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토이뮤지엄 소장품전 - 토이로 만나는 세상

유럽의 장난감 500점 아람미술관 전시
시대의 특징과 문화의 변화 흥미롭게 반영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다양한 개념 중 가장 긍정하기 쉬운 용어를 꼽으라면 단연 ‘호모 루덴스’가 아닐까. 인간은 태생적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존재 아니냐는 정의에 고개를 가로 저을 이가 있으랴. 네덜란드의 문화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가 선보인 이 개념은 문화와 유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유희 욕구는 그 자체의 원초적 생명력을 동력 삼아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늘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척 보면 딱! 설명이 필요 없는 전시

놀이하는 인간을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물증인 장난감들을 한 자리에 모은 전시장을 찾았다. 지난 16일부터 아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토이로 만나는 세상’ 전시에선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토이 뮤지엄의 소장품 50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여는 나들이 전시라는데, 물 건너온 유럽의 장난감이라고 해서 낯설 까닭은 없다. 대개의 전시는 리플릿이나 전시물의 캡션(설명)을 꼼꼼히 읽어야 비로소 소장품의 정체와 가치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장난감엔 별도의 설명이 불필요하다. 척 보면 어떻게 가지고 놀아야 하는지가 자동적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아이의 전시장을 둘러보며 아빠가 눈빛을 반짝이는 걸 보고 아이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아빠도 장난감 가지고 노는 거 좋아해?” 그럴 땐 솔직하게 대답해주시길. “···당연하지, 너보다 더.”

성경도 전쟁도 장난감의 소재 

전시장에서 만나는 장난감들이 반영하고 있는 특정한 시대와 문화의 색깔을 찾아내는 일은 또 다른 재미다. 몇 개의 코너를 따라가보자. 전시의 맨 첫머리에 만나는 노아의 방주 장난감은 기독교와 성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유럽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나무로 깎은 다양한 동물들을 커다란 방주 안에 태우며 놀았을 19세기 유럽 꼬마들의 일요일 풍경이 저절로 그려진다.

두꺼운 그림판으로 만든 극장 무대 안에서 실로 연결된 종이인형들이 등장하는 종이 극장(paper thather)은 이야기를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안방극장’의 원조랄까. 우리에게도 종이 극장이 있었다. 딱딱한 도화지에 인쇄된 주인공들을 열심히 오려 옷도 입히고 가방도 들려주며 놀았던 종이인형놀이 말이다.

놀이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전쟁의 흔적마저도 장난감의 세계로 들어온다. 다양한 유럽 가가들의 군인병정 인형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방은 이번 전시에서 디스플레이의 매력을 가장 인상적으로 발휘한 코너 중 하나다.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병정인형을 일렬로 늘어놓고는 조명을 통해 근사한 실루엣 효과를 만들어냈다.

역사의 전진은 호모 루덴스와 함께!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우주인과 로봇 장난감들이 쏟아져 나온다.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추진했던 우주 레이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그대로 장난감으로 반영된 것. 주로 양철로 만들어진 우주인과 로봇 인형들의 귀엽고 유머러스한 모습 이면에 냉전시대의 팽팽한 긴장감이 배어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동서를 막론하고 가장 인기 있는 장난감의 분야 중 하나는 역시 교통수단이 아닐까. 전시에선 기술의 발달과 함께 형태를 달리 해 온 기차, 배, 자동차, 비행기 등이 길게 세팅된 진열대 위에 멋지게 자리를 잡고 있다. 움직임이 있고, 아름다운 형태가 있고, 미래를 향한 꿈이 깃들어 있으니 탈것들이야말로 영원한 장난감의 친구들일 수밖에.

장난감의 기본 원리는 단순화와 축소화지만, 반대의 길을 가는 장난감도 있다. 각종 보드게임, 카드놀이, 주사위게임과 같이 승부를 가리기 위한 장난감들은 규칙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며 진화한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오히려 게임의 쾌감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야말로 호모 루덴스의 빛나는 진일보다.

그 밖에도 인형, 팽이, 핀볼게임 등의 장난감들도 친숙하고 반갑다. 전시는 내년 3월 5일까지 이어진다. 아이들과 함께 찾아 이야기꽃을 피워봐도 좋고, 혼자서 천천히 둘러보며 나만의 ‘토이 스토리’의 추억을 호출해봐도 좋을 듯.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한 해 동안 얼마나 잘 놀았을까? 제대로 놀지 못한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면 전시장의 장난감들이 건네는 응원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보자.
“새해엔 모두들 행복하게 잘 노세요!” 

벨기에 토이뮤지엄 소장품전
토이로 만나는 세상

장소 아람누리 아람미술관
기간 2017년 3월 5일까지
문의 031-960-0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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