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에 사는 문학작가를 찾아서 4. 소설가 김중혁

 

▲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백팩을 메고 나타난 김중혁 작가는 인터뷰 도중 팟캐스트 진행자로서 보인 ‘말빨 센’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수다스러움 대신 진중했다. 그는 “소설 쓸 때 가장 충만한 상태”라고 말했다.

 

최근 신작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 펴내
능청스러운 유머·따스한 감성 작품에 녹여
고정팬 거느린 작가지만 “소설로만 밥먹기 곤란”

문단에서는 ‘김천 3인문’이라는 표현을 쓴다. 김천 출신이자 중학교 동창인 김연수 작가, 김중혁 작가, 문태준 시인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3명 모두 현재 고양에 살고 있다. 김중혁 작가와 김연수 작가는 작업실을 일산호수공원 가까이에 두고 글을 쓰고 있다.

1997년 고양에 이사와 현재 일산서구 가좌동에 살고 있는 김중혁(44세) 작가는 최근 신작소설집을 펴냈다. 이효석 문학상을 수상한 ‘요요’를 포함한 8편의 단편을 묶은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다. 이 소설집은 출간 열흘을 넘긴 시점에서 1만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기자가 ‘대박’ 조짐을 보인다고 하자 그는 대수롭잖게 여겼다.

무명시절 김연수 작가 집에 얹혀 살아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 대해 여러 언론은 등단 15년을 맞은 저자의 첫 번째 연애소설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그의 반응은 담백했다. 그는 “연애소설집을 내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사실은 관계나 대화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소설집에 담긴 작품을 쓰고 보니 예전 작품에 비해 여자 주인공이 많았어요. 출판사 측에서 농담처럼 연애소설집으로 묶으면 재밌겠다고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김중혁 작가가 직접 운영하는 볼거리 많은 홈페이지 ‘펭귄뉴스(www.penguinnews.net)’에서도 ‘일반적인 의미의 연애소설과는 몹시 다를 것 같지만, 모른 척 해야지. 연애소설이라고 우겨야지. 환불 요청 와도 모른 척 해야지’라고 농담조로 고백했다.

친구 김연수 작가가 1993년 데뷔한데 비해 김중혁 작가는 그보다 7년 늦은 2000년 ‘펭귄뉴스’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김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 그나마 국어와 영어를 잘했는데 성적에 맞추다 보다 커트라인이 낮았던 국문과에 들어갔고 대학시절에는 소설보다 시를 좋아했다. 그가 다녔던 계명대 불문과 교수였던 이성복 시인을 흠모했지만 대학시절 이성복 시인이 교정에서 테니스 치는 것만 멀리서 지켜봤다. 복학 후 어쩌다 쓴 단편이 학교문학상에서 가작으로 선정되면서 어렴풋이 소설에 재능이 있다고 느꼈지만 그다지 성실하지 않은 습작기를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음식잡지, 여행잡지, 한겨레신문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친구인 김연수 작가를 따라 서울로 와서 그가 사는 집에 ‘얹혀 살면서’ 소설이라는 바다에 빠져들어갔다. 김중혁 작가는 주로 이청준, 이인성, 윤대녕, 최수철 작가의 작품을 탐독했다. 

엄숙함 벗어난 발랄한 상상력
김 작가는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같은 장편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단편을 모은 4권의 소설집을 펴냈다. 4권의 소설집에는 각각의 테마가 있다. 가령 첫 번째 소설집 『펭귄뉴스』는 사물에 대해, 두 번째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은 음악이나 소리에 대해, 세 번째 소설집 『1F/B1』은 도시와 건물에 대해, 이번에 펴낸 네 번째 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관계와 사랑에 대해 썼다.

김중혁 작가의 소설은 순수문학이 으레 가지는 엄숙함에서 벗어나있다. 그의 소설에는 발랄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능청스러운 유머, 따뜻한 감성이 스며있다. 50대 이상을 포섭하는 대중성은 없지만 이른바 ‘김중혁표’라는 브랜드를 가진, 고정팬을 거느린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작가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저는 아주 얕고 넓게 세상을 파악하는 작가입니다. 작가이기 때문에 여러 방면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같은 거대한 목표가 저에겐 없어요. 독자 입장에서 ‘여러 작가 중에 이런 작가도 있구나, 이런 작가가 한 명 정도 있어서 좋다’라고 여긴다면 저는 그 정도 수준에서 만족합니다.”

그의 관심사는 다방면에 뻗쳐있다. 책은 물론이고 음악, 영화, 스포츠, 요리, 언더·인디문화, 전자제품 등이 관심사다. 다소 엉뚱하다 싶을 정도로 감각적인 에세이스트이자 팟 캐스트 진행자이기도 하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씨와 함께 팟 캐스트 ‘빨간 책방’을 진행하며 매회 약 15만회 다운로드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도 누리고 있다.

“상처 잘 받고 돈도 잘 못 버는 사람이 중간에 있어요. 그게 소설가 김중혁입니다. 그 중앙에 있는 사람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주변의 많은 다른 김중혁이 방송도 하고 소설 외의 글도 쓰면서 돈을 벌어요. 소설만 써서는 밥을 먹기가 어려워요.”

“쓰면서도 내 소설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김중혁 작가의 소설쓰기는 독특하다. 일단 고심해서 첫 문장을 써놓는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첫 문장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은 이미 저질러버린 첫 문장을 수습하기 위해 쓴 문장이다. 세 번째 문장은 역시 첫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단편소설 하나를 완성시킨다. 김중혁 작가는 이것은 ‘뒷수습의 상상력’이라고 표현한다.

“작가 중에는 뒷부분을 먼저 쓰고 앞부분을 나중에 쓰는 작가도 있지만 저는 대체적으로 순차적으로 씁니다. 수습을 한다고 하지만 가끔 수습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뒤에 나오는 이야기에 따라 앞을 수습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김 작가는 스스로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야 소설이 생동감 있기 때문에 소설의 뒷부분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를 “작가 김중혁이 독자 김중혁에게 이야기해주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15년 작가생활 동안 내놓은 많은 작품 중 김중혁 작가 스스로 만족도가 높았던 작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 작가는 만족도가 높았다기보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계기가 된 작품으로 3개 작품을 꼽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 이야기를 다룬 단편 ‘무용지물 박물관’,  김유정 문학상을 받게 했고 소설속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많은 공을 들인 ‘엇박자 D’, 그리고 이효석 문학상을 안긴 ‘요요’를 꼽았다.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인데 어떤 사람은 ‘말’로써 하고 어떤 사람은 ‘직업’으로 얘기합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소설입니다. 소설을 쓰는 게 저에게 가장 맞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쓸 때가 가장 충만한 상태입니다. 소설을 쓰는 이유를 생각하면,  저를 드러내고 싶기도 하고 누구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것이지만 돈을 벌기 위함은 아닙니다. 소설 외에 제가 하는 다른 일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지만 소설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온전히 제가 하고 싶은 얘기만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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