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승호씨가 마침 격일제 중 쉬는 날이어서 한자리에 모여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신도동 삼송역 8번 출구 앞길에서 좌측으로 가다가 오른쪽 첫 번째 골목 삼송시장(구) 길을 따라 오르는 길목. 좌우로 울퉁불퉁하게 삐뚤어진 11곳의 골목 입구를 지나다 보면 맞은편에서 사람이 오면 한쪽 귀퉁이에 붙어 서로 비켜가야 할 정도의 좁은 곳도 있다. 이곳을 지나면 신도동 숫돌고개 옆 유일한 달동네 마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어르신들의 걸음으로 5분 정도 더 오르면 좌측 편에 이 마을 식료품 공급처인 구멍가게 원인상회가 나온다. 여름이라면 어르신들은 나무의자에 걸터앉았다가 지팡이를 다시 고쳐들며 쉬어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5분쯤 더 오르면 달동네 공터에 도착하게 된다. 공터 아래를 내려다보니 집들이 모두 올망졸망하고 다 그만 그만하다. 시선을 올려 수평으로 바라보면 북한산 자락이 한눈에 보이는 산동네다. 사는 분들의 말씀으로는 신도동에서 제일 먼저 달 뜨는 것을 볼 수 있고  늦게까지 달구경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공터 위로 부대 밑 산턱을 개간해 추수를 끝낸 알량하게 수확을 할 수 있는 손바닥만한 밭 위에 그들이 손수 협동으로 공사장에서 폐 각목을 주어다 만들었다는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하우스 안에는 무엇에 쓰던 것인지 폐 각목을 때는 난로로 변신한 철통에서 훈기를 내고 있었다. 이곳도 임시다. 하절기에는 밭주인이 농사짓도록 철거를 한다. 그때는 달동네 보금자리는 임시로 길옆 나무그늘에 뚝딱 엉터리 원두막을 만들어 더위와 비를 피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원두막 지붕에 우산을 펼쳐 그 아래 옹기종기 모여 인생 역경을 풀기도 한다.

조승호씨(53세)는 1995년부터 신성교통에서 버스기사로 일을 하다가 사정상 몇 년 쉬고 다시 신성교통에서 일을 하고 있다. 원당에서 인천공항을 왕복하는 3200번. 자리에 모인 나머지 사람들은 건축노동, 써비스업, 장사꾼, 격일제경비 등 하는 일이 각양각색이다. 조승호씨가 쉬는 날 오후가 되면 누가 말 하지 않아도 한사람 두 사람 자신들의 집에서 먹는 작은 음식이라도 한가지씩 가져와 가벼운 술상과 밥상을 만든다. 여기에 단골이 된 독거노인 어르신들도 친구처럼 부모처럼 대해주기 때문에 자주 오신다.

김영춘 할머니(73세)는 삼송동 달동네에 40년째 살고 있는 토박이다. 15년 전만 해도 음식점을 했었다. 몸이 조금씩 아프더니 지금은 귀가 잘 안 들리고 심장에도 이상이 있어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아무 일도 못하는 상황이라 장애 수당 3개월에 5만원과 구청에서 기초생활보조금으로 19만원을 받아 치료비와 약값을 하고나면 힘들다. 그래도 지난해까지 사회복지과와 동사무소 직능단체 등에서 가끔 쌀과 연탄 김치 등 가져다 줘 그런대로 지냈지만 금년에는 경기가 안 좋아 그런지 도움을 받지 못해 안타까운 처지에 있다.

달동네에서 50년을 살아온 이순희 할머니(78세)는 자녀들이 모두 외지에 살고 홀로 있어 독거노인이나 다름없다. 외로움을 달래려 이틀에 한번 이 곳에 온다. 나이 들어 귀찮아할까 걱정 했지만 차별하지 않고 작은 음식 하나라도 나누어 먹는 정이 있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달동네의 어려움은 나뭇잎이 활짝 피는 봄부터 가을까지 보안등이 부족하여 어두침침하다는 점이다. 지나가는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 어두운 곳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도시가스가 바로 100m 아래까지 공급됐는데 이곳은 하수관 때문에 굴착이 어렵고 다른 사정이 있는지 가스공급 공사를 하지 않았다.

도로는 개인소유로 된 곳이 있어 70년대 시골길처럼 비포장이다. 비가 오면 도로가 파여 다니기가 불편하다. 겨울이면 산동네 언덕길이 빙판이 되어 차는 고사하고 사람들도 종종 걸음을 걸으며 조심해도 자주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한다.

못나고 없어서 부족한 것이 많지만 달동네 사람들은 그 어느 부자동네 사람들과 재벌이 부럽지 않다. 공기 좋고 인심이 좋으며, 다른 곳보다 빨리 뜨고 늦게 기우러지는 달만 봐도 배부르다. 신도동 달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한자리에 자주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깊은 정이 있어 이러한 모습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한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