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동에 새로 문 연 ‘행복한 책방’

행복한 책방이 문을 연 첫날, 주인장 한상수 대표의 지인들이 책방을 찾아 축하를 나눴다.

탁월한 안목으로 엄선한 연령대별 책 선봬
‘개성 있는 동네 서점의 생존’ 실험 나서
 

[고양신문] 2월의 첫날, 대화역에서 가까운 단독 블럭에 작은 책방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름이 ‘행복한 책방’이란다. 약도를 따라 찾아가니 노래하는 새가 그려진 예쁜 간판이 방문객을 맞는다. 안으로 들어서자 깔끔한 서가와 함께 통유리창을 따라 길게 자리잡은 독서 테이블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창밖으로 동네 이웃들이 오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책장을 넘기기에 안성맞춤이겠다.

서가의 구색은 아기자기하다. 어린이 그림책을 모아놓은 코너를 비롯해 청소년, 성인으로 구분된 서가마다 정선된 책들이 정리돼 있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들이 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여느 책방과는 달리 참고서나 실용서는 보이지 않는다.

창밖으로 이웃들이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책을 읽기에 좋은 편안한 독서 테이블.

‘괜찮은 동네 서점’을 만들려는 오랜 꿈
규모가 적잖은 책방들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속속 문을 닫는 현실에서 실평수 17평 규모의 아담한 책방을 낸 무모한 이는 누굴까. (사)행복한 아침독서의 한상수 대표가 주인공이다. 한상수 대표는 1999년부터 일산에서 작은도서관 운동을 시작했다. 고양시가 지금과 같은 도서관 인프라를 갖춘 도시로 변모하기까지에는 한상수 대표가 펼친 작은도서관 운동이 나름의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은도서관 운동과 함께 아침독서운동을 펼쳐온 책 문화 전도사이자 ‘월간 그림책’을 비롯한 4종의 독서 관련 신문을 발행하는 출판인인 그가 굳이 동네 책방 주인장이라는 직함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0여 년 가까이 책과 관련된 활동을 하며 깨달은 결론 중 하나는 좋은 동네 서점을 살리지 않으면 건강한 독서 문화를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몇 해 전부터 문화인들을 중심으로 동네 책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는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죠. 과연 괜찮은 동네 서점을 꾸리면서도 지속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을지, 관전자가 아닌 선수가 돼서 직접 한번 부딪혀보고 싶었어요.”

한상수 대표에겐 동네의 작은 책방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있단다. 지금은 키가 훌쩍 자란 큰아이를 키울 때 집 근처에 아주 맘에 드는 동네 책방이 있었던 것. 그곳에서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고 읽었던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들이었는지를 마을 책방이 사라진 후에 비로소 명백하게 깨달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찾아갈 수 있는 괜찮은 동네 서점이 있다는 게 삶의 질을 얼마나 높여 줄 수 있는지를 이웃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습니다.”  

바깥에서 들여다 본 책방 풍경.

차별화된 큐레이션으로 독자에게 손 내밀어
하지만 냉정한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대형 서점이 오프라인 시장을 독식하는 상황에서 작은 동네 서점이 파고들 틈새의 영역이 과연 남아있긴 한 걸까? 이에 대해 한상수 대표는 명쾌한 생각을 피력했다.
“대형 서점과 동네 책방은 제공하는 서비스도 다르고, 겨냥하는 독자층 역시 다릅니다. 아무리 대형 서점에 들락거려도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진 않잖아요. 어차피 한 명의 독자가 고를 수 있는 책의 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작은 서점은 그 지점에 정확하게 접근해야지요. 운영자의 고민과 안목을 동원해 정선된 책을 고르는 차별화된 큐레이션과 선택된 책들을 친밀하게 권하는 일은 작은 책방만이 해낼 수 있지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선택지가 무한대로 늘어난다고 해서 만족도가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수많은 경험들이 가르쳐준다. 오히려 믿음직한 소수의 선택지가 놓여졌을 때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주인장의 안목에 대한 신뢰만 담보된다면, 동네 책방의 서가에 꽂힌 책들이야말로 삶의 행복지수를 높여 줄 믿고 찾는 문화상품이 아니겠는가.

엄정한 안목으로 큐레이팅한 책들이 진열돼 있는 연령대별 서가.

책을 매개로 한 동네의 문화 사랑방 

책방을 좀 더 구경해보자. 구석에는 작은 주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서가 틈새에 자리를 잡은 테이블에선 커피와 음료를 즐기는 이들이 눈에 띈다. 카페를 겸하는 책방이기에 시원한 맥주 한잔을 주문할 수도 있다. 미닫이 문 안쪽에는 10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아담한 미팅룸도 마련했다. 날이 풀리면 입구 바깥쪽을 두르고 있는 나무 테라스가 멋진 노천카페로 변신할 것 같다. 퇴근 후 동네 책방에 들러 맥주 한 모금을 넘기며 새로 나온 책들을 살피다 보면, 어느새 얼굴을 익힌 이웃들이 다가와 친근한 인사를 건네고…  행복한 책방이 지향하는 궁극적 모델은 어쩌면 책을 매개로 한 동네 사랑방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행복한 책방이 문을 연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책보다도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질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에 대해 기대감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상수 대표가 워낙 출판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문화 일꾼이다보니 남들과는 다른 색깔로 작가와 독자, 또는 출판사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색다른 일들을 펼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리라.
“기존의 도서관이나 문화센터와는 좀 다른 형태로 문화 행사들을 펼치려고 합니다. 저자와의 만남을 열더라도 일방적인 강의 형태보다는 10명 이내의 독자를 신청 받아 미리 책을 읽어오게 한 후 저자와의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독자들과의 깊이 있는 소통은 저자와 편집자와 같이 책을 생산하는 이들에게도 무척 유익한 시간이 될 거예요.”
그러고 보니 책이 진열된 서가마다 이동이 가능하도록 바퀴를 달아놓았다. 행사의 규모나 성격에 맞춰 책방 내부 공간을 가변성 있게 활용할 예정인가보다.

“행복한 책방 친구들이 돼 주세요”

서점의 개점을 자축하며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멋진 행사도 준비했다. 성인을 위한 친절한 그림책 안내서인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이봄)의 공동저자들을 초청해 15일과 22일, 2회에 걸쳐 ‘그림책 처방전 진료소’를 열 계획이다. 그림책이 어린이들의 전유물을 벗어나 성인 독자들의 취향까지 저격하고 있는 최근의 트렌드를 정확히 겨냥하면서도 행복한 책방의 콘셉트와 무척 잘 어울리는 행사가 아닐 수 없다.
   
한상수 대표는 고정적으로 행복한 책방에 들르는 ‘적극적 고객’들이 하나둘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객들에겐 ‘행복한 책방의 친구들’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부여할 계획이다. 지인의 아이디어를 구체화 해 ‘1달에 책1권 북클럽’도 추진을 검토 중이다. 그렇게 한발자국씩 시간을 밟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행복한 책방은 서점을 찾는 독자 개개인의 일상의 시간표 속에 소중한 의미를 품는 이름이 되어 있지 않을까.

“책방의 이름처럼, 이웃들의 삶이 동네 책방으로 인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한상수 대표의 희망사항은 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행복한 책방
일산서구 일산로 741번길 13. 1층
031-913-7922

눈에 띄는 행복한 책방의 간판. 고양시도서관센터 CI 작업을 담당했던 디자이너 장병인 님의 작품이다.  


행복한 책방의 오픈을 축하하러 방문한 김경윤 작가와 함께. 김경윤 작가는 최근 한상수 대표가 들고 있는 책 '철학의 쓸모'를 출간했다.

행복한 책방의 한상수 대표가 어른들에게 권할 만한 그림책을 소개하고 있다. "책을 매개로 한 마을의 문화 사랑방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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