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6년 학폭위 제대로 운영되나

0여 명의 학생들이 집단으로 학폭위에 회부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유는 집단폭행. 친구 장례식장에 왔던 한 학생이 “잘 죽었다 XXX”라고 내뱉었던 것이 발단이 됐다. 말다툼을 벌이던 중 몇몇 학생이 문제의 발언을 한 친구를 집단으로 구타했고 학폭위 심의 결과 가담학생들은 모두 강제전학 조치를 받게 됐다. 하지만 가해 측 학부모들은 피해학생이 원인제공을 한 측면이 있다며 심의결과에 즉각 반발했다. 폭행에 가담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한 처벌이 지나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결국 이 사안은 학부모 간의 소송전으로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다른 한 중학교에서는 체육시간 동안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을 10여 차례 쫓아다니며 넘어뜨리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혀온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피해학생 학부모 측에 따르면 학생부장은 해당 사건에 대해 적당히 합의할 것을 종용하고 가해학생을 두둔하는 입장을 보였으며 이로 인해 학폭위의 공정성 또한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피해학생 측은 현재 편파적인 학폭위 운영에 반발해 국민권익위에 감사청구를 제기한 상태다. 

편파성 논란, 전문성 부재 반발 
2011년 12월 22일 대구의 한 중학생이 주변 학생들의 괴롭힘에 못 이겨 투신자살을 했던 사건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교육부는 극단적인 대책을 내놓았다. 이듬해 2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예방법)은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대표적인 내용이 바로 교내 모든 폭력행위를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에서 심의·의결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모든 처분사안을 생활기록부에 남기도록 했다. 

이후 6년이 지났지만 학교폭력문제는 여전히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경기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와 비교해 피해응답률은 0.5% 증가했다. 대신 학폭위 문제는 학교현장의 또 다른 골칫거리가 됐다. 위의 사례처럼 학폭위 결과에 불복한 학부모들이 소송전을 불사하는 경우도 태반인데다가 처리되어야 할 학교폭력 사안들이 은폐되는 경우도 있었다. 학폭위에 대한 편파성 논란은 학부모와 피해학생뿐만 아니라 학교교사들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학교 안에서 법정이 열리는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아무리 사소한 다툼이라도 일단 인지하게 되면 14일 이전에 알려야하고 학폭위 회의를 소집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전까지는 자체조사를 통해 경미한 사안이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일단 학폭위로 가지 않으면 문제가 되니까.”

일선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이야기다. 해당 교사 또한 작년에 담임을 맡은 반에서 학생들끼리 다툼이 발생해 학폭위까지 갈뻔 했던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다행히 조정과 화해절차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됐지만 학부모들이 합의를 거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했다면 큰 사안으로 번질 사항이었다. 현재 법상으로는 학폭위를 열지 않으면 불법이기 때문이다. 

‘처벌중심’됐지만 피해학생 고통만 커져 
학폭예방법은 기본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해 예방과 교육적 처리를 목적에 두고 있지만 개정 이후 학교현장에서는 처벌위주로 적용되고 있다. 한 중학교 교사는 “2012년 당시 여론에 등떠밀려 개정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며 “교육적 내용은 퇴색되고 처벌위주가 됐지만 정작 학폭위를 통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아무리 심각한 사안이어도 중학교에서 내릴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는 강제전학 정도이며 이마저도 당사자가 반발할 경우 재심으로 넘어가게 된다. 재심결과조차 불복하면 그때부터는 소송절차가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 실제로 가해학생이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일 경우 생활기록부 기재를 막기 위해 패소여부와 관계없이 소송을 거는 경우가 비일비재 한 실정이다. 이처럼 학폭위와 관련된 소송이 확대됨에 따라 이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시장까지 형성되는 상황이다. 

학폭위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위원회의 전문성 문제가 이야기된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느냐에 따라 학폭위 결과가 널뛰기 하다보니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지어 같은 사안인데 학폭위 처리결과가 서로 다른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준사법기관의 역할을 함에도 위원들에 대한 별도의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제공되는 것은 교육청 처리 매뉴얼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행정적 처리절차에 대해서만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현행법상 학폭위 구성원의 과반수는 학부모로 구성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대부분 학교와 연관된 부모들이 참여하다보니 사실상 학교결정에 ‘거수기’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학폭위 처분 결과 중 경미한 사안은 생활기록부 기록 제외해야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학교현장의 책임도 무시 못한다고 생각해요. 학교폭력 문제를 적극 해결하기 보다는 주로 덮기 급급한 모습을 보여준 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현행 학폭위는 당초 목적이 사라진 지 오래고 학교폭력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한 중학교 교사는 “학교 내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종류도 다양하고 폭력 양상 또한 다면적”이라며 “하지만 학폭위는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해 처벌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학폭위 절차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학생 간의 사과와 용서라는 메커니즘은 사라지고 법적 공방만 남게 된다. 해당 교사는 “차라리 가해학생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라면 모르겠지만 현행 제도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라며 “가해학생이 제대로 사과하고 적절한 처분을 받기 위해서는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학폭위 처분 결과 중 경미한 사안만이라도 생활기록부 기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해당 교사는 “입시문제 때문에 중고등학생의 경우 생활기록부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만이라도 해결된다면 교육적 차원의 해결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교육당국의 충분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당 교사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사건을 시급히 종결하는 데만 목적을 둘 것이 아니라 피해학생의 치유와 회복, 나아가 가해학생의 회복까지도 초점을 맞추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학교 자체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며 회복적 교육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외부 전문가 집단 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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