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영의 퇴근길 씨네마>

영화 '생일'(2019)의 한 장면.


[고양신문] 이제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혼이라 아내와 별로 다툴 일이 없다. 그래도 가끔씩 마음이 토라지는 일들이 생길 때면 그건 우리 둘이 공유하는 기억이 다를 때이다. 같은 사건을 놓고 다른 기억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 때면 결국 싸움으로 번진다. 이건 비단 개인의 상황만은 아닌 것 같다. 사회적으로도 다른 기억으로 인한 주장이 대립을 만들어내는데 때로는 그 대립의 수준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람들처럼 양 갈래로 나뉘어 서로를 물어뜯고 상대의 마음 깊은 곳까지 상처를 낸다. 최근 한국 사회가 집단적이고 공통적으로 경험한 다른 기억의 트라우마는 바로 세월호일 것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를 생생하게 지켜본 한국 사회는 더 이상 같은 곳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세월호 트라우마는 아주 깊숙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영화는 과거의 사건들을 예술적으로 재현해 내는 매체이다. 특히 한국 사회를 통째로 뒤흔들어서 트라우마를 준 역사적 사건들이 영화로 재현된다. 4·3 사건의 아픔이 조심스럽게 영화 ‘지슬’로 재현되었고 2012년 ‘변호인’으로 시작해 2017년 ‘노무현입니다’를 거쳐 19년에 개봉하는 ‘노무현과 바보들’까지 정치인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에 대한 기억을 진솔하게 다루는 영화들이 대중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연달아 개봉한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국제시장’ 등은 역사를 바라보는 대중의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조금 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한국 영화 판이 기억 투쟁의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후에도 문학은 가능한가’에서 이광호는 “세월호에 대해 쓰지 않고, 그 이름을 발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동시대의 문학은 이미 ‘그것에 대해서’ 쓰고 있다”고 했다. 그간 세월호는 다양한 수준에서 다른 장르적 옷을 입고 영화로 재현되었다. 처음에는 세월호와 관련한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서려는 노력들로 가득했던 다큐멘터리들이 주를 이뤘다. ‘다이빙 벨’, ‘나쁜 나라’, ‘업사이드 다운’ 그리고 ‘그날 바다’까지. 정부와 언론이 주장하는 세월호 이야기와는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곳이 없었고 영화는 그들의 유일한 증언대였다. 그렇게 대중은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들과 함께 세월호에 관한 진실에 다가서려고 노력했다.

이후에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남겨진 한국 사회를 위로하는 영화들이 개봉됐다. 2017년 영화 ‘터널’은 장면 묘사나 대사 그리고 미장센을 통해 풍자적이고 우회적으로 세월호를 회상하게 했고 2018년 개봉한 오멸 감독의 ‘파미르’와 ‘눈꺼풀’은 은유와 상징을 통해 세월호를 표현했다. 그리고 올해 직접적으로 세월호를 다룬 두 편의 상업 영화가 개봉했다. 한 편은 하늘나라로 간 단원고 학생들의 생일을 열어주는 NGO 단체의 활동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과 오늘을 엿볼 수 있었던 ‘생일’이고, 다른 한 편은 단원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이 세월호와 관련된 사건을 통해 삶이 변하고 성장하는 경험을 그린 영화 ‘악질 경찰’이다. 두 영화 모두 세월호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개봉 전부터 갖은 평가에 시달려야 했다. 아직 세월호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이르다는 말부터 아무리 좋은 영화여도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보지 않겠다고 하는 선언까지 다양한 말들이 먼저 오갔다. 결국 개봉 후 두 영화가 받은 성적표는 너무 초라했다. 
 

영화 '악질경찰'(감독 이정범, 2019)의 한 장면.


영화적으로만 보면 ‘생일’과 ‘악질경찰’에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젊은 감독의 입봉작으로 세월호는 신인감독이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었고, 40대 중년의 각성 이야기라는 틀거리에 세월호 이야기가 전혀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은 아직도 우리는 올바른 기억을 향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라고 희망했고 또 실제로 그럴 것 같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2년 동안 바뀐 것은 별로 없는데 세월호라는 이름은 우리의 기억속에서 지워져 가고 있다. 우리는 바다 한 가운데서 참으로 거대한 파도를 만나 죽음의 트라우마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억을 지우고 있다. 그렇게 세월호 5주년을 맞을 때 즈음 두 영화는 다시 우리가 세월호와 직면하게 해준다.

알라이다 아스만은 『기억의 공간: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에서 “문화적 기억의 위기의 순간에 예술이 출몰한다”고 말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정보가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파악하기 힘든 요즘 한국 사회가 언론을 통해 경험하는 진실은 대중의 기억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다. 

강도영 빅퍼즐문화연구소 소장

그럴 때마다 감사하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은 올바른 기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영화들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세월호에 대한 의견이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내게 필요한 정보만 섭취하며 살기도 바쁜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올바른 기억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는지 고민되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내려간 우리들이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돌아보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찾기 위해 이 기억 릴레이를 계속 해 나갈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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