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고양당’을 만들자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언론이 연출한 한편의 정치쇼를 본 듯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여?야 대통령 후보와 후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 모든 국민 앞에 맹세했던 지방선거 공천제 폐지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 공약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정치인, 아니 지식인 안철수는 약속을 어기는 정치인으로 매도되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래도 약속하나만은 잘 지키는 정치인 이라고 믿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에 대해 오리발을 내민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당이 결정해야 할 문제란다. 새누리당은 당론을 몇 번이나 뒤바꾸며 최종적으로 공천제 폐지 공약을 폐기했다. 그런 새누리당이 새정치연합이 투표라는 형식을 빌려 무공천 결정을 번복하자 ‘약속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딱,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욕하는 꼴이다.

새정치연합 역시 실망이다. 안철수 대표가 대통령을 찾아갔을 때 대부분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그저 비난하는 입장이었다. 정치도 모르는 안철수 대표가 또 일 저지른다는 입장, 무공천은 말도 안 된다는 기존의 입장에 못 박는 일 외에 한 일이 없다. 대통령이 안 대표를 만나주지도 않자, 무공천을 폐기할 수 있는 투표라는 대안을 내놨다. 적어도 양심 있는 정당이라면, 당론으로 결정한 공천제 폐지를 위해 온몸으로 한번 싸우기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닌가. 새누리당이 공천제 폐지 공약을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새정치연합만 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며 무공천하는 것은 선거 결과의 측면에서 무모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속내를 너무 드러냈다. 새정치연합 국회의원들은 아마 새누리당이 먼저 공약을 파기 했을 때, 묻어가면 되겠구나 안도했을 것이다.

 도덕적 수위는 약간 다르지만, 두 정당의 공통된 특징은 지방선거의 공천제 폐지를 근원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두 정당이 아니라 두 정당의 국회의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공천제 폐지를 대통령 공약으로 제시했던 이유는 국민의 표를 조금이라도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사탕발림이 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전국지들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도 없는 소모적인 논쟁이 일단락 됐다고 보도했다. 지역의 정당 예속을 가속화키는 정당공천제가 지방자치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고 주장했던 목소리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언론은 새누리당이 공천제 폐지 공약을 파기 했을 때는 조용히 지나갔고, 새정치연합이 무공천을 입장을 번복했을 때는 소모적인 논쟁이 일단락 됐다고 보도했다. 유독 안철수 대표에게만은 칼을 갈았다. 약속의 정치인 안철수 대표가 약속을 어기는 정치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다. 

 여?야 국회의원과 중앙언론을 모두 싸잡아서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럴 힘도 없다. 왜 이런 어이없는 결정과 평가가 번복되는지 궁금할 뿐이다. 지역의 국회의원들만 봐도 그렇다. 김현미 의원, 유은혜 의원, 김태원 의원, 심상정 의원. 정당을 떠나 얼마나 쟁쟁하고 실력 있는 의원들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천제 유지에 이들이 발 벗고 나선 것은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선거 토대는 지역이지만 정치적 목표는 중앙이다. 지역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기 위한 정치적 발판이 될 수는 있으나 그들의 정치적 목표인 중앙권력이 약화되는 것은 근원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게다가 힘들이지 않고 시의원 도의원을 지역조직의 조직원으로 부릴 수 있는데, 누가 이를 마다할 것인가. 지식인 안철수라면 몰라도 정치인에게 불가능한 결정이다. 중앙언론도 마찬가지다. 자방자치가 강화되면 중앙언론의 힘도 분산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각자의 토대위에서 의식이 결정되며, 이는 생존의 욕구와 관통한다. 당연하며 무시될 수 없는 욕구이다.

안타까운 점은 지역이 정치적 발판이 아니라 지역 자체를 토대요, 목표로 두고 있는 지역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이번 공천제 정치쇼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대 여론은 마치 없는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 공천제 폐지는 어이없고 황당한 공약이었으며, 그래서 공천제 폐지는 앞으로 거론조차 하기 어렵게 됐다. 가장 답답한 대목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자. 새정치연합 무공천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 치러진 여론조사 결과부터 보자. 무공천 폐기를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이 사방팔방 당원을 동원해 투표를 독려했는데도 당원 여론조사 결과는 무공천 반대 57%, 무공천 찬성 43% 였다. 반대 57%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공천 찬성이 43%나 나왔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당장 무공천 되면 선거에 불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공천 입장을 고수한 당원들이 그렇게 많았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지역이 토대이자 정치적 목표인 지방의원과 지역당원들의 욕구인 것이다.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무시해도 좋다. 여론조사 문항 자체가 무공천 반대 입장에 유리하게 조작됐으니, 의미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3%의 국민이 무공천을 원했다. 국민은 지역이 토대인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하기 위해 지방자치의 성장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지역정치의 독립적 성장을 위해 정당 공천제를 일시적으로 폐지하는 실험조차 거부한다면, 지역은 협상과 타협보다는 독립노선을 걸어야 한다. 지역에 토대를 두고, 정치적 목표 역시 지역에 두고 있는 지역주의자들이 뭉칠 수 있는 지역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차라리 지역정당을 만들어 오직 지역과 지역민을 위해 매진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나라를 바꾸는 일은 요원하지만, 지역을 바꾸는 일은 더 쉽고 빠르다. 하나 둘 새로운 지역정부를 만들어가는 일이 곧 나라를 바꾸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스스로 전국정당으로 성장해도 좋고, 전국정당과 네트워크 해도 좋다. 둘 다 기존 정당이 무시할 수 없는 지역 권력이 될 것이다. 국회의원이 지역의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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