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 한양문고에서 ‘지역작가와 지역서점의 만남’ 가져



[고양신문] “마치 탱크처럼 불도저가 밀려들어왔고 일산을 대대로 지켜온 원주민들을 몰아냈다. 객지사람들이 들어왔고, 일산은 누구의 고향도 아니게 됐다. 불도저는 구불구불 아름다웠던 언덕과 구릉을 밀어내고 밋밋한 평면도시로 만들어 버렸다. 참 재미없는 도시가 됐다. 이제 인간이 사는 마을, 인간의 고향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 소설가 김훈이 11일 저녁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열린 ‘지역작가와 지역서점의 만남’ 행사를 통해 지역 독자들과 만났다. 강연장에는 많은 관객들이 찾아와 보조 의자를 준비해야 할 만큼 성황을 이뤘다. 김훈 작가는 일산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안개와 저녁노을, 한강 하구의 거대한 풍경들이 멋진 일산이 밤에는 교회와 유흥가의 네온사인들이 뒤엉켜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세속 도시로 바뀐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그가 자전거를 타고 자주 찾았던 공릉천이 이제는 썩어 악취를 풍기는 상황이 된 것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

이어 일산에 위치한 ‘고봉산’이라는 이름도 삼국사기에 나올 정도로 유서 깊은 지명이지만,  지금은 오래된 문화가 남아 있지 않아 마음 붙일 곳이 없다고도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인 호수공원의 꽃박람회만 봐도 스토리가 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대형 전시물로 채워져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이제 일산을 다시 인간미 넘치는 마을, 고향처럼 마음을 깃들이고 살 수 있는 작은 공동체로 바꾸어 나갈 것을 희망했다.

일산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 김 작가는 사회자 김경윤 작가(자유청소년도서관 관장)와 일문일답을 이어갔다. 주로 김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올해 2월 출간된 아홉 번째 장편소설 『공터에서』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다음은 『칼의 노래』를 읽은 후 감동을 받아 김 작가의 책을 모두 갖고 있다며 말문을 연 사회자와의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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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사진 왼쪽)는 신작 소설을 중심으로 글쓰기에 대한 진솔한 속내를 담담히 들려줬다. 오른쪽은 대담을 진행한 김경윤 작가.

- 에세이 『라면을 끓이며』를 보면 기자이면서 무협소설 작가였던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 대필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작가 수업을 아버님께 받은 건가.

그냥 먹고 살려고 한 것이지 작가수업을 받은 건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이 거의 없다. 오히려 아버지 세대와 같은 삶을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다. 내 아들도 나를 딛고 나아가길 바란다.

- 첫 번째 소설을 47세에 쓰셨다. 습작기간이 있었나.

습작 기간도, 작가로서의 소망도 없었다. 나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1966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목표가 소설가가 아니라 밥을 벌어먹는 것이었다. 지금도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다.

- 문학을 밥벌이 말고 또 뭐라고 보나.

문학은 인간이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기제다. 자연과학은 자기를 반성하는 기능이 없다. 그에 비해 문학이나 인문학은 모호하지만 인간에게 반성의 기회를 준다. 그러나 문학에 위대한 가치가 있고 인간을 구원한다는 생각에는 반대한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책을 너무 숭상하는 대신 인간 삶의 실질을 숭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연세가 70이다. 늙음이라는 것이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이를 먹으니까 사물이 보인다. 책을 떠나 사물을 보고 배우는 게 훨씬 정확하다. 가까운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 것을 매일 보는데, 남학생들은 축구를 하고 여학생들은 양지쪽에 앉아 립스틱을 바른다. 책을 안 봐도 인간은 스스로 찬란하고 빛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호수공원에서 나무를 직접 보고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알게 될 때 늙는 것은 참 신나는 일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젊을 때의 혼란스럽고 무지한 시절이 지나간 것이 너무 다행이다. 다시는 젊어지고 싶지 않다.

- 소설 저술 간격이 1년에서 3년 정도였는데, 『공터에서』는 『흑산』 이후 6년 만에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나.

일산을 떠나서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 등지로 작업실을 옮겨 다녔다. 몸이 안 좋아 소설을 못 쓰고 에세이를 썼다. 이제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몸이 회복됐다.

- 문체에 대해서 질문하겠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인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많은 글쓰기 책에서 인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꽃은’으로 할지, ‘꽃이’로 할지 고민했다는 것도 많은 사람이 아는 이야기다. 이번 소설 작가 후기의 맨 마지막 문장을 “2017년 설에 나는 쓰다”라고 썼다. ‘쓰다’는 동사의 원형인데 오타인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 혹은 인생이 쓰다는 건지 궁금하다.

‘쓴다’나 ‘썼다’가 맞는데 ‘쓰다’로 모호하게 표현했다. 썼다는 구체적인 행위를 보여주지 않은, 어쩌면 건방진 표현일 수도 있다. 나도 그렇게 쓴 이유를 잘 모르겠다.

- 남성적인 문체 때문에 여성주의자들이 마초주의적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무 생각도 안한다. 모범적인 답을 말할 수도 있지만, 가부장적인 생각은 한국남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유전적으로 있는 것 같다. 나는 지금도 매우 가부장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가부장은 남성우월사상 안에서 여자들을 아끼고 위하는 것이다. 여성들을 무시하고 학대하는 것은 가부장이 아니라 양아치다. 가부장에도 아름다운 게 있다. 젊은 여성들이 나를 마초적이라고 비난하더라도 두렵지 않다. 나는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라면을 끓이며』중에서 ‘남태평양’을 보면 ‘사전에 실린 그 많은 개념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말이 아니라 헛것처럼 느껴진다”는 문장이 있다. 개념어나 단어 선택은 어떻게 하나.

사전에 나와 있는 개념어들, 예를 들어 자유, 평등, 이념, 제도, 법률과 같은 거대한 말들은 대부분 안 쓴다. 내가 좋아하는 말은 인간의 삶을 직접 통과해서 나온 말들이다. 그런 말들이 좋은 말이다.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는 것으로 아는데 컴퓨터가 싫은가.

나는 기계를 안 만진다. 자동차 운전도 못하고 면허도 없다. 자전거 밖에 못 탄다. TV 대신 라디오를 듣는데 라디오도 단순한 기능만 있는 것을 쓴다. 컴퓨터에 한 번도 가까이 간 적이 없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본 적도 없다. 연필로 글을 쓰는 게 힘은 들지만 작업에 육체성이 있어서 좋다. 인간 삶에 육체성이 없으면 일을 못한다. 글도 내 손가락으로 연필을 밀고 나가는 육체성이 있어야 한다. 박물관에 있는 돌도끼를 좋아하는데, 그것을 보면 손잡이가 반들반들하다. 사람의 휴먼 터치가 있는 그것으로 구석기 시대의 어떤 남자가 처와 자식을 먹여 살린 것이다. ‘구석기 시대에도 나와 같은 남자가 있었구나. 비가 와서 사냥감을 못 잡고 빈손으로 돌아올 때 얼마나 슬펐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연필은 돌도끼나 마찬가지다. 내 삶의 육체성이 가득 차 있다. 육체성은 아주 아름다운 단어다.

김훈 작가가 6년만에 선보인 신작 소설 <공터에서>.

- 『공터에서』는 이전 소설들과 많이 다르다. 소설을 쓴 이유는.

나의 가족사와 현대사가 만나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 소설의 ‘마동수’가 내 아버지다. 1910년생인 아버지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만주와 상해, 연변을 떠돌며 살았다. 1948년생인 나는 3살 때 한국전쟁이 나서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살았다. 아버지는 20년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조금 과장된 듯 하고 낭인 생활을 한 것 같다. 아버지는 만주에서의 버릇대로 집에는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 번 들어왔다. 엄마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나도 아버지가 싫었고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과거를 과장하는 무책임한 낭만주의자였다. 당시 아버지들은 다 그랬다. 내가 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밥 못 먹는 나라의 가난, 야만적인 폭력과 정치적인 억압이었다. 3살 때 기차를 타고 피난을 가는데 8박 9일이 걸렸다. 영하 10도에 기차 지붕에 앉아서 갔다. 나는 살아남았지만 수많은 아이들이 떨어져 죽었다. 당시 기차 객실 안은 어떠했는지 아는가. 우리나라 고관대작들이 객실에 일가족과 피아노와 냉장고, 세퍼트, 요강까지 싣고 갔다. 나는 그런 나라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그런 괴로운 질문과 생각을 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거기서부터 얼마나 발전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공터에서』를 썼다. 지난 연말 광화문 촛불 집회에 나가서 보고 ‘공터’라는 제목을 떠올렸다.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은 공터에서 뭔가를 만들어봐야겠구나’ 생각하고 정했다.

- 『라면을 끓이며』를 보면 라면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 쓸 때와 에세이를 쓸 때 감정선이 다를 듯하다.

에세이를 쓸 때는 묘사도 자세히 하고 자기의 주관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도 되지만, 소설은 내가 드러나면 안 된다. 등장인물을 통해 간접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에세이를 쓸 때는 편하다. 묘사할 때도 편안한 놀이를 하는 것 같다.

- 『라면을 끓이며』를 보면 다른 글들과 달리 여자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여자를 잘 모르기 때문에 소설에는 안 쓴다. 『칼의 노래』에 이순신의 애인 ‘여진’이 나오는데 여자의 느낌, 온도, 질감을 모르겠더라. 너무 어렵고 묘사할 수가 없어서 진도가 안 나갔다. 그래서 30페이지에서 죽은 걸로 했더니 진도가 너무 잘 나갔다. 앞으로도 연습을 해보려고 하는데 연습한다고 이게 되겠는가. 이것이 나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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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말미에는 관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은 40대 가장에게는 “소라껍질도 만져보고, 소나무도 만져보고 친구 얼굴도 직접 만져보며 느낌으로 아는 사람이 돼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답했고, 글을 잘 쓰는 방법을 묻는 독자에게는 “세상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잘 관찰하고, 의문을 많이 가져야 한다”는 말을 들려줬다.

김 작가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짐을 잔뜩 지고 있어서 일어서지 못하는 늙은 말이 떠오르고, 책 표지의 말 그림이 바로 아버지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버지가 자는 걸 보면 낚시 바늘에 걸려 올라온 물고기가 아가미가 쓰려서 벌컥거리는 모습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에 간간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독자는 “강의 중 육체성을 강조했는데, 직접 김훈 작가를 대면하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경험이야말로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좋은 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건강이 나아져서 소설을 쓰고 싶은 욕구가 다시 생겼다니 독자들로서는 다행한 일이다. 올해 추석 무렵에 개봉예정이라는 영화 '남한산성'과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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