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 이탈행렬 부채질

서울시 회사에 비해 근무여건 열악
경력기사 유출, 초보기사로 메워
합리적 경기도형 준공영제 설계해야

 

고양시 버스회사에서 일하는 이경승씨가 차고지에서 대기중인 버스 앞에 서 있다. 올해들어 고양시 버스회사 기사들의 감소가 눈에 띄게 늘고 있어 버스운행 차질에 대한 우려가 길어지고 있다.


[고양신문] “올해 들어 기사들이 하나둘 서울시 버스회사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4개월 동안 회사를 그만 둔 숫자가 100명이 넘습니다.”
고양시를 대표하는 버스회사인 명성운수의 신종오 노조위원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회사의 인력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고양시에서 명성운수에 인가한 노선을 정상적으로 운행하기 위해서는 650여 명의 버스기사가 필요한데, 현재 인원은 515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어림잡아도 100여 명의 기사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달 1일부터 개정된 근로기준법이 시행되면서 고양시 버스회사의 인력부족 문제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새로운 법령에 따라 고용인력 300인 이상 버스업체의 경우 주당 노동시간이 68시간으로 제한됐고, 1년 후인 내년 7월부터는 주당 52시간으로 대폭 줄어들게 된다. 정부가 업계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으로 ‘탄력근로제’라는 이름으로 현행 격일제 근무형태를 한시적으로 허용했지만, 6개월의 계도기간이 끝나면 1일 2교대로 근무형태를 전면 전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명성운수의 경우 최소한 250여 명의 버스기사를 더 충원해야 하는 형편이라 회사측과 버스기사 모두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사실 고양시 버스회사의 인력부족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접한 서울시 버스회사와 비교되는 열악한 임금체계 때문이다. 서울시의 경우 일찍부터 준공영제를 도입해 노선 분배와 임금체계를 시에서 적절히 조절하기 때문에 버스기사들이 훨씬 안정적인 여건에서 일하고 있다. 1일 2교대로 장시간 운행을 강요받지 않으면서도 기본급과 수당이 높아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는다.

이에 반해 회사의 사정에 따라 근무형태와 임금체계가 결정되는 경기도 버스회사의 경우 근무시간과 급여체계가 서울시에 비해 훨씬 열악하다. 우선 근무 형태 자체가 격일제 근무라 새벽에 출근하면 최소 18시간에서 20시간 가까이 운행을 해야 한다. 운행 효율을 위한 고육지책이라지만, 사고의 원인이 되는 과로운전의 위험성을 구조적으로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기본급과 수당이 서울시에 비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사들은 적정 근무일수인 13일에 3~4일의 특별근무를 감수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게 한 달 17일 정도를 ‘종일 운행’하는 강행군을 해야 서울시 버스기사들이 가져가는 급여와 비슷한 수준의 월급봉투를 손에 쥐는 것이다.
 

"시내버스 기사의 근무여건과 수급 문제를 공공의 영역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하는 명성운수 신종오 노조위원장.


하지만 이러한 ‘무리수’마저 법적으로 금지되면서 고양시 버스기사들은 격무의 피곤보다 더 무서운 ‘수입 감소’의 두려움 앞에 직면하게 됐다. 신종오 노조위원장은 “격일제 종일근무가 가혹한 근무형태인 것은 누구나 알지만, 추가근무수당을 챙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나마 버스기사들을 고양시 회사에 붙들어두는 보루였다”면서 “탄력근무제 허용기간이 끝나고 서울시 기사들과 같은 근무시간만 일하게 되면 한 달 수입이 70만~80만원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같은 일을 하면서 훨씬 적은 월급을 받게 된다면 누구든 가까운 서울시 회사로 옮기고 싶지 않겠는가”라고 덧붙였다.

타 지자체와 비교해 고양시 버스회사에서 기사들의 이직이 가장 두드러지는 이유는 서울시 버스회사와 출퇴근 거리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고양시민들이 익숙하게 이용하는 선진운수, 동해운수, 신성교통 등은 모두 서울시 소속 버스회사다. 서울시와 고양시를 오가는 광역노선의 특성상 차고지를 비롯한 시설 일부를 고양시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고양시 회사인 명성운수, 고양교통, 서현운수, 가온누리 등 4개 업체에서 일하는 1600여 명 버스기사들은 어느 정도 경력을 쌓으면 출퇴근 여건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서울시 버스회사로 이직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만성적 인력 부족을 채우기 위해 고양시 버스회사들은 365일 신규 기사 채용 공고를 내고 있다.
고양시 대중교통과 관계자도 “버스회사의 인력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다각적으로 고심하고 있다”면서 “경기도 버스종사자 양성교육, 고양시 운수종사자 채용박람회 등의 인력채용 프로그램으로 신규 직원 채용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기사 부족 현상이 단순히 ‘머릿수 채우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버스기사의 경험과 자질은 곧바로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양시 버스회사에서 일하다 지난 5월 서울시 버스회사로 이직한 박모씨는 “서울시 회사에 일자리가 생기면 너도 나도 지원하다 보니 경력이 오래 된 양질의 기사를 먼저 뽑아간다”고 말했다. 운전경력이 풍부한 인력은 서울시 회사로 유출되고, 고양시 회사는 경력이 짧은 초보기사들이 메우는 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은 시민들의 안전을 고려할 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뭘까. 버스기사와 버스회사, 그리고 관련공무원까지 이구동성으로 ‘경기도형 준공영제 도입’을 희망했다. 그렇지만 시기와 방법에 있어서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경기도형 준공영제를 설계하려면 경기도의 각 지자체와 서울시를 연결하는 광역교통망에 대한 전반적인 조율과 수익의 합리적 분배가 전제가 돼야 하는데, 각 지자체마다 교통현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재정 여건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소위 ‘남경필표 경기도 광역버스 준공영제’가 추진됐지만, 투명하지 못한 정산시스템과 지자체 간 불평등한 재정부담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표류하고 말았다. 당시 고양시도 “흑자를 내고 있는 광역버스 구간에 시 예산 47억원을 투입할 수 없다”며 참여를 거부한 바 있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 시행과 함께 버스기사 부족 대란과 안전문제가 함께 수면위로 떠오르며 경기도 버스의 합리적인 준공영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신종오 위원장은 “한 명의 기사가 하루에 평균 500여 명 시민들을 실어나른다”면서 “버스기사들의 처우 개선 문제를 단순한 임금인상 요구로 보지 말고, 사회적 공공성의 영역에서 함께 고민해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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