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 백범일지』열화당에서 출간

백범 김구 선생의 외침과 탄식, 그리고 삶의 체취마저 고스란히 담아 낸『정본 백범일지』두 권이 오랜 기다림 끝에 첫 선을 보였다. 광복 70년이자 선교장 열화당 건립 200년을 기념하는 뜻을 담아 만든『정본 백범일지』의 출간을 기념하는 출판 기념회가 지난 19일 파주출판도시 열화당책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회에는 출판계, 학계, 예술계를 망라하는 150여 명의 인사들이 모여 정본 백범일지의 봉헌을 함께 축하했다.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 김병익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 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이 축사를 통해 출간의 의의를 되짚으며 열화당 출판사의 열정과 노고를 격려했다.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은 짧은 특강에서 오늘날 되새겨야 할 백범 김구 선생의 정신을 조명했다. 행사 말미에는 가수 장사익씨가 신명이 담긴 노래로 잔치의 매무새를 풍요롭게 했다.  

열화당 이기웅 대표(사진 왼쪽)와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이『정본 백범일지』를 봉헌하고 있다.

정본 출간 위해 꼬박 3년 매달려 
출판기념회에서 열화당 이기웅 발행인은 본인과 열화당 식구들을 책을 만드는 염(殮)장이, 또는 염꾼이라고 불렀다. 돌아가신 분의 시신을 정성껏 수습하여 예를 갖추는 염꾼처럼, 말과 글의 뿌리를 조심스레 매만지며 책 속에 깃든 백범 김구 선생의 영혼을 오늘의 시간 속으로 모셔 내는 일이니 합당한 비유다. 성실한 염꾼인 이기웅 발행인과 열화당의 식구들이 꼬박 3년을 매달려 빚어 낸『정본 백범일지』두 권은 국제문화도시교류협회에서 헤이리에 건립 진행중인 ‘안중근 기념 영혼도서관’에 꽂히게 된다.

한문 정본, 한글 정본 200질만 발행
일반적으로 출간기념회에 참석자들은 새 책을 한 권씩 구매해가곤 하지만, 이날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번에 간행된『정본 백범일지』는 200질만 간행했기 때문이다. 돈으로 계산될 수 없는 백범 김구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책값은 매겨지지 않았다는게 열화당의 설명이다. 참석자들은 책을 손에 넣는 대신 한 권의 가치 있는 책을 만드는 올곧은 장인 정신을 가슴속에 담아 돌아갈 수 있었다. 열화당은 내년 초 완공 예정인 ‘안중근 기념 영혼도서관’ 건립 기금 기부자에게 책이 우선적으로 증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취지에 부응해 현장에서 여러명의 참석자들이 기부에 흔쾌히 동참하기도 했다.

백범 조명 작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매김
1947년 처음 발행된 백범일지는 백범 선생의 차남이 저작권을 스스로 해제한 까닭에 그동안 80여 종의 판본이 출판되었을 정도로 무분별하게 중복 출판되었다. 하지만 첫 출간때부터 춘원 이광수의 윤문 과정에서 백범 선생의 체취가 많이 지워지는 등 원본성이 훼손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판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은 책이 지금껏 나오지 못했었다. 열화당은 광복 70년을 앞두고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고자 원문을 가장 정확히 담아낸『정본 백범일지』의 편찬에 착수하여 3년에 걸친 집요한 작업 끝에 친필 원본을 그대로 활자화 한 ‘한문 정본 백범일지’와 한문 정본을 오늘의 말로 풀어 옮긴 ‘한글 정본 백범일지’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정본 백범일지』는 여러 판본들의 오류를 면밀히 검토한 후 여러 차례의 꼼꼼한 교정 작업을 거치며 내용상의 완벽을 구현했다. 원본의 체제와 같은 세로쓰기를 채택한 것도 내용과 함께 형식에서도 백범의 정신과 숨결을 재현하고자 하는 의지에서였다.『정본 백범일지』의 출간은 향후 백범 선생에 관한 주석본, 번역본, 축약본, 또는 백범을 소재로 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 제작의 표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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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기념회 참석자 발언 요약

염(殮)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이기웅 열화당 대표)
광복 7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수많은 행사가 이어졌지만 역사의 교훈을 깊이 반성하는 의미있는 행사는 적었다. 광복의 참된 의미를 다시 새기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 책을 만든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새로운 언어를 찾고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을 선배님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었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중국어, 일어, 영어를 순서대로 수용해야 했던 과정에서 언어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다. 염이라는 말을 사용한 까닭도 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제를 언어, 책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백범 일지를 염(殮)하는 과정을 3년간 묵묵히 감당해 준 열화당 식구들, 고생도 많았지만 대단히 자랑스러운 작업이었다고 자부한다. 염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2차, 3차의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완전을 향해서 역사의 길을 더듬어가는 자세로 책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다시 새겨본다.

제작 경과 보고 (열화당 조윤형 편집실장)
2013년 초에『정본 백범일지』의 출간을 결정했다. 처음엔 정본 5권만 만들어 열람토록 하려 했는데, 책 출간이 가져 올 여러 긍정적 요소들을 고려해서 200질을 제작하게 되었다. 국가 기록문화유산 보물 1245호 친필본 백범일지에 근거해서 2013년 여름부터 본격적인 책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원문 입력작업에 6개월, 원문을 오늘의 말로 풀어쓰는데 또다시 6개월이 걸렸다. 본문 판형과 디자인 과정에서 세로짜기와 한자 병기방식 등의 편집체제가 결정되었으며, 기나긴 교정과 대조의 작업이 이어졌다. 2014년 6월 선교장 포럼을 통해 정본 백범일지 발간 계획을 본격적으로 대외적으로 알렸으며, 이후에도 열화당 편집공동체들의 긴밀한 상의와 협력을 통해 오늘 비로소『정본 백범일지』를 선보이게 되었다.

백범이 꿈꾸던 나라 (박원순 서울시장)
우리 현대사를 돌아보면 백범 선생이 살아서 정부의 수반이 되어 백범일지에 담긴 뜻을 펼치셨으면 우리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다. 백범 일지에는 백성이 주인되는 나라에 대한 바람이 담겨있다. 그분께서는 백정과 범부라도 지금의 자신과 같은 뜨거운 애국심을 가져야만 나라의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바람을 담아 백범이라는 호를 쓰셨는데, 그의 뜻은 오늘날 어디로 갔는가. 
백범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은 부강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높은 문화의 힘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문화의 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남에게도 행복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의 말씀대로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아니라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K팝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대중문화가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인문적, 문화 예술적 가치를 만드는데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업적은 민주주의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백범 선생의 일지에는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이 들어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다시 억압받고 있고, 문화적 상상력을 짓밟는 검열도 되살아나고 있다. 백범이 꿈꾸던 나라와는 멀어지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처음 길을 만들 때 온전하게 잘 뚫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열화당이 백범 선생을 향한 첫 문을 잘 열어 주셨다. 백범의 기록을 염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백범의 숨결과 영혼, 그리고 백범이 세운 방향을 우리가 따라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김구 선생의 염꾼이 되어야 한다는 이기웅 발행인의 말처럼, 백범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서 그 첫 마음을 따라가자고 다짐해본다.     

백범의 정신 정갈하게 다듬어 (김병익 문학과 지성사 상임고문)
이번 정본 발행으로 백범일지가 제대로 된 염을 받았다. 백범의 사상과 정신이 정갈하게 세워져 후배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본다. 백범선생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거다.

출판 장인이 빚어낸 자산 (김언호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
출판도시는 북한땅이 건너다보이는 변방에 자리를 잡았다. 이 변방정신이 중요하다. 이곳에서 열화당과 이기웅, 이 두 고집스러운 주체가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또 다시 만들어주셔서 너무 존경스럽다. 이기웅 발행인은 오랜 기간동안 출판의 문법을 출판인들에게 제시해 온  출판 장인이다. 우리는 디지털의 폭력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번에 간행된『정본 백범일지』는 우리의 정신사에 보태진 너무도 큰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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