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고양포럼 -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전 부총리)

▲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


[고양신문] 지난 17일 일산동구청에서 열린 고양포럼에선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가 강연자로 나섰다. 이날 한 교수는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반도 사드 문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통일부총리와 경실련 이사장,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한 한완상 교수는 사드 문제를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충돌’이라는 근현대사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강연 내용을 정리한다.



나는 군사 전문가가 아니다. 내가 공부한 분야인 사회과학적 통찰로 사드 문제를 이야기 하려 한다. 한반도의 사드 배치에 대한 논란은 미국과 중국의 힘 싸움에 의한 결과다. 태평양을 접수한 해양세력인 미국이, 강력하게 떠오르고 있는 대륙세력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사드다. 하지만 사드는 음산한 전쟁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충돌은 역사를 반복해 왔다. 우리의 지난 110년 역사를 살펴보면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싸울 때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해양세력이 대륙세력을 이기면서 우리민족이 고통을 겪어왔다.

청일전쟁(1894년)이 그 시발점이었다. 그런데 이 전쟁에 대한 책임은 부끄럽게도 조선에 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부패하고 무능한 조선은 농민들의 혁명을 무너뜨릴 힘이 없어 일본을 끌어들였고 결국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그 결과 일본은 대만을 식민지화했고  제국주의 야심을 키우게된다.


미·일의 밀약으로 한반도 식민지화
그 다음 전쟁이 러일전쟁(1904년)이다. 역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충돌이었다. 이번에도 일본이 승리하면서 결국엔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때 주목해야 할 대목은 미국과 일본의 밀약(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밀약을 통해 미국은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묵인했다(대신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다). 미국이 또 다른 해양세력인 일본과 결탁하고 조선땅에 ‘사드’를 배치하려는 것은 왠지 역사적 반복처럼 보인다. 현재 미·일이 동맹세력으로 중국대륙을 봉쇄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륙의 큰 세력인 청(중국)과 러시아를 제압한 일본은 서구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고 판단하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다. 당시 대양의 지배자였던 미국에 도전한 것.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과 소련은 나치에 함께 대항하는 우방국이었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은 소련의 참전을 요청했지만 유럽전선에서 자국민의 피해가 너무 컸던 소련(스탈린)은 이를 거절한다. 하지만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전세가 급격히 기울자 자국민의 희생 없이 승전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는 판단에 그제야 태평양전쟁에 참전한다. 그때가 전쟁 막바지인 1945년 8월이다.

▲ 지난 17일 일산동구청에서 열린 제51회 고양포럼.


미국의 ‘졸속결정’으로 분단 초래

전쟁이 끝나가면서 소련이 급격히 남하하자 이제는 미국이 일본이 아닌 소련을 견제하기에 이른다. 일본 본토를 소련이 신속히 점령해 버리면 미국이 그동안 전쟁에 쏟아 부은 힘이 무위로 돌아가기 때문. 소련의 남하 저지가 급했던 미국은 신속하게 또한 ‘졸속으로’ 38선을 저지선으로 결정한다. 일설에는 38선을 찾는 데 5초가 걸렸다는 주장도 있고 20분 정도 걸렸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분단의 비극이 시작됐다. 조국의 분단 비극이 사려 깊지 못한 열강들, 특히 미국의 판단으로 허무하게 결정되고 말았다는 얘기는 역사교과서에 크게 기록돼 있지 않다. 러시아가 일본에 패한 게 1905년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초강대국이 되어 한반도의 절반을 접수했다. 어찌 보면 미국의 잘못된 정책이 소련을 한반도로 불러들였고 분단을 초래한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미국은 대륙세력인 소련을 더욱 견제해야 했고 이를 위해 일본을 키워야 한다고 판단하고 일본의 전쟁범죄를 엄정히 따지지 않았다. 현 총리인 아베의 외할아버지가 A급 전범임에도 사면을 받고 이후 총리까지 지내지 않았나. 한국전쟁은 미국이 유일하게 승리하지 못한 전쟁으로 남아있다. 전쟁에 승리하지 못한 이유는 중국의 참전이었고 그런 중국이 이제는 소련(러시아)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됐다. 미국의 주적이 중국으로 바뀌게 된 것.


대륙세력 견제 위해 또다시 미·일 동맹

역시 이번에도 미국은 대륙세력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이용한다. 현재 미국의 국제 정책의 핵심은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미국이 태평양 곳곳에 군사기지를 세울 때 얄궂게도 우리정부는 중국을 바라보는 입구인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세운다. 한반도가 또다시 해양-대륙(미국-중국)세력의 패권 다툼의 틈바구니에 낀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지만, 결국 미국의 이권에 의해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한반도 역사를 설명한 이유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열강은 자신의 이익을 좇을 뿐 배려란 없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현재 우리의 가장 큰 우방인 미국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눈감아줬고, 소련의 참전을 유도해 한반도의 분단을 가져왔다. 110년의 역사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아픔을 준 국가는 어디인가. 일본, 소련, 중국, 미국 중 어느 나라인가?


주도적인 외교전략 펼칠 정부 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취해야 하는가? 그래도 미국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다. 정답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이제는 많이 성장했으니 열강 세력들을 전략적 동반자국가로 바라보고 외교력을 모아 주도적인 선택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외교적 압력을 넣을 만큼 성장했다. 경제적으로는 10위를 넘보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그보다 앞서있다. 백성들의 투쟁과 근면, 헌신 속에서 국력을 키워왔는데 아직도 열강의 결정만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내년 대선이 중요하다. 주도적인 외교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부가 들어서길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사드는 음산한 전쟁의 기운을 느끼게 한다. 동유럽에 사드가 배치되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략했듯이,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면 과연 중국이 참고만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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