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텃밭에서 세상읽기

김한수 소설가

[고양신문] 감자를 캐는 이들마다 아주 신바람이 났다. 유기농법으로 감자농사를 지으면 씨감자의 열 배만 수확해도 대풍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농장회원들이 수확해놓은 감자를 보니 적게는 열두 배에서 많게는 열여섯 배까지 나왔다. 양도 양이지만 씨알이 어찌나 굵은지 지게차 불러야겠다는 농담이 실없이 들리지 않는다.

우리 농장 회원들이 감자를 수확하면서 풍작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관정의 물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논밭이 가뭄으로 까맣게 타들어갈 때 우리 농장 회원들은 아무 어려움 없이 밭에 물을 댔다. 덕분에 나 역시 남부럽지 않게 감자를 수확했다.

그런데 나는 남들처럼 드러내놓고 좋아할 수가 없었다. 반타작 난 감자밭 앞에서 망연자실 넋이 나간 농부들의 표정이 무시로 눈앞에 아른거리면서 공연히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이 불러온 흉작이 어찌 내 탓일까마는 방송카메라에 비친 농부들의 먹먹한 얼굴이 도통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몇 년 전, 나는 예닐곱 명의 벗들과 함께 물이 없는 농장에서 300평 규모의 감자농사를 지었었다. 그런데 그 해의 가뭄이 어찌나 극심한지 감자를 심고 수확할 때까지 비가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고, 밭은 사막이나 다름없이 황폐해졌다. 가뭄에 시달린 감자 싹은 제대로 자라질 못했고 종당에는 배배 말라비틀어졌다. 그 꼴을 손 놓고 지켜봐야만했던 우리들은 어금니를 질끈 깨물어가며 비통함을 삭혔다. 할 수 없이 감자를 수확하는데 나오는 족족 구슬감자였다. 수확을 끝내고 무게를 재보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씨감자 300㎏을 심었는데 수확한 감자가 350㎏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감자를 나눠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이후로도 나는 몇 번의 실패를 더 겪었다. 후배와 함께 500평 고구마 농사를 지었다가 굼벵이가 죄 파먹는 바람에 고구마묵을 만드는 공장에 전량 떨이처분을 한 적도 있고, 300평 규모의 고추농사공동체를 꾸렸다가 탄저병이 도는 바람에 모종 값도 건지지 못한 낭패를 겪기도 했다.  

흉작이 무언지 비싼 수업료 내가며 몸소 겪고 나자 농부들의 심정이 뼈저리게 와 닿았고, 농부들이 수확을 포기하고 밭을 갈아엎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울컥울컥 억장이 무너졌다. 지금도 나는 가뭄이나 홍수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귀농해서 농사를 짓는 벗들에게 전화를 걸까말까 수십 번도 더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전화를 넣곤 한다. 그러나 농사가 생계 그 자체인 벗들은 되레 도시에서 조그만 텃밭을 일구는 내 안부부터 챙기는데, 아마 농사짓는 마음은 다 똑같기 때문일 것이다.

마른장마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비가 흠뻑 와서 가뭄은 해갈되었으나 농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농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겨울이 올 때까지 농부들은 수없이 많은 난관을 헤쳐나가야만 한다.

가뭄이 해갈되면서 농민들은 한 시름 덜었다지만, 난 우리 모두가 밥상 앞에서 그간 고생한 농민들의 노고를 떠올리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으면 좋겠다. 지금 이 시각에도 농민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땡볕 아래서 구슬땀을 흘려가며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고, 그분들의 존재는 강 건너 불처럼 멀리 있지 않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밥상 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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