법」은 입법예고조차 안 된 유령 법안인데, 이를 전제로 개정안부터 밀어붙이는 절차적 파행까지 저지르고 있다. 정작 기금의 쓰임새에서 유·초·중등 교육을 빼버리고 교육감의 권한을 박탈하겠다는 대목에 이르면 한탄이 나온다. 초·중등 아이들의 밥그릇을 덜어내어 생색은 딴 데서 내겠다는 지방교육자치에 대한 명백한 침해다.
현장을 모르는 이들은 “아이들이 줄었으니 돈도 덜 드는 게 당연한 산수 아니냐”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교실의 진실은 다르다. 학생 수가 줄어도 교실 난방을 절반만 틀 수 없고, 소규모 학교일수록 아이 한 명을 온전히 품기 위한 기본 인프라 비용은 오히려 늘어난다. 돈이 줄어든다고 해서 지방과 농어촌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너희는 인원수가 적으니 축소된 교육 환경을 받아들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날의 학교는 지식 전수를 넘어 기초학력 보장, 특수교육, 다문화 지원, 심리·정서 치유, 온종일 돌봄까지 떠안고 있다. 여기에 AI 디지털 맞춤형 교육 인프라라는 시대적 요구까지 겹쳐 있다. 예산이 팽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학교라는 공간에 맡겨놓은 책임과 부채의 크기가 커진 것이다.
예산을 깎아낼 때 그 파편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이는 사교육으로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집 아이들이 아니다. 공교육이 유일한 사다리이자 안식처인 취약계층 아이들이다. 초·중등 예산의 둑을 터서 대학 재정을 채우겠다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 발상을 멈추어야 한다. 대학 재원이 필요하다면 마땅히 별도의 국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 예산 운영의 정석이다.
헌법 제31조가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명시한 이유는, 교육이 당장의 성과를 내는 소비가 아니라 공동체의 내일을 도모하는 가장 긴 호흡의 투자이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성을 짓밟고 교실을 흔드는 GDP·학령인구 연동 산식을 철회하고, 현행 내국세 20.79% 연동 방식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줄어드는 아이들의 숫자를 핑계 삼아 미래로 가는 길목을 막는 사회에는 구원이 없다. 오늘도 교실 문을 열며 생각한다. 숫자와 효율이라는 차가운 언어 뒤에서, 우리가 정말로 잃어버리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과 배움의 가치가 무엇인지 국가에 무겁게 물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