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사람들> 정명자 한국화 아티스트

[고양신문] "그림은 나이 들어서도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잇감입니다"라고 말하는 정명자(75세) 작가.

덕양구 토당동에 살고 있는 정 작가는 66세 나이에 목포에 있는 세한대학교(전 대불대학교) 조형문화회화과에 입학해 4년 과정을 마쳤고, 고희(70세) 때는 고양국제꽃박람회장 내 호수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에는 고양시 산림조합 원당지점 이전 기념으로 고희전 전시작인 소나무 그림(60호)을 기꺼이 기증했다. 정 작가는 “소요산 정상에 잘 생긴 소나무를 모티브로 그렸는데, 산림조합원으로서 쑥쑥 성장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정 작가는 일산동구 풍동, 지금의 자동차검사소 뒤가 고향이다. 7남매 중 셋째인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꽈리 등 특수작물을 재배하는 부모님을 돕느라 중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다. 일산중 1학년 2학기부터서야 다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후 고등학교 시험을 봤는데 지금의 일산고등학교에 전교 3등으로 합격했다.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또래들보다 월등하게 실력이 앞서는 딸에게 아버지는 고등학교 생활을 허락했다.

고3 시절에는 농사 외에 원당, 능곡, 백마에서 떡방앗간을 운영하는 집 일을 돕느라 분주했다. 하루 종일 떡을 해도 주문량이 밀려 졸업식에 못 가서 친구들이 졸업장을 대신 갖다주기도 했다.

정 작가는 “40대 무렵 주민자치센터 내 문화센터에서 서예를 배웠는데 점점 실력이 늘었고 3년 후에는 한국화(동양화)까지 도전하게 됐다”고 한다. 이곳 문화센터에서 10년 가까이 배우다가 사설학원에서도 10년 가까이 다녔다.

본격적으로 회원전과 단체전, 초대작가전까지 열었고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평화미술대전, 남농미술대전, 일본 대판 미술공모전,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등에서 우수상과 특선 등을 수상하며 활발한 작가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대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결국 실천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는 정 작가는 “꿈에 그리던 입학식 날 신입생 대열에 서있는데 진행요원이 다가와서 학부형석으로 가라고 계속 강요했다”며 “내가 신입생이고 함께 동행한 아들이 보호자라고 해 주변을 당혹케 했지만 당당하게 입학식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설렘 가득 안고 시작한 대학생활 4년 내내 장학생이었고, 토당동에서 새벽 5시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목포까지 지각 한 번 안하고 4년간 개근을 했다. 또한 손자 또래들의 추천으로 2학년 때 과 대표까지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방학을 이용해 노인상담사, 청소년상담사, 미술치료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며 시간을 알뜰하게 보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개인 화실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그러다가 그동안 쌓인 과로로 인해 몸이 무거워지자 화실 문을 닫고 단전호흡과 헬스장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하며 그림에만 집중하고 있다.

5년 전에는 소요산 소나무를 비롯해 화정동의 호박밭, 박제궁의 대파, 고양동의 코스모스, 호수공원 장미 등을 모티브로 그림을 그려 고희전을 열었다.

정명자 작가는 ”준비하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다"며 "항상 붓을 들고 황금 같은 인생을 건강하게 스케치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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