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실 작가 / 아주 특별한 책의 도시 고양 추진위원장

고양시는 16개의 시립도서관과 17개의 공립 작은도서관, 65개의 사립 작은도서관이 동네마다 촘촘히 자리잡은, 전국 2위 수준의 우수한 도서관 인프라를 갖춘 도시다. 하지만 한 지역의 독서 문화는 외형적 인프라만 갖춘다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독서 문화를 독려하기 위해 고양시도서관센터에서는 올 해 ‘아주 특별한 책의 도시 고양’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이 캠페인에 고양신문이 함께 하고자 특별한 지면을 편성한다. 고양에 거주하는 작가, 또는 지명도 높은 전문 필진들이 매월 1회 책의 가치와 독서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글을 릴레이 연재한다. 첫 번째 순서는 ‘아주 특별한 책의 도시 고양’ 추진위원장 노경실 작가의 글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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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손 안에 빛나는 ‘이것’이 있는지요?

노경실 작가 / 아주 특별한 책의 도시 고양 추진위원장


1. 엄마들에게 ‘유대인의 교육법’이나 ‘탈무드’와 관계있는 책이나 강연 등은 상당한 신뢰를 받는 테마입니다. 하지만 유대인이 그리도 뛰어난 자질을 소유할 수밖에 없게 된 고난의 과정은 배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마치 반 고흐 작품 전시회에 수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만, 정작 반 고흐의 가난과 고독, 고통의 창작생활은 ‘절대로’ 내 자식은 따라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늘 ‘옮겨 다니고, 정착하지 못하고’ 사는 불안정한 민족이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거의 2천 년이나 되는 디아스포라 역사 속에서 언어와 관습과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인 토라(모세 오경)에 나오는 절대명령 때문입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내린 여러 명령 중 유독 반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기록하라, 전하라, 기억하라!” 
그들은 디아스포라 삶을 통과하며 종이도 인쇄술도 없던 시대부터 양피지에 써서 기록하고. 통째로 외우고, 쉼 없이 전했습니다. 자녀들과 이웃에게. 러시아로, 로마로, 에티오피아로 흩어져도, 노예로 팔려가도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이며, 도서관의 역할을 했고, 몇 명만 모여도 방대한 지식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그 자식이 부모가 되어 다시 자식에게... ... 이렇게 지식과 지혜의 전달자가 되면서 자신들의 역사와 운명을 바꾸어 나간 것입니다.

2. 여기 고단한 현실 속에 놓여 있는 한 소년이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아이에게 행복하지 않은 삶은 부모님의 부재나 불화이지요. 게다가 가난까지 겹치면 아이는 그야말로 혼란과 좌절 속에서 시든 어린 이파리처럼 지내지요. 그런데 이건 또 뭐인지요! 못 생겼다고 놀림까지 당하며, 여자 친구도 없이 외톨이로 지냅니다.
그럼 이 소년은 늘 우울한 마음, 슬픈 얼굴, 때로는 성난 언행으로 미래에 대한 아무런 기대 없이 쓸쓸하게 지낼까요?
걱정마세요. 엄마는 눈물 나도록 가난한 살림이라 배부르도록 먹이지는 못하지만 빌린 책이라도 아들에게 전해주었네요. 소년은 책읽기의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소년은 가난과 볼품없는 외모, 불완전한 집안 상황에 대해 더 이상 기죽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아름답고 선한 영혼과 바른 지식과 지혜임을 깨달아갔습니다. 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은 물론 이웃과 세상에 빛을 주는 수많은 인물들을 책을 통해 만나면서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며 고민했지요.
청년이 되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약해서 힘든 일을 할 수 없고, 너무 가난해서 학교도 다니지 못했으며, 여자를 사귀기도 힘들었지요. 청년은 ‘성냥팔이 소녀’라는 작품을 썼지요. 누구나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세상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반성하게 만들지요. 청년은 또 자신처럼 외모나 편견 때문에 고통받는 어린이가 없길 바라며 ‘미운 오리새끼’를 썼지요. 자, 이제 이 작가가 누군지 알겠지요!  

3. 사람들 눈에 너무도 보잘 것 없이 보이던 한 소년이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누구에게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작가가 되었을까요? 먼저 안데르센의 엄마를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 데 무슨 책이야!’ 라며 엄마 자신이 삶을 포기했다면 안데르센 인생도 열 살이 되기 전에 무너졌을 겁니다. 그러나 엄마는 책으로 자식의 인생을 튼튼하게 잡아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안데르센 자신의 힘이지요. 아무리 눈앞에 좋은 책을 수천 권 쌓아주어도, 도서관이 화려해도 스스로 책을 읽지 않으면 그것은 무거운 종이 쓰레기에 불과하니까요.
누구에게나 행복하지 않은 이유, 낙심할 원인, 포기할 까닭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자신에 대한 분노, 세상과 사람에 대한 원망, 이런 어두움이 아닌 희망, 즉 한 권의 책을 잡을 때에,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과 생각이 긍정과 밝음, 성장의 길로 한발자국, 한 발자국 옮겨가고 있을 겁니다.
그 발걸음을 책방으로 도서관으로 돌립니다. 그리고 책과 함께 우리 인생길을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기쁨의 시간으로 만들어 줄 도서관회원증을 집어 듭니다. 이 회원증으로 커피 값을 할인받거나, 어디 가서 VIP 대접을 받거나, 가방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인생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인은 세상 곳곳에 얼마나 많은지요! 이보다 더 확실하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며, 내 사정이 어떠하든 변함없이 인생 파트너가 되어주는 친구가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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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는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각각 동화와 소설로 등단했으며, 대표작인 『상계동 아이들』을 비롯하여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백석동에 살면서 소외된 이웃들에게 글쓰기와 인문학 나눔을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고양의 책 사람이자 도서관의 벗이다.

 

노경실 작가가 쓴 책들

어린이 인문학 여행 1~3|노경실 지음|생각하는책상
어린이의 눈높이로 여행하듯 재미있고 쉬운 입말로 풀어낸 인문학 이야기. 신화와 미술, 천문학과 철학, 심리학과 음악, 문학과 환경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사람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담고 있다.

철수는 철수다|노경실 지음, 김영곤 그림|크레용하우스

노경실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로서, 엄친아 친구와의 비교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철수가 주인공이다. 현실감 있는 이야기와 정곡을 찌르는 대화로 청소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 준다.

열네 살이 어때서?|노경실 지음|홍익출판사
아이돌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가진 열네 살 소녀 연주. 연속되는 좌절 속에서도 가슴속 열망에 매달리는 십대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청소년들의 진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온라인으로 연재되며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은 작품이다.

 

만지지 마! 내 몸이야?|노경실 지음, 조윤주 그림|씨즐북스
소중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부모와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으로, 아동 성범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 속의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다. 아이들은 갑작스런 상황이 벌어질 때 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반복적인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 맨 마지막 장의 아이와 부모가 알아야 할 성범죄 예방법과 정보가 담겨 있어 더욱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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