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언어로 한글을 만드노니』 출간한 수학저술가 김용관씨

■ 고양의 이웃이 펴낸 새책 (1) - 『수학의 언어로 한글을 만드노니』(김용관 / 평사리 刊)

고양에 사는 두 명의 저자가 비슷한 시기에 주목할만한 신간을 나란히 발간했다. 고양시에 사는 이웃이라는 점 말고도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한 분야를 꾸준히 파고들고,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하고,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다른 이와 나누기를 즐긴다는 점이다. 새로 나온 두 책은 무척 흥미롭다. 하나는 ‘한글과 수학’을, 하나는 ‘놀이’를 다뤘는데, 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각각의 가치와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사실 책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는 책을 쓴 두 명의 글쓴이들이다.

 

수학적 시선으로 풀어낸 한글창제 원리
한글의 독창성 ‘연역적 체계’서 찾아
수학에 다양한 장르 더한 활발한 저술
“타인과 생각 나누는 일상 즐겨”

 

[고양신문] 제목부터가 독특하다. 수학의 언어로 한글을 만들었다고? 수학과 한글, 둘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걸까? 둘을 하나의 조합으로 묶어낸 이는 누굴까?

『수학의 언어로 한글을 만드노니』(평사리)에는 ‘수냐의 수상한 한글 탐험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그렇구나. ‘수냐(0을 뜻하는 인도어)’라는 닉네임을 쓰며 행신동에서 오랫동안 수학카페를 운영해 온 김용관씨의 작품.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용관씨는 수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접목해 흥미진진한 수학·인문 대중교양서를 쓰는 저술가다.

그는 스스로를 ‘수학짜’라고 부른다. 이론을 증명하고 새로운 수식을 발견하는 경지의 ‘수학자’는 아니지만, 수학의 아이디어에서 느낀 재미와 쾌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와 이웃들에게 전파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냐의 수학카페』, 『수냐의 수학영화관』, 『돈키호테는 수학 때문에 미쳤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오답』 등 그동안 김용관씨가 쓴 책의 목록은 그의 다양한 관심의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는 이 책에서 한글이 ‘연역적 체계’라는 수학적 원리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체계라는 것은 부분과 부분들이 연결된 것을 말하고, 연역적이라는 말은 누구나 인정하는 명확한 사실을 출발점 삼아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실들을 규칙적으로 이끌어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한글 창제 원리를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모든 것이 연역적 방식 속에서 전개됩니다. 저는 이것이 한글의 독창성을 말해주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의 언어로 한글을 만드노니』을 출간한 수학저술가 김용관씨.

 

저자는 자신의 견해를 전개하기 위해 『훈민정음 해례본』을 분석한다. 그는 한글을 만든 ‘세종들(세종대왕을 중심으로 창제 작업을 함께 한 이들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 당대의 사상적 근간이었던 성리학의 음양오행이론을 출발점으로 밝히고 있음을 짚는다. 이는 수학이 정의와 공리를 출발점으로 삼아 이론을 전개함과 동일하다. 음양오행에 따라 천·지·인(⦁,ㅡ,l)과 ㄱ·ㄴ·ㅁ·ㅅ·ㅇ를 기본음으로 삼은 다음에는 획을 하나하나 더해 확장글자를 만들어간다. 그런 글자가 모여 말소리가 되고, 말소리들이 모여 단어가, 다시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된다. 저자는 이 과정이 연역적 체계로 전개됐다고 본 것이다.

수학짜인 그의 눈에 어떻게 한글이 ‘발견’됐을까?

“우연히 지인을 통해 한글의 독창성을 논리적으로 분석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동안 막연히 ‘한글은 둘도 없는 위대한 문자’라고만 알았는데, 막상 들여다보니 그 독창성의 핵심을 명쾌하게 정리한 책을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름대로 공부를 하다 보니 창제 원리 속에 엄밀한 연역적 체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본 것이지요. 저는 이 과정이 우연히 만들어졌을 리 없다고 봅니다.”

저자는 세종들이 논지를 전개한 배경을 유추하기 위해 그들이 저술한 다른 분야의 책들을 살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결과 농법서, 약재서, 악보이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종들은 당대 세계의 중심이었던 중국의 문물을 바탕 삼아, 조선땅에 맞는 이론을 다시 세우려는 노력이 같은 패턴으로 반복됐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는 한글 창제의 배경과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시 말해 한글이 한자를 비롯해 주변의 다양한 언어와 음운학의 영향력 안에서 나왔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시대적 배경 없이 출현하는 문화가 있을 수 없지요. 한글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자와 카스파문자 등 당대의 문화 자산의 장점들을 거리낌 없이 수용한 결과물입니다. 그것들을 연역적 체계라는 틀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이 한글의 독창성 아닐까요?”

물론 김용관씨는 국어학자가 아닌 ‘수학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누구보다도 가뿐하게 한글이 품은 체계의 핵심을 통찰한 게 아닐까. 수학이 복잡한 세계를 정돈된 수식으로 정리하듯, 이 책 역시 한글에 대한 다양하고 복잡한 요소들을 가지치기 하고 ‘연역적 체계’라는 저자의 견해 속에 간결하게 정리한 덕분에 일반 독자들도 주제에 대한 집중력을 유지하며 흥미롭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특히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한글 속의 수학원리’는 한글의 다양한 요소를 분석해 각각 수학적 개념인 집합, 소수와 합성수, 함수, 진법, 기하학적 도형 등과 비교해 설명하고 있어, 수학짜로서의 진면목을 실감하는 쾌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에필로그도 인상적이다. 한글을 만든 진짜 이유는 뭘까, 세종들은 도대체 어떻게 연역적 체계를 고안할 수 있었을까 등 ‘이어지는 더 큰 의문들’에 대한 추가적인 관심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실 책에 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연구와 견해를 정리한 글이 더 있다”는 말을 기자에게 살짝 귀띔한다.

김용관씨는 4년 가까이 꾸려 온 ‘수냐의 수학카페’를 잠시 닫았다. 쓰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당분간 저술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어떤 모습으로든 이웃들과의 만남은 계속 이어질 게 분명하다. 다른 이들과 만나 생각과 정서의 지평을 넓히는 일을 워낙 좋아하는 성격이 어디 갈 리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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