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도시 고양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인간적인’ 도시,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떤 곳일까. 경제적 번영만큼이나 최근 주목받고 있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인권’이다. 일상생활에서의 인권보호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행복지수와도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성 시장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인권, 평화, 평등교육의 확대로 사람중심의 인권도시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2월 민선6기 핵심정책 워크샵을 통해 인권도시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마련했다.
인권도시는 왜 필요하며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번 기획에서는 인권도시의 등장배경과 의미, 타 지자체 사례와 고양시 인권정책의 현 주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권 현안, 도시 차원에서 해결
인권은 ‘좌’와 ‘우’라는 사상과 이념을 넘어서 국제 사회가 동의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이를 반성하기 위해 유엔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했다. 유엔은 이후 이를 바탕으로 인종차별 철폐, 성차별 철폐, 이주노동자 보호, 장애인 권리에 대한 조약을 구체화했다. 소위 말하는 ‘국제인권레짐’이 형성된 것이다.
인권도시는 이러한 인권레짐을 사람들이 생활하는 지역적 공간인 도시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인권의 지역화’의 과정에서 함께 제기됐다. 특히 전 세계적 차원의 급속한 도시화, 분권화 과정 속에서 도시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양극화, 차별문제 등 다양한 인권현안들을 도시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하면서 인권도시에 대한 논의는 최근 국제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부터 진주, 울산, 광주 지역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통해 인권도시를 모색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2012년 4월 현병철 위원장 체제의 국가인권회가 인권조례표준안을 마련 및 권고하면서 전국 자치단체에 인권조례가 크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인권보편화·양극화해결·시민참여
인권도시는 말 그대로 인권과 도시가 결합된 개념이다. 인권도시 전문가인 우필호 인권도시연구소장은 인권도시에 대해 “인권이 도시의 정치, 경제, 문화, 행정 전반에 걸쳐 작동되는 곳으로 볼 수 있고, 인권이 일정한 법적·관행적 특성을 갖게 되는 지역 공동체 사회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권도시를 추진한다는 것은 고양시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필호 소장은 크게 세 가지로 정의한다. 첫 번째는 인권의 보편화 및 확대. 우 소장은 “시민들이 겪고 느끼고 호소하는 인권 문제를 구체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도록 시민참여를 통해 행정 및 구제절차를 규범화하고 다양한 인권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으로는 양극화 문제, 삶의 질 하락 등 사회문제에 대한 지역사회차원의 대응이다. 도시가 구성원의 인권증진에 어느 정도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시민들의 실제적인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필호 소장은 “가령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시민보행권을 중시해 도로 폭을 줄인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정책 전반에 인권가치를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인권도시는 시민참여와 공동체적 가치의 복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인권도시는 인권의 가치를 바탕을 시민의 참여와 연대, 협력을 통해 공동체적 삶을 복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시민인권옴부즈만 도입한 서울시
인권도시가 행정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민선5기 지방자치단체가 출범하고 나면서부터다. 광주광역시, 서울특별시, 서울 성북구, 울산 동구 등 일부 뜻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지자체 차원의 인권 정책을 수립, 추진하면서 인권도시를 표방하고 나섰다.
2012년 6월 ‘인권증진기본조례’를 제정한 성북구는 인권도시의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인권증진기본조례는 주민이 생활 속에서 누려야 할 인권을 행정에서 보장하는 장치로서 활용된다. 인권도시 정착을 위해 인권영향평가제도 도입을 의무화한 것도 눈여겨 볼 부분.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투표소나 샛강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물론 새로 짓는 공공시설에 대해서도 차별 안전 환경 등 인권요소를 평가해 주민에 최적화했다. 이처럼 행정과 제도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는 인권영향평가 도입은 전국 지자체 중 첫 사례다.
서울시의 경우 2011년 제정된 인권기본조례를 바탕으로 인권행정을 수행하는 인권센터(인권담당관), 인권침해 구제를 전담하는 시민인권보호관, 인권 거버넌스 기구인 인권위원회와 시민인권배심원 등 인권 전담기구가 마련됐다. 인권위원회에는 심의·자문역할에 더해 ‘정책 등의 개선권고’ 기능을 부여했다. 지난해 다산콜센터 상담사 인권침해사건 당시 서울시 인권위에서 보호대책을 마련하도록 권고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고양시, 인권헌장·전담부서 과제 
고양시는 앞서 2013년 1월 8일 ‘고양시 인권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2월 열린 민선6기 핵심정책 토론 자료를 통해 인권기본계획 수립 등 인권도시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인권헌장 제정, 인권영향평가제 등 인권인식 확산사업에 총 4500만원의 예산이 책정됐으며 오는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인권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연말까지는 고양시 인권헌장까지 제정한다는 방침이다.
우필호 소장은 “고양시가 준비 중인 인권체계에는 인권교육의 효율적 실시를 위한 관계협의회 구성과 같은 타 지자체에는 없는 고양시만의 특화된 기구도 있어 잘만 활용한다면 내실있는 인권교육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행정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인권침해 구제 기능이 마련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인권도시 고양을 위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 ▲인권헌장 제정과정에서 시민참여 및 권리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을 것 ▲인권기본계획에 예산조달방안과 전 행정부서 참여를 명시할 것 ▲인권교육을 전 공무원에게 1회 이상 의무화 할 것 ▲인권 전담부서 및 인권센터 마련할 것 ▲도시정책을 인권 친화적으로 재설계 할 것 등을 제시했다.


유왕선 금정굴인권재단 운영위원장은 “인권기본계획을 수립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문성 있는 인권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인데 아직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칫 주민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닌 단체장의 전시성 사업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며 “지금부터라도 고양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정책추진을 좀 더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유왕선 운영위원장은 “올해 안에 기본계획을 마무리하고 인권헌장까지 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며 “올해는 인권위원회 구성과 인권교육 등을 통해 기반을 탄탄히 다진 뒤 내년부터 본격적인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우필호 소장 또한 “인권헌장을 너무 급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서 우리의 권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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