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진수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원장

 

[고양신문]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에 자리한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은 일산신도시에 가장 먼저 개원한 대형병원이다. 이후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과 국립암센터, 그리고 동국대일산병원이 차례로 문을 열었지만, 일산백병원은 의료계는 물론 지역과의 다양한 상생 모델을 선보이며 고양시를 대표하는 병원으로서의 위상을 지켜가고 있다. 지역에서 가장 나이 많은 병원의 운영은 아이러니하게도 의료계에서 가장 젊은 대형병원장이 책임지고 있다. 2013년 51세의 젊은 나이에 최연소 대형병원장으로 취임한 서진수(56세) 원장이 주인공이다.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경영성과를 인정받으며 2차례 연임해,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적 조치들을 안착시키고 있다.

서진수 원장에 대한 호의적 평가는 단순히 병원 경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병원협회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며 국가의 주요 의료정책 전반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물론, 지역의 크고 작은 모임과 조직에서 특유의 친화력과 헌신성을 발휘하며 주변인들의 마음을 얻고 있다. 서 원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일산백병원 직원들 역시 권위를 내려놓은 소통의 리더십으로 직장문화를 활기차게 바꾸고 있다며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대개의 경영인들이 이런저런 수상실적 등을 나열하는 것과 달리, 서진수 원장은 인터뷰 내내 본인과 일산백병원에 대한 소박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울러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핵심 현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도 들을 수 있었다. 

"80년대 운동권 의대생에서 최연소 대학병원 원장까지,
30대에 공부하느라 힘들었죠"

 



▶ 왜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나.

특별히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없다(웃음). 대학 진학 무렵은 공대가 각광 받던 시절이었다. 개인적으로 전자공학도가 꿈이었는데, 첫 해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이듬해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진로를 선택하라는 부모님의 권유를 받아들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고등학교는 대전 보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 대학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80년대는 신군부 독재정권하에 대학이 신음하던 상황이라 학생운동이 가장 치열했던 시절이었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점점 본격적인 노동운동,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고민하며 치열하게 20대를 보냈다. 그러다가 87년 6월항쟁으로 최소한의 제도적 민주화를 이룬 후 정신을 차리고 의학도의 자리로 돌아왔다. 학부 과정에서 부족했던 공부를 전공의 과정에서 만회하려다보니 두 배로 힘든 30대를 보내기도 했다.

▶ 당시 특별히 영향을 준 인물이 있다면.

현재 내일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장명국 선생이다. 당시 장 선생은 석탑노동연구원이라는 단체를 이끌고 있었는데, 극단적 투쟁, 아니면 현실과의 타협 양자택일이라는 이분법에 치우쳐 이념적 회색 지점을 인정하지 않던 시절에 굉장히 유연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 분 덕분에 성실한 의사생활을 하며 사회적 기여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비로소 품을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뵙고 인사를 드린다.  

▶ 50대 초반에 대형병원 원장이 된 후 두 번 연임을 했다.

대학병원장 평균 연령이 60대 중반인 것에 비하면 2013년 51세에 병원장이 된 내 경우가 이례적이긴 하다. 병원장 모임에 나가면 모두 은사님 연배라 몸둘 바를 모른다(웃음).
병원 경영이 점점 전문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의료기술 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첫 임기 동안 나름대로의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것 같다.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들을 연속성 있게 추진할 시간을 보장받은 것도 의미가 크다.

▶ 본인 스스로 어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5년 차인데 아직도 가장 젊은 병원장이다(웃음). 남들보다 한 발 더 뛸 수 있는 체력과 활동력이 있다. 경영 전반을 한눈에 살피는 나름의 시야와 노하우도 생겼다. 경영의 핵심은 갈등을 조정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설득하며 새로운 정책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 약자들의 입장을 들여다보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젊은 시절이 인생의 큰 자산이 돼 준 것 같다. 
 


▶ 병원장 외에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나.

현재 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가의 의료정책을 놓고 정부와 마주앉아 조정을 하는 무척 중요한 위치다. 그밖에 사립대학병원협회에선 총무를 맡고 있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위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공과 관련해서는 정형외과 족부족관절학회 회장을 지난해까지 역임했다. 최근에는 절친인 건국대 김진구 교수와 함께 ‘운동이 약이다’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약을 쓰기에 앞서 운동을 해서 건강을 지키자는 캠페인이다.

▶ 지역사회 기여도 높다는 평가다.

그렇게 평해준다면 감사하다. 처음 병원장이 된 2013년은 병원 사정이 무척 어려운 시기였다. 살아남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적 운영 궤도에 올라섰다. 일산백병원이 자리하고 있는 고양시, 좁게는 일산서구가 안고 있는 과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기여를 할 때가 된 것이다.
소외된 계층을 찾아 의료지원을 하고, 지역을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업체들과 협약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다. 고양시 유일의 프로구단 고양오리온스 농구단과 파트너십을 맺은 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또한 고양지역의료관광협의회의 회장을 맡아 지역과 협력하는 새로운 성장산업을 모색하고 있다.

▶ 안정적 경영과 지역사회 참여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맞다. 일반적으로는 큰 병원이니 거저 굴러갈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수익과 적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형편이다. 그렇다고 병원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망할 걱정 없는 선에서 운영되는 게 적절한 것 같다. 그런 상황을 유지하면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작은 몫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 일산백병원이 국제의료재단이 수여하는 상도 받았다고 들었다.

세계보건기구장을 역임하며 큰 업적을 남긴 이종욱 박사를 기리는 이종욱 펠로우십과 학교재단에서 펼치는 이태석 기념사업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의료시스템이 부족한 국가를 대상으로 의료인력을 교육하고 보건지원사업을 펼치는 것이다. 지난 봄에는 일산서구보건소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사진제공=일산백병원>


▶ 의료제도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겠다. 협력병원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병원으로 알려졌다. 어떤 제도인가.

간단하다. 의료기관은 크게 의원과 일반병원, 그리고 대형병원의 3단계가 있는데, 간단한 환자는 작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큰 병원은 보다 큰 치료를 담당하자는 게  의료전달체계다.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좋은 의료전달체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 아무 병원이나 돈 내면 다 갈 수 있는 시스템 아닌가. 이런 나라가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외국은 1차 지정병원이 정해져 있고, 거기서 해결이 안 될 때 2차, 3차 병원으로 가도록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의료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의료전달체계 정비는 병원의 합리적 경영과도 맞물린다. 개인의원의 경우 고가 의료장비 등으로 경쟁력 갖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데, 그러면 결국 큰 병원도 부담이 커진다. 작은 환자는 작은 병원에 보내고, 큰 병원은 위중한 환자에게 더 집중해 의료서비스를 높이자는 게 의료전달체계다. 국가적으로 이게 안 되니, 고양지역에서만이라도 병원들이 협력을 맺기 위해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역에서 의료인들에게 가장 인정받는 병원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자부한다.

▶ 국가에서 의료전달체계 제도정비를 못 하는 이유는 뭔가.

2000년대 초 국가에서 1차, 2차, 3차 의료기관 시행을 시도했는데, 동시에 추진된 의약분업이 강한 반발에 부딪혀 힘을 소진하느라 의료전달체계를 유야무야 포기해버렸다. 카드를 뽑았을 때 과감히 추진했어야 하는데, 기회를 한번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언젠가는 꼭 시행해야 할 제도다. 정책이 다시 추진된다면 일산백병원은 적극 협조할 의향이 있다.    

▶ 현 정부가 추진하는 ‘문재인케어’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문재인케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의료서비스 중 의료보험 급여 범위를 현 62% 수준에서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현재 의사협회는 문재인 케어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병원협회는 국민의 보장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환영한다. 다만 너무 급하고 무리하게 추진하며 병원과 의사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 의료 수가의 현실은 어떤가.

OECD 평균에 비해 의료수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게 사실이다. 의료인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병원은 두 가지 방법을 취한다. 하나는 의료인들이 과로를 해가면서까지 환자 수를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익이 많이 나는 비급여 진료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런 의료서비스 왜곡 현상을 바로 잡으려면 비급여 의료를 급여화시키는 동시에 급여 수가를 현실적으로 맞춰줘야 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보건복지부와 적정선을 조율하고 있다.  

▶ 최근 대형병원을 무대로 한 ‘라이프’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다.

나도 잠깐 봤는데, 경영전문가가 낙하산 타고 원장으로 내려와 의료진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을 상당히 리얼하게 그리고 있더라. 작가가 의료계라는 전문가집단을 깊이 들여다 본 것 같다. 병원을 무대로 한 드라마의 시금석을 놓은 ‘종합병원’, 병원의 조직문화와 권력다툼을 치밀하게 그린 ‘하얀 거탑’ 등이 떠오르는데, ‘라이프’가 세 번째 획을 긋는 드라마로 평가받을지도 모르겠다.

▶ 상당히 날카로운 드라마 평이다(웃음). 다시 사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페이스북을 보면 다양한 친교 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하는 것 같다.

사실 일 년에 두세 번이라도 얼굴을 보는 모임이 굉장히 많다. 어떤 모임이든 나름의 의미와 재미가 있게 마련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이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은 큰 복이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 하려고 노력한다.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개인적 취미는 뭔가.

정형외과 의사라 그런지 손으로 뭔가를 맞추거나 만드는 걸 좋아한다. 병원장을 하면서는 스케쥴이 바빠 아무것도 못 하고 있지만, 나중에 여유시간이 생기면 작은 공구를 들고 DIY 제작을 맘껏 해 보고 싶다.

▶ 점심 때 컵라면을 자주 먹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쑥스럽게도 그 얘기가 너무 퍼졌다. 처음 병원장 되니까 식사를 원장실로 가져오더라. 그래서 그냥 직원식당 가서 함께 먹었다. 그런데 두어 달 되니까 다들 조용히 원장을 피하더라(웃음). 그래서 직원들 부담도 주지 않고, 시간도 아낄 겸 원장실에서 김밥이나 컵라면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곤 했다. 그렇게 몇 년을 했더니 최근에는 오히려 직원들이 함께 밥을 먹자는 요구가 있어서 날짜를 정해 식당에 내려가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엔 도시락도 싸 오고, 예전처럼 김밥이나 컵라면도 먹고, 식당에도 내려가고 뒤죽박죽이다(웃음).   

▶ 일산백병원 원장에 취임한 지 만 5년차다. 성과와 비전을 말해달라.

일산백병원은 고양에서 가장 먼저 생긴 종합병원이다. 이후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과 국립암센터가 들어섰다. 주민들에게는 큰 혜택이지만, 국가에서 운영하는 병원과 경쟁관계에 놓여야 하는 일산백병원으로서는 만만찮은 상황인 게 사실이다. 운영여건의 차이로 인해 일산병원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병원장에 취임해 병원 운영의 불필요한 요소를 줄이고, 일산백병원만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5년이 지난 지금, 적자 나지 않고 굴러갈 만큼은 된다(웃음).
다행히 일산백병원이 뿌리 내린 일산서구와 인근 파주시에 인구 유입이 늘고 있어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지역과 함께 하며 일산백병원의 재도약의 토대를 닦은 병원장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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