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블루메미술관, 다음달까지 ‘정원사의 시간’ 전시

'정원사의 시간' 전시가 열리고 있는 파주 헤이리 블루메미술관.

 
[고양신문] 속도와 생산성이 종교처럼 떠받들어지는 시대에 대한 저항일까. 현대미술 작가들의 시선에 정원을 가꾸며 느리고 여린 식물성의 시간을 매만지는 이들이 포착됐다. 파주 헤이리예술마을 블루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정원사의 시간’ 전시에 참여한 5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정원에서 식물을 기르는 행위에 대한 다양한 응시를 담아냈다.

선택과 가꿈 통해 관계 맺기

강운 작가는 ‘공기와 꿈’ 무한한 하늘의 한 조각을 잘라 네모난 틀 안에 담았다. 하늘과 정원이 어떻게 연결될까? 아름다운 구름이 펼쳐진 캔버스를 들여다보노라면 힌트가 보일 듯하다. 인간의 시선은 결코 하늘 전체를 바라볼 수 없고 선택된 ‘부분’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 대지의 한 부분을 경계 지은 후 선택된 식물들로 꾸며낸 공간이 곧 정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또는 공기와 구름과 비가 정원을 자라게 하는 근원적인 에너지라는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김이박 작가는 ‘사물의 정원’을 꾸몄다. 꽃이 심겨져야 할 작은 화분마다 공구, 장갑, 필기구 등 온갖 잡다한 물건들이 버젓이 심겨져 있다. 물건들은 곧 노동의 흔적이다. 정원은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항상 매만져지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한편으로는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의미를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화분이나 정원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이 정원사와 인연을 맺으며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풍경을 연상케 한다. 작가는 여벌의 화분을 마련해 전시를 찾은 이들이 자신의 물건을 심어놓을 수 있도록 했다.

벽면에 걸린 ‘노심초사’라는 액자 속에는 학창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편지들이 담겼다. 그 위에 작가가 트레싱지에 그린 식물 그림들을 겹쳐 놓음으로 아들을 양육하고 돌보는 부모의 마음과 식물을 가꾸는 행위의 유사성을 따뜻하게 담아냈다.  
     

강운, 공기와 꿈, 캔버스에 염색한지

 

김이박, 사물의 정원, 혼합재료

 정원을 사유하는 다양한 시선

김원정 작가는 화분 속에 말라 죽은 들풀 줄기와 푸르른 식물들을 함께 심어놓았다. 작품 제목인 ‘무용지물’은 역설이 아닐까. 거대한 생명의 순환 속에서 산 것과 죽은 것, 유용한 것과 무용한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완전한 인식’은 다양한 식물 화분을 원형으로 늘어놓은 후 LED 조명을 머리 위에 둘러놓았다. 무한, 생성, 소통 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원이 식물을 길러내는 빛을 화사하게 비추고 있는 것. 자세히 살펴보니 각각의 식물을 담고 있는 것은 화분이 아니라 밥그릇, 국그릇과 같은 식기다. 덕분에 원형으로 둘러앉은 식물들이 마치 하나의 밥상공동체를 구성하는 식구들 같이 보인다.

김원정, 무용지물, 풀 그릇 혼합재료
김원정, 완전한 인식, 식물 LED조명
 
 

임택 작가는 솜과 대나무로 가상의 정원을 직접 꾸몄다. 적외선 센서가 접근하는 관람자를 감지하면 대나무가 흔들리며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어보니 작가는 대나무 정원이 아름다운 담양 소쇄원에서의 영감을 전시공간 안으로 들여놓고 싶었다고. 시각과 청각, 바람의 촉감 등을 아우르는 공간에 대한 종합적인 기억을 환기시킨다.

최성임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의 관계성을 시각적으로 새롭게 재현했다. 버걱거리는 나무조각을 딛고 선 플라스틱 핀 블록들이 황금색 실로 얼기설기 연결돼 있는 모습은 정원의 흙 속에 뿌리가 엉켜 있는 생명의 그물망을 연상시킨다.

임택, 관풍, 오죽 솜 적외선센서 미니팬
최성임, 황금정원, 목재 플라스틱 실

생각을 싹틔워 마음을 가꾸다

전시의 동선은 야외정원으로 이어진다. 김원정 작가의 ‘상추(想抽)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상추씨를 직접 흙에 심고 기르는 작업이다. 작가는 상추를 ‘생각(想)을 싹틔우는(抽)’ 존재로 재치있게 명명했다. 상추를 기르는 거대한 화분은 나룻배의 모양으로 꾸몄다. 정원을 가꾸는 행위야말로 생각의 노를 저어 마음의 바다를 항해하는 일 아니겠는가.  

전시와 더불어 이달 20일에는 가드너스 마켓이 진행된다. 식물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화분, 꽃, 가드닝용품, 씨앗, 가드닝 관련서적 등을 팔고 사는 행복한 축제다. 13팀의 개성 넘치는 셀러들을 만나고 관객참여형 워크숍에도 참여할 수 있다. 미술관을 찾아 ‘정원사의 시간’을 잠시 엿보면 마음의 화분에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날지도 모른다.

김원정, 상추프로젝트:끝없는 항해, 상추씨앗 종이 배 LED간판


정원사의 시간
기  간  : 
 ~ 6월 25일
장  소  :  블루메미술관 (파주시 헤이리마을길 59-30)
참여작가  :  강운, 김원정, 김이박, 임택, 최성임
부대행사  :  5월 20일(토) 가드너스 마켓
문  의  :  031-944-6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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