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백장현 고양파주 통일시민학교 교장

[고양신문] 북한의 적극적인 비핵화 조치에 뒤이은 미국의 상응조치에 온 민족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상응조치가 뒤따라야만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북한은 2016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핵 병진노선 종료와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을 결의한 이후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2016~2020년) 집행을 위해 부심하고 있다. 올해 초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 이후부터는 비핵화 약속을 실천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데 이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폐기를 단행했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의 상응조치가 있을 경우 북한 핵개발의 상징인 영변 핵시설단지를 영구 폐기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평양 시민들 앞에서 비핵화 합의에 쐐기를 박은 연설은 이제 비핵화가 되돌리기 어려운 단계로 들어섰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전언에 의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북한의 비핵화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갔기 때문에 만약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담당 일꾼들은 엄중한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됐다는 고민까지 토로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촉진자로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이제 국제사회가 북한의 새로운 선택과 노력에 화답할 차례”라며 미국의 상응조치를 촉구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이 올바른 판단임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며 “북한이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의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며 국제사회에 제재 완화 필요성을 호소했다.

미국의 상응조치

미국의 상응조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미국은 왜 미적대기만 할까?
첫째, ‘종전 선언’이다. 이는 그야말로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미국 내 강경파와 한국 내 보수파들은 북한의 비핵화가 마무리되기 전에는 절대 안 된다고 버티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북한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내심으로는 ‘종전선언’을 할 경우 ‘유엔사’의 존립기반이 무너지고 주한미군 주둔을 핵심으로 하는 한미 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53년 이후 무려 65년 간 ‘정전 상태’에 놓여 있다. 인류 역사상 찾기 어려운 매우 희귀한 사례이다. 1953년 ‘정전협정’은 조인 이후 주요 합의내용이 거의 지켜지지 않았으며, 한반도에서는 도발과 보복이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생긴 ‘공포의 균형’으로 가까스로 평화가 지켜지고 있는 실정이다. 유엔사와 공산군 사이의 정전협정 관리기구인 군사정전위원회가 중단된 1994년까지 양측에서 협정을 위반한 건수는 북한측 42만 5271건, 한미측 83만 5563건에 이른다. 이처럼 유명무실한 정전협정을 대체해 안정적 평화상태로 이끌 대안이 평화협정이고 그 중간단계로서 정치적 동력을 만들려는 것이 종전선언인데 미국과 한국 내 보수파들은 이를 결사코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와 북미 간 국교정상화이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대북 전면 금수를 단행한 이래 지금까지 70여 년 동안 교역, 원조, 융자, 투자 등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UN 차원에서도 대북 제재가 시행되었다.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자 유엔 안보리는 1718호를 필두로 1874호, 2087호, 2094호를 연달아 의결했으며,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에는 비군사적 제제 중 가장 강력한 2270호를 의결했다. 또한 그해 9월 북한이 다시 5차 핵실험을 하자 유엔 안보리는 2321호를 의결해 2270호의 민생 예외조항을 축소하는 등 더욱 강화된 조치를 취했다.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게 된 것이 경제 제재 때문인지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제재가 북핵 폐기의 중심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역사상 경제가 어렵다고 자국의 핵심 안보수단을 해체한 나라가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이는 자명하다. 경제 제재는 해당 국가의 집권층이 아닌 취약계층에 타격을 준다. 91~98년 기간 동안 이라크에서의 경제제재로 5세 이하 어린이 50만 명이 사망했는데, 그 이전과 비교할 때 영아사망률은 2배 이상, 5세 이하 사망률은 6배 이상 증가했다. 한마디로 경제 제재는 매우 심각한 인도적 악영향을 미치는 정책수단인 것이다. 유엔 안보리도 이를 의식해 결의 2270호에서 대북제재가 북한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인도적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미국은 결단해야 한다

미국 내 평화세력은 한반도 분단에 대한 미국의 역사적 책임을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반도 분단은 2차 대전 종전을 앞두고 미 육군의 찰스 본스틸 대령과 딘 러스크 중령이 탁상에서 그은 북위 38선을 기선으로 분할 점령하자고 미국이 소련에게 제안한 데서 비롯되었다. 또한 이념적 분단의 계기가 되었던 피비린내 나는 신탁통치 갈등도 모스크바 3상회의의 한국 임시정부 수립 약속이 미소공위를 거쳐 무력화되는 과정에서 격화되었다. 더욱이 미국은 5백만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한반도를 황폐화시켰던 6.25 전쟁의 발발 징후를 사전에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방조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대한민국이 현재 세계 12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데 미국의 후원과 도움이 컸던 점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백장현 (한신대 초빙교수, 고양파주통일시민학교 교장)

미국 내 평화세력은 결단해야 한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한국민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종전선언과 미북 국교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70년의 분단을 넘어 평화와 번영으로 가겠다는 대다수 한국민들의 절실한 민심을 등지고 어떻게 미국이 중장기적으로 동북아에서 패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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