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송추계곡남능선을 타고 오봉을 거쳐 신선대에 올랐다가 송추폭포쪽으로 내려왔다. 한  달 전에 이 날을 잡은 것은 봄 산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산은 아직 겨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등산로 주변엔 마른 잎사귀만 뒹굴고 앙상한 겨울나무만 볼 수 있었다. 봄꽃은커녕 물오른 나뭇가지조차 보기 힘들었다. 한랭전선이 내려와 자리를 틀고 앉아 물러가지 않아서 봄이 더디 오고 있다는 소식은 벌써 접했지만 자연을 직접 대하니 백 마디 말보다 더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인간세상의 봄도 자연의 봄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치상의 계절은 벌써 봄이 되어야 하는데도 한랭전선이 자리 잡고 물러가지 않으면 아마 그 봄은 더디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년마다 봄은 오듯이 결국 인간세상의 봄도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현실의 고단함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선거는 봄 장사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후보는 봄날을 공약하고 이것을 유권자는 선택하니…

이번 총선을 보면서 유권자들이 후보선택 기준으로 예전의 정당선호에서 후보의 능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전이되어 가는 움직임이 생긴 것은 바람직한 발전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마치 상품을 사는 사람이 메이커보다도 그 상품의 질을 따져 사겠다는 것이니 앞으론 더욱 좋은 후보를 공천할 수밖에 없는 쪽으로 발전되어 갈 것 같아서이다.

정치도 사람이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기느냐가 중요하다. 언행일치가 되는 사람을 뽑아 놓으면 보람이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내내 후회하게 되는 것이 선거이다. 봄을 앞당기는 일꾼들이 되어주길 기대하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주역의 진괘(晉卦)에 직(職)에 나아간 사람에게 교훈이 되는 대목이 있다. “뉘우침이 없으려면 잃고 얻음을 근심하지 말 것이니, 감에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으리라.”는 구절이다. 잃고 얻음이란 스스로에게 이득이 있고 없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스스로에게 이득이 있느냐 없느냐를 근심하지 않고 바른 길을 가면 이롭지 않은 일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만약 바르지 못하면서 높은 자리만 탐해 그 자리에 있으면 석서(?鼠)의 상이라 위태롭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석서가 몰래 음식물을 갉아 먹을 때 사람이 두려워 눈치를 살피는데, 이 모습이 마치 잘못을 저지르며 자리만 꿰차고 있는 공직자가 늘 불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얼마 전 필자의 스승이 열반에 드시며 임종게를 남겼는데, “구십년 삶이 허공꽃이다.”는 구절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한 글 귀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봄날을 앞당기는 삶일까?

작은 돌다리나마 놓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이 개천 물속에 들어가 돌다리를 놓으면 최소한 그 개천을 건너는 사람들은 바짓가랑이를 걷는 불편은 없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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