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고양상공회의소·고양연구원 주최
제7회 고양혁신전략세미나
국제기구 유치 전문가들 현실 진단
정주 여건·국제기구 집적도 열세 지적
의료데이터·킨텍스·대학 역량 결집
“장밋빛 전망보다 구체적 실행계획을”
[고양신문] 유엔(UN) 글로벌 AI 허브 유치를 둘러싼 지방자치단체 간 경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고양시가 장밋빛 전망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경쟁력을 점검하고 실질적인 유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왔다. 인천 송도와 서울에 비해 국제기구 집적도와 외국인 정주 여건에서 불리한 만큼, 고양시만의 강점을 구체적인 사업과 실행계획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양시와 고양상공회의소, 고양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제7회 고양혁신전략세미나’가 지난 20일 오전 덕양구 창조혁신캠퍼스 성사에서 열렸다. ‘국제기구 유치 경험과 시사점’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민경선 고양시장과 이상헌 고양상공회의소 회장, 김남준 고양연구원 부원장을 비롯해 외교·국제기구·의료·대학·마이스(MICE) 분야 전문가와 지역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이번 세미나는 국제기구 설립과 유치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 고양시의 강점뿐 아니라 현실적인 약점까지 짚고, 정부 평가 기준에 대응할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12월 최종 후보지 선정… 공간과 실행력 관건
민경선 시장은 정부 입지 공모 공청회에서 확인한 평가 방향과 추진 일정을 공유했다. 정부의 평가 기준은 △AI 허브 핵심 기능 수행 역량 △정주 여건 △지방정부의 추진 역량과 실행계획 △국가 전략 부합성 및 정책 기여도 등 4개 분야, 19개 세부 지표다.
정부는 10월 말 공모를 시작해 후보지를 3곳으로 압축한 뒤 현장 실사를 거쳐 12월 말 최종 후보지를 선정할 계획이다. 내년 7월 약 40명 규모로 출범하고, 2년 안에 300~400명 수준으로 확대하는 정부의 청사진도 안내했다.
민 시장은 “고양시가 인천 송도와 경쟁하는 구도”라며 “짧은 기간 안에 승부를 가려야 하는 만큼 즉시 입주할 수 있는 전용 공간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양시는 일산 소노캄 호텔 인근 경기도 기부채납 건물을 제공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학교가 시 안에 없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인근 지역 학교라도 교통 편의성이 확보되면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정부 답변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상헌 고양상공회의소 회장은 대기업 부족 등 고양시 산업 생태계의 한계를 지적하며, 국제기구 유치를 관련 산업과 일자리 창출, 킨텍스 중심 마이스 산업의 도약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도·서울보다 불리… 현실 직시해야”
기조발제에 나선 정태용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 근무 경험, 일본 IGES와 한국 GGGI 설립 참여, 송도 녹색기후기금(GCF) 유치 실무 경험을 토대로 고양시가 직면한 과제를 짚었다.
정 교수는 먼저 글로벌 AI 허브의 법적 지위와 운영 체계가 명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식 유엔 기구 설립은 의사결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조약 기반 국제기구 역시 출범까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단독 부담에 의존하기보다 프랑스나 중견국 협의체인 믹타(MIKTA) 등과 협력해 국제적 참여 기반을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의 추진 체계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과거 GGGI와 GCF 유치 당시 청와대가 직접 주도해 범정부 역량을 결집했던 것과 달리, 현재의 국무총리 주재 범정부위원회 체제는 부처 간 장벽을 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고양시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정치력을 활용해 사업을 국가적 의제로 격상하고, 2028년 한국의 G20 의장국 활동을 외교적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주 여건은 더욱 냉정하게 평가해야 할 분야로 꼽았다. 국제기구가 집적된 송도와 서울에 비해 고양시가 객관적으로 불리하다는 판단이다. 대형병원 보유 여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외국인 직원과 가족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영어 진료, 국제학교 접근성, 교통과 주거 등 생활 여건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정 교수는 범시민추진위원회와 상공회의소가 결합한 협력 모델은 고양시만의 차별화된 자산으로 평가했다. 지역사회 참여를 실질적인 실행 역량으로 연결한다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데이터·마이스·항공우주… 고양만의 강점 구체화해야
패널토론에서는 정부 평가 지표에 대응하기 위한 분야별 전략이 제시됐다. 홍진욱 전 주싱가포르 대사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전문가들은 의료 데이터와 킨텍스, 대학, 항공우주 인프라 등을 유치 전략으로 구체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구선미 주한룩셈부르크 대사관 상무수석은 룩셈부르크의 국제기구 집적지인 키르히베르크 사례를 소개하며, 고양시와 룩셈부르크 국립보건원(LIH)이 추진 중인 헬스 데이터 연계 프로젝트를 해외 협력 역량의 강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최귀선 국립암센터 암관리사업본부장은 국립암센터가 국가암데이터센터로서 500만 명 이상의 암 관련 데이터와 표준화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활용해 개발도상국의 보건의료 역량 강화와 AI 기반 암 관리 협력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진형 킨텍스 경영부사장은 프랑스 파리의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 F’를 참고해 킨텍스에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 ‘스테이션 K’를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AI 스마트팜 등 실제 기술을 체험하고 검증할 수 있는 실증형 쇼룸을 구축해 개발도상국 관계자와 기업의 참여를 끌어내자는 구상이다.
성정석 동국대 BMC 부총장은 한국항공대의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사업과 동국대의 AI 관련 정부 사업 등 기존 성과를 체계적으로 취합해 평가 자료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의 연구 성과와 인력을 개별 기관의 실적에 머물게 하지 않고 고양시 전체의 역량으로 묶어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재완 한국항공대 교수는 대학의 항공우주 인프라를 활용해 유엔우주업무사무소(UNOOSA) 등과 연계한 위성·기후재난 AI 협력을 제안했다.
단독 유치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대안 마련도 과제로 제시됐다. 바이오·의료 분야 특화 국제기구나 협력 기능을 고양시에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해 유치전의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봉희 이클레이(ICLEI) 한국사무소 부소장은 장항습지 등 고양시의 생태 자원을 강점으로 꼽으면서도, 성별·세대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재생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제시하는 등 국제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를 유치 전략에 담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영표 글로벌 AI 허브 유치 고양 범시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지역사회에 퍼진 현실적인 우려를 전했다. 그는 고양시가 송도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이 적지 않다면서도, 철저한 준비를 통해 강팀을 꺾는 ‘업셋’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 위원장은 핵심 전략을 조속히 확정하고 전담 실행 조직을 구성해 평가 항목별 체크리스트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진욱 전 대사도 불확실성을 한국과 고양시가 국제 의제를 선점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