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캐서 튀김 해 먹을까?"
일요일이었다. 텔레비전에, 컴퓨터에 매달려 있던 아이들을 채근해서 일으켜 세운 것은 어머니의 툭 던져진 한마디였다. 창밖에 햇살이 따뜻해 보였다. 나뭇가지를 살포시 흔들며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실긋 곁눈질하는 내 마음도 가벼웠다. 봄이었다.

"냉이가 아직 있을까? 작년에도 결국 걷기만 하다 돌아왔는데…"
"아무렴 없을라고.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가 거기지. 약수터 쪽으로 길이 새로 났던데 거기 건너 가보자."

작년 이맘때도 냉이를 캐러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왔었다. 그 우려를 들은 어머니는 없으면 산책하는 셈 치지 하며 우리를 어르셨다.
건강 때문에 강원도로 들어가 몇 년을 살던 어머니는 병원 다녀오려면 몇 시간이 걸리는 강원도를 떠나 교통도 좋고, 공기도 좋고, 더구나 아이들이 자라고 있으니 아이들에게도 안락해야 할 곳을 찾아다니다가 몇 년 전부터 원당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나 또한 서울의 변두리에서 자란 어린 시절 덕분이었을까? 아파트 밀집하고 공기 매캐한 도시에서 10여년 살다보니 시골이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한 걸까? 어린 시절 자라던 그 동네의 모습을 찾아 온 것이다. 산이 있고, 골목이 있고, 하늘이 넓은 곳. 비포장도로에서 날리는 먼지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공기가 순수한 동네였다. 일이 있어 서울을 나갔다 돌아올 때 제일 먼저 ‘도착 했구나’하고 몸으로 느끼는 것은 맑고 싸한 공기였다.

아이들과 함께 새로 생긴 아파트 뒤를 돌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황토가 몸을 드러낸 오솔길로 들어서며 아이들에게 ‘이게 황토야. 색깔 이쁘지?’라고 말을 걸어 보지만, 황토는 안중에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망아지처럼 신난 아이들을 바라보며 가슴 가득 산의 향을 들여 마셨다. 봄이라고 해도 아직 공기는 눈물이 고일만큼 차가웠다.

 냉이가 자랄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굴다리를 지나가니 작은 우편함이 보였다. ‘00농장 우편물만 받습니다’ 개를 키우던 곳인 듯 컹컹거리는 소리가 먼저 인사를 하고, ‘이곳에 냉이가 있을까? 없을까?’ ‘이게 냉이야?’ 물으며 아이들은 마냥 함빡 웃음을 널고 있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 가자.’ 할 때였다.

“냉이다!”
지나쳐 온 길가에 냉이가 자라고 있었다. 왜 못 보았을까? 냉이가 보이자 아이들은 저마다 나뭇가지 꺾어들고, 칼 찾아들고, 봉지 담당 정하고, 냉이 찾아 알려주는 사람 정하고 냉이를 캐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앉아 한 시간 가량 냉이를 캐었다.

어머니와 머리를 맞대고 쑥이 더 자라면 또 오자는 말을 하며 봄을 캐었다. 냉이뿌리가 제법 살이 오동통했다. 양지바른 곳에 살짝 숨어 보일 듯 말 듯 자라는 냉이를 보며 우리 아이들도 자라는지 모르게 커서 어느 날 문득 놀라게 하겠지…

저녁상에 올라 온 냉이튀김. 우리가 캤다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커다랗게 벌린 입 속으로 봄이 들어가는 것을 본다. 아무렇게나 걷다가 만날 수 있는 봄 향기가 가득 퍼지고 있었다.

김원경/동화작가, 고양시문인협회 사무국장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