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습지 품에 안기까지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냉전시대 산물 철조망 걷어내고 탐방로, 탐조대 설치 계획고라니, 고리니2, 고라니3, 고라니4(가로로 연속으로 배치해 주세요) : 사람의 인기척을 알아채고 도망가는 철책선 주변의 고라니. 큰기러기떼 : 희귀종인 큰기러기떼, 흰바오리떼 등 수십마리의 조류가 한강 수면에서 유유히 떠 다니고 있다.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말똥개의 배설물을 자양분으로 해 자라고, 말똥개는 버드나무숲이 백로 등 말똥개의 천적을 막아주기 때문에 이곳에 서식한다. 제두루미 : 멸종위기종인 제두루미 10마리 정도가 유유히 걷고 있는 게 포착됐다. 군사지역인 탓에 사람들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태계의 보고가 된 땅. 장항습지. 장항습지는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한강 하구 6곳 중 가장 내륙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도심과 가장 가깝다. 철조망 바깥 자유로에는 자동차들이 24시간 쌩쌩 달리고 있고 조금 더 내륙으로 가면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가장 도시적인 것과 가장 자연적인 것을 가르는 그 경계는 다름 아닌 철조망이었다. 남과 북이 서로 총을 겨누던 냉전의 산물 그 철조망이 걷어진다고 한다. 세워진지 무려 40여년 만이다. 철조망은 무장공비 침투 대비를 위해 1970년에 세워졌던 아픈 역사의 상징이었다. 장항습지 쪽에서 보면 가장 바깥에 있는 1차 철조망은 완전히 걷어내고 안쪽에 있는 2차 철조망은 일부분이 걷어진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군부대의 허락을 받고 신분증을 맡겨야만 철조망 안쪽에 있는 장항습지에 발을 내디딜 수가 있었다. 광활한 갈대숲과 버드나무숲,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논이 보이는 장항습지는 그 안에 철새와 멸종위기 동식물의 피난처를 넉넉하게 제공해주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제일 먼저 맞이해 준 것은 대여섯 마리의 제두루미떼였다. 200m 정도 멀리서도 의젓이 걷고 있는, 멸종위기의 열 마리 정도의 제두루미 떼가 육안으로 포착됐다. 동물원이 아니라, 자연 다큐물을 방영하는 TV 브라운관이 아니라, 실제로 본 제두루미떼는 원래 이곳이 자기의 땅이라는 듯 의젓하게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일행을 야생동식물의 서식지에 들어왔다는 걸 실감케 한 것은 고라니들이었다. 일행이 차를 몰고 가다가 인기척을 느끼면 고라니들은 도망갔다가 다시 한번 우리 일행을 뒤돌아보곤 했다. 송곳니가 튀어나온 수놈과 암놈이 붙어 다니는 것들도 있었다. 고라니들은 놀랍게도 철조망이 있는 언덕까지 올라가 이삭삭초, 괭이사초, 그령, 스크령, 개피 같은 연한 풀들을 뜯어먹고 있었다. 이곳 장항습지에는 무려 100여 마리의 고라니떼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일행중 한 명이었던 박평수 고양환경운동연합 전집행위원장은 “장항습지는 고라니와 말똥게 서식밀도가 가장 높고 버드나무의 최적 굴락지로 손꼽힌다”고 말했다. 일행이 탄 차가 지나가자 물위에 떠 있던 수십 마리의 큰기러기떼들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경계태세를 취하였다 어느 순간 큰기러기떼가 한꺼번에 비상하는 광경이 목격됐다. 그 주위로 멧비둘기 몇 마리도 날아가고 있었다. 멀리서는 흰비오리떼가 역시 한강수면을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이 곳 장항습지는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뭍과 물과 하늘에서 각종 생명체들이 살아 숨쉬게 하는 땅이었다. 장항습지는 인간이 어쩌지 못했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였다. 행여 생명체가, 더군다나 멸종위기에 있는 생명체가 더 이상 고향을 읽어버리지는 않을까라는 생각과, 그러면서도 이러한 희귀종의 서식지를 가까이 두고 몸으로 체험하고 싶어하는 바램을 함께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철조망이 걷어내고 장항습지를 고양시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는 소식에 한편은 반갑고 한편은 우려스러운 이유다. 철책선을 걷어내고 대신 한강유역환경청은 장합습지에 탐방로와 탐조대를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벌겋게 녹이 슨 채 흉물스럽게 방치된 철책선은 이제 걷어낼 때이지만 그에 따른 지혜로운 대책도 함께 세워야 할 것이다. 장항습지의 동식물들은 현재 야생으로 살아가지만, 사람이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생태계를 교란한다면 이곳은 야만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멀찍이 도망가서야 우리 일행을 뒤돌아보는 고라니의 눈망울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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