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김종일 동화작가

김종일 동화작가. 소설가

[고양신문] 단풍이 꽃보다 아름답다. 온갖 화려한 색깔로 물든 단풍의 향연이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다. 단풍 구경을 위해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 나무들의 단풍만으로도 가을의 화려함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 머지않아 단풍이 든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긴 겨울 동면에 들어가리라.

우리네 인생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젊은 시절 호기롭게 제 잘난 맛에 살았지만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면 낙엽처럼 떨어져 스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나무와 달리 화려한 단풍으로 물들어 아름다움을 남기고 스러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아쉬움이 있다. 노후 빈곤과 질병, 고독 속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는 현실이 그러하다.

지난 9일 종로에 있는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죽고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런데 고시원 거주 희생자 중에는 70이 넘은 노인도 있었고 대부분 40~60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들이 희생을 당했다. 이들은 안전에 취약하고 생활이 불편한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었다. 우리 사회의 복지 사각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로 쪽방촌과 고시원에 거주하며 일용직을 전전하며 힘겨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노년이 힘겨운 것은 생리적 노화 때문이 아니라 빈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따라서 노인 빈곤은 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폐지 줍는 노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오죽하면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 노인들이 힘겨운 폐지 수레를 끌고 다니는가 말이다.

우리나라 고령화의 특징은 압축적 고령화라는 점이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된다. 고령화에 대비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급격한 인구 고령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7%를 2000년도에 넘겨 고령화 사회를 지났고, 2017년도에 14%를 넘어 고령사회에 벌써 접어들었다. 그리고 2026년에 고령인구가 20%를 넘어서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 거라는 예측이 나왔다. 고령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고령화의 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가장 빠른 속도의 인구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이 24년 소요된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는 17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작 고령화에 대비하는 준비는 극히 미비하니 문제가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가 있으나, 가장 큰 원인은 초저출산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못하니(?) 자식을 낳을 수가 없고,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 양육 문제로 자녀를 안 낳거나 낳더라도 하나나 많으면 둘 정도다. 그리고 가치관과 자녀관의 변화로 말미암아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와 같이 저출산 현상이 지속될 경우 고령화와 맞물려 노동인력 감소와 부양인구 증가 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고령화에 따른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문제로 대두됐다. 정부는 고령화에 따른 다각도의 정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노인 문제를 복지 쪽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복지를 강화해 빈곤 노인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야 하는 정책은 바른 정책이다. 그러나 복지에는 재정이 투여되는 일이다. 재정 확보를 위한 거시적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복지세를 신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 국민을 상대로 복지세를 신설한다면 세금 저항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세금 내기 싫어하는 민족도 없다. 따라서 새로운 세금 명목의 신설은 어려우므로, 한정적인 분야의 사람들에게 세금을 매겨야 한다. 부동산 투기와 범법으로 부정한 수입을 올리는 자들에게 과감하게 징벌적 차원의 복지세를 부과해야 한다. 소위 복지세 명목의 세금 추징이다.

무릇 모든 만물은 세월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다. 나무처럼 단풍으로 물들어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가난 때문에 그리고 질병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노년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이성이 있고 인격과 품위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처럼 아름다운 단풍으로 생을 맞이하지는 못할망정 추한 노후는 맞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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