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볼 만한 전시> 안녕! 화전상회 신장개업展

화전 벌말골목의 50년 넘은 구멍가게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

마을 이웃과 함께 ‘벌말미적공동체’ 꾸리고
이달 말까지 감동·추억 가득한 전시 열어

 

 

[고양신문] 54년 전, 30사단 건너편 화전 벌말 골목에 기와지붕을 얹은 단층건물로 문을 열었던 화전상회. 오랫동안 동네 이웃들에게 맛있는 쌀과 따뜻한 연탄을 팔았지만 마을의 쇠락과 함께 문을 닫았던 구멍가게가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가득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 9일부터 시작된 전시 ‘안녕! 화전상회 신장개업전’은 지난해부터 화전상회에 입주해 예술창작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조각가 한선현 작가의 12번째 개인전이자, 같은 골목에 자리하고 있는 다양한 작업공간이 함께 꾸미는 ‘벌말미적공동체’의 오픈 팩토리 전시다.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누군가가 보낸 화환 리본에 적힌 “지금까지 이런 전시는 없었다”는 재치 있는 문구는 이번 전시의 별나고 독특한 매력을 정확히 말해준다.


골목 자체가 커다란 갤러리

화전상회 신장개업전을 구경하기 위해 30사단 앞에서 버스를 내려 벌말 골목으로 걸어 들어가자 곳곳에서 흥성거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골목 식당 출입구에는 전시 포스터가 붙어있고, 마을 전신주에는 화전상회 한선현 조각가의 국제눈조각축제 입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번 전시가 예술가 개인전을 넘어 벌말 골목의 오래된 공간들이 동참하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방송국 무대를 제작하는 ‘코리아트러스’, 철을 주무르는 ‘한국공작소’ 등이 오래된 골목에 사람들의 훈기를 불어넣는 작업에 의기투합한 이들이다. 말 그대로 골목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다.

여기에 한 작가와 함께 공동작업실을 꾸리고 있는 이석연 작가도 자신만의 예술적 역량이 결집된 흥미진진한 오토마타(동력으로 움직이는 조형물) 작품을 선보인다. 화전상회 신장개업전에는 이웃과 함께 하는, 일상 속에 녹아든 소박하고 착한 예술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다.
 

화전상회는 내부 전시물을 골목을 지나는 주민들이 언제든지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넓은 쇼윈도를 냈다.

 

골목에 놓인 화환. "지금까지 이런 전시는 없었다"는 문구가 재치있다.


하루종일 북적북적, 동네 잔칫날

오프닝 행사가 열린 날, 많은 손님들로 화전상회가 하루 종일 북적였다. 화전도시재생 주민협의체, 사단법인 사람나무 등 지역공동체 활동을 펼치는 이들이 여럿 찾아와 공간 재생의 새로운 사례를 보여준 화전상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또한 한선현 작가와 이석연 작가의 특별한 전시를 축하하려고 동료와 선후배 작가들도 줄줄이 전시장을 찾았다. 무엇보다도 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전시장을 둘러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진귀한 풍경이었다. 누군가는 공간의 변신에 깜짝 놀라고, 누군가는 자연스레 한때 이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신장개업전에 음식이 빠질 수 없다. 따끈한 시루떡을 비롯해 다양한 먹거리로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가볍게 주고받는 술잔도 잔치의 흥을 더했다.
 

푸짐하게 차려진 화전상회 신장개업 잔칫상. 맨 오른쪽 서 있는 이가 이석연 오토마타 작가, 가운데 모자 쓴 이가 한선현 작가. 이해림 고양시의원과 고부미 전 고양시의원의 모습도 보인다.


‘화전상회집 아들’의 추억 돋는 공연

이날 잔치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화전상회 옛 주인 이인지(65세)씨의 공연이었다. 이인지씨는 54년 전 화전상회 건물을 짓고 가게를 운영한 이태호(94세) 어르신의 아들로서, 해외 생활을 하기 전인 20대 초반까지 직접 화전상회를 운영하기도 했던 당사자. 벌말 골목 역사의 살아있는 주인공인 셈이다. 지금은 부친을 모시고 일산동에 거주하고 있는 이씨는 “오래된 옛집을 이렇게 멋진 공간으로 꾸며준 작가님들이 너무 고맙다”면서 “오늘은 내 인생에서 내가 태어난 날 다음으로 기쁜 날”이라며 감격을 숨기지 않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마다 행주산성역사공원에서 1인 공연을 펼치고 있는 이씨는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서는 기타·하모니카 연주와 노래솜씨로 흥겨운 무대를 선보이며 신명나는 잔치 분위기를 이끌었다. 특히 동네에서 자란 ‘화전상회집 아들’의 근사한 공연을 감상한 동네 어르신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벌말 '화전상회집 아들' 이인지씨의 연주와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 마을 토박이 어르신들.


골목길 삶의 흔적 담은 조형·회화작품

본격적으로 전시 공간과 작품을 살펴보자. 새롭게 변신한 화전상회는 요즘 트렌드인 공간재생의 바람직한 모델로 삼을 만하다. 그것도 관 주도가 아니라, 예술가의 자생적 의지와 아이디어가 토박이 지역주민들의 정서와 부합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줘도 아깝지 않다.

전시공간은 옛 화전상회 건물은 물론, 바로 이어져 있는 낡은 집 몇 채를 한꺼번에 활용했다. 아기자기하게 연결된 방과 부엌, 복도와 통로, 다가구가 함께 쓰던 마당의 구조를 그대로 살린 덕분에 구석구석 새로운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가 솔찮다. 전시된 작품들은 형식면에서 한선현 작가의 주 종목인 목조각 작품은 물론,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입체 조형작품, 유화, 스케치, 골목에서 찍은 사진 등 시각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두루 아우른다.
 

벌말 골목을 지나며 포착한 스케치 작품을 전시한 공간. 연탄재가 쌓인 담장도 고스란히 재현해 놓으니 예술작품의 일부가 됐다.


무엇보다도 마을 이웃들의 삶의 흔적을 인상적 이미지로 포착해낸 작품들이 관람객의 눈길을 붙든다. 공사장 말뚝에 씌워놓은 목장갑, 연탄재가 쌓인 골목 한구석, 누구네 집 마당을 지키는 하얀 백구도 작품의 소재가 됐다.

이석연 작가의 오토마타 작품은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고구려 사신도에 등장하는 청룡 백호 등을 비롯해 우리민족 고유의 신화와 이야기에 뿌리를 둔 친근한 조형들이 작은 모터와 연결된 간단한 장치에 의해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고구려 사신도 속 상상의 동물을 형상화한 이석연 작가의 오토마타 작품.


“아이의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에 초대합니다”

전시공간이 들여다보이도록 골목을 향해 터놓은 유리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건물에 물건이 쌓이면 창고가 되고, 살림살이가 있으면 집이 되고, 문화적 물품이 있으면 문화적인 공간이 된다. 문화가 있는 삶이 참된 보금자리다.”

1993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이번에 12번째 전시를 열게 된 한선현 작가는 이번 전시가 “소중한 추억을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아이의 마음으로 함께 떠나는 꿈의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신장개업한 화전상회에서 출발하는 멋진 여행은 이달 28일까지 이어진다.
 

안녕! 화전상회 신장개업展

기간 : 2월 28일까지
장소 : 고양시 덕양구 화랑로 165번길 63
작가와의 대화 : 2월 16일·23일(토) 오후 3시
문의 : 010-3704-3462
 

오래된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활용한 작업공간과 전시공간.

 

전시장 앞에 놓인 장의자에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앉아 쉬고 있다.

 

54년 전 문을 연 화전상회에서 성장한 이인지씨는 화전상회의 신장개업 축하 무대에 초청돼 감성 가득한 노래들을 들려줬다.

 

한선현 작가의 전공인 목조각 작품과 재료를 엿볼 수 있는 공간.

 

벌말 주민 한 분이 한선현 작가의 회화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구경하고 있다.

 

흥미로운 공간재생 현장을 찾은 사단법인 사람나무 활동가들. 사진 왼쪽 세 번째는 화전상회의 주인장 한선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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