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만든 대덕동 쌍굴

선로도 없이 지금껏 방치
“역사적 보존가치 있어”
덕양구 대덕동에는 쌍굴이 있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정성화씨는 “왜정 때 만든 쌍굴인데, 보급 기차가 몇 번 다니는 것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이 쌍굴은 우리나라를 강점했던 일본이 중국과의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며 보급선이 필요하여 만든 철도용 터널이다. 하지만 1945년 전쟁에서 지면서 보급선이 필요 없게 되었고 그 후 한동안 폐쇄되었다.
쌍굴 앞에서 옻닭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민원씨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이 서울역에서 평양과 신의주간 특선 열차로 운영하려고 1943년~1944년 사이에 굴을 완공했는데, 1945년 해방되서 일본인들이 쫓겨가자 선로를 놓지도 못하고 이제까지 방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쌍굴은 아래위로 두 개가 있는데 위에 있는 굴은 철도를 모두 걷어서 도로로 이용하고 있다. 출근 때는 화전에서부터 수색까지 몹시 막히기 때문에 이 길을 아는 이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물 정도로 이용량이 많다.

아래쪽에 있는 굴은 철로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현재 폐쇄되어 있다. 막아 놓은 부분을 치우고 그 안에 들어가 보니 한여름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냉장고 바람이 불고, 철로가 있는 부근까지 찰랑찰랑 물이 차 있다.
시원한 물에는 미나리가 쭉쭉 자라있다. 인근에서 추어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창춘자씨는 “굴 안에 물이 나오는 작은 물구멍이 두 군데 있다”며 “그 물웅덩이에 계속 물이 흘러들어 미나리가 잘 자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여름이면 가마니를 가지고 가서 깔고 눕기도 하고, 도시락을 싸와서 먹기도 했다.
한 때 대학생이라는 사람들이 와서 이 곳 굴에서 유리병에 버섯을 키우기도 했고, 마을 주민이 엿기름을 길러 팔기도 했다.
창춘자씨의 딸 정인숙씨는 “여름이면 물이 더 시원했고, 장마철이 되면 키조개, 미꾸라지를 잡아먹기도 했다”고 한다. 정인숙씨의 할머니가 1936년부터 주점을 운영하던 곳이 쌍굴과 가까워서 신성일, 고두심, 최민수, 독고영재 등 많은 영화인을 볼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철근 없이 지어졌다는 쌍굴. 이민원씨는 “항공대학교 쪽에서 도로가 나면서 이 굴을 허문다는 소문이 있다”며 “이런 역사적인 장소는 보존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쌍굴이 지금은 방치되고 있지만 역사유적지나 문화공연장소로 활용된다면 고양시와 서울시가 인접한 이곳이 또 다른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