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손자·82세 할아버지 함께 사는 4대 가족

할아버지 위해 온가족 화투
치매 어머니·장애 시동생 보듬어
며느리는 정작 “남편이 진짜 효자”
시부모와 매달 떠나는 효도여행

“저는 효부 아니에요. 남편이 진짜 효자죠. 남편의 하루 일정은 모두 부모님께 맞춰져 있어요. 매달 부모님 모시고 여행가는 것도 남편 때문이죠. 여행가서 정작 어머니 목욕시켜드리는 건 제가 하지만요(웃음).”

4대가 함께 산다. 가족이 총 아홉 명. 며느리 이윤희(62세)씨 시점에서 보면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남편,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자 둘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4대가 함께 사는 가족을 찾기가 참 힘들다. 고양시 각 주민센터에 수소문해 어렵게 섭외한 대가족을 정발산동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가족은 큰 주택에 사는 것도 아니다. 다가구주택 꼭대기 층에 살고 있다. 다가구지만 그나마 옥상층이 넓어 4대가 살아도 비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들 내외가 신혼 때까지만 해도 다락방을 개조해 함께 살았는데 손주를 낳고 부터는 같은 건물 아래층에 집을 얻었다. 하지만 아들 가족도 저녁식사는 언제나 부모님 댁인 윗층에서 함께하고, 며느리고 아들이고 수시로 집을 드나든다.    

“저희 어머니 보면 대단하단 생각밖에 안 들어요. 어머님 앞에서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는 못할 거 같거든요(웃음). 어머님 연세면 요즘엔 한창일 때잖아요. 그런데 다 참고 집안일만 하세요. 많이 베풀고 사셔서 그런지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많으세요.” - 며느리 주예찬(33세)씨.

가족이 함께 모여 산 것은 11년 전부터다. 주교동 고양시청 옆 다가구주택에 살다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이사 오면서 정발산동에 정착하게 됐다. 이곳에 온 지 9년째니 이제 동네주민들도 가족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사는 집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붐비는 것이 그리워지는 요즘 세상이다. 그런데 이 집은 식구가 많아서 그런지 집에서 느껴지는 정다움과 소란스러움이 사람 사는 집이란 생각을 하게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 중 2명이 환자다. 두 살 때부터 뇌성마비(1급)를 앓아온 시동생 이현배(50세)씨. 그리고 10년 전부터 치매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시어머니 전순남(80세)씨다.

3년 전부터는 시아버지가 위암 수술과 대장암 수술을 연달아 하면서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전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면서는 공황장애까지 왔다. 이후 온가족의 저녁 일과가 하나 늘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식탁에 할아버지, 며느리, 아들까지 3대가 둘러앉아 밤 10시까지 화투를 친다. 공황장애로 불안해하는 할아버지가 화투를 치면 다 잊고 집중하는 걸 알면서부터는 잠들기 전까지 온가족이 할아버지와 놀아드리는 것이다.

이집엔 손님도 많다. 남편 이현두(58세)씨의 친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부부동반으로 집에 찾아온다. 이런 손님들은 아들이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과도 같다. 부모님이 손님들을 맞이하며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자주 초대하는 것이다(부모님 친구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다). 특히 시아버지는 아들 친구 내외와 밤새 화투를 치고 놀기도 한다. 아들이 친구를 ‘빌려주고’ 외출하고 와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 어울린다.

가족의 중심은 역시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하는 며느리 이윤희씨다. 털털하면서도 대장부 스타일의 이윤희씨. “성격 날카로운 사람은 이 집에 못 살아요”라는 그 말에 많은 속내가 담겨있다.

하루만 며느리가 없어도 ‘며느리 언제 오냐’며 신경질 부리는 치매 시어머니, 체중 90㎏ 뇌성마비 1급 환자인 시동생까지 책임지는 억척스런 살림꾼이다. 부모님과 시동생을 위해 매일 세 끼 식사를 챙겨야 하니 친구들과의 점심모임도 식사 시간 이후인 2시에나 나갈 수 있다. 시부모 모시고 매달 여행을 가지만 정작 부부여행은 10년 동안 한 번이었다니 가족들에 대한 헌신이 대단하다. 그러면서도 이윤희씨는 자기가 잘해서라 아니란다. 오히려 이렇게 알아주니 고맙단다.

“남편인 아들이 효자예요, 저는 따라가는 것뿐이죠. 부모님이 인정을 안 해주시면 힘들지도 모르지만 저희 부모님은 제가 5개를 하면, 10개를 했다고 인정해 주시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드는 생각은 한 가지다. ‘참으로 선한 사람들이 한 가족을 이루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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