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 우체국 집배원 노동환경 이대로 괜찮을까

지난 5년간 101명 사망
하루 배송 무게 70~100kg
교대근무자 없어 다쳐도 쉴 수 없어

[고양신문] 작년 25명,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9명이 과로로 사망한 집배원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 지난 2014년부터 현재까지 총 101명의 집배원이 지속적인 고강도 노동과 열악한 업무환경 등의 이유로 사망했지만 아직까지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이에 지난 6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집배원 노조인 전국우정노동조합에서 파업이 가결(92.9%)되는 등 중노동 과로문제 심각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집배원들의 노동환경 실상은 어떠할까. 본지 기자는 지난 13일 이들의 하루 일과를 쫒는 동행취를 진행했다. 하루를 함께 하게 된 집배원 A(38)씨와 미리 연락을 주고받아 취재 당일인 오전 7시에 정문에서 만났다. 그는 전날 업무를 진행하던 도중 일어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다리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출근한 상태였다.

오늘 배송해야 할 물량이 쉴새 없이 들어오고 있다.
집배원들이 택배 분류작업을 마감하고 등기우편을 분류하고 있다.

■ 오전7시, 전쟁이 시작되다

다들 정식 업무시간보다 1~2시간 일찍 나와 택배와 등기우편을 분류하고 있다. 지금이 우체국에선 비수기지만 들어오는 양이 엄청나다. 특히 화요일인 오늘은 주말에 밀렸던 물량을 다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날이라고 한다.

업무 중인 그들 사이에서 섬뜩한 말이 오고간다. “A씨, 다리 괜찮아? 뼈가 부러진 건 아니고?”, “다행이네, 뼈 부러졌으면 죽었을 텐데(엄청 힘들 텐데)”, “디스크 때문에 정말 큰일이야” 등 그들이 어떤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는지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는 대화였다. A씨는 자신이 다쳐서 빠지게 되면 그 일을 고스란히 팀원들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출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웬만하면 연차도 같은 이유로 쓰기 힘들다.

집배원들이 적재창고에서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있다.

■ 오전 8시40분, 우편물을 싣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집배원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70~100kg를 배송한다. 오늘 그에게 주어진 물량은 217개. 이들은 우편집중국에서 보내주는 택배도 분류해서 배송하고 있기 때문에 과적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일부 택배를 우체국에서 소화하는 이유는 배송에 대한 수수료가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과거에는 우편집중국에서 택배 분류작업이 진행된 상태로 왔기 때문에 업무가 수월했으나, 현재는 택배분류 작업을 진행하던 노동자들이 해고돼서 그 업무까지 집배원들이 도맡은 상황이라고 얘기한다.

A씨는 배송해야 할 물량이 많아 끈을 이용해 꾸러미까지 고정했다.

■ 오전 10시, 배달을 위해 출발했다

팀마다 배송해야 할 지역이 나누어져 있어 각자가 맡은 지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A씨도 배송을 위해 출발한다. 본지 기자도 동행을 위해 스마트폰을 확인했는데 행정안전부로부터 경기지역 폭염경보 안전안내문자가 와있다. 참고로 이날 낮 최고기온은 33도이다.

처음 도착한 현장은 한 오피스텔이다. A씨는 오피스텔과 아파트 등 주거밀집지역인 백석동 배송을 담당하고 있다. 우편보관함에 우편을 분류하기 시작하고, 이후에는 세대를 돌며 택배와 등기우편을 배송하기 시작했다. 

우정사업본부가 산출한 통계에 의하면 ‘우편은 개당 2.1초’, ‘등기는 28초’, ‘택배는 30.7초’에 끝내야 한다. 하지만 변수가 되는 사항이 많아 실제로 이 시간을 준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오늘은 오전부터 등기주소에 기재돼있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A씨는 이곳에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빠짐없이 방문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집배원이 우편을 세대별로 분류해 보관함에 빠르게 넣고 있다.
집배원이 주민에게 등기를 건네고 서명을 받고 있다.

■ 낮 12시, 오늘의 물량인 217건 중 65건을 완료했다

A씨는 장소를 이동해 아파트 단지를 돌며 업무를 이어나갔다. 업무가 시작된 이후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배송을 진행하고 있다. 동행하고 있는 기자는 뒤를 쫓느라 계속해서 숨이 차다. 아파트 단지를 돌고 정문에 있는 상가를 통과할 때쯤 앞에 있는 우체통에서 편지를 꺼낸다.

보통 업무 특성상 순서대로 움직이는데 간혹 자신의 집부터 와달라고 부탁하거나, 무언가를 빌미 삼아 불친절하다며 민원을 넣는 경우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진다. 이유는 그 민원까지도 집배원의 몫이기 때문이다. A씨는 “욕설하는 고객을 만날 경우엔 정말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 같다”며, “육체노동도 힘들지만, 감정노동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들이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고 얘기한다.

■ 오후 1시,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연신 땀을 흘리는 A씨는 오늘의 물량 중 46%를 끝냈다. 그는 원래 점심을 자주 걸렀다고 한다. 먹을 시간이 없기도 했고 식사 직후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소화가 잘되지 않아서다. 하지만 계속해서 돌아가시는 선배들을 보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식사시간이 공식적으로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정해져 있지만, 그때 먹는 집배원은 거의 없다. 업무 특성상 끝나는 시간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도착하거나 끝나는 시간이 매일 다르기 때문이다. A씨는 밥을 받고 얼마 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음 업무를 위해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이 시작된 이후 화장실 한 번 다녀오지 못한 그는 식사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뒤 업무를 위해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땀으로 인해 습기가 차서 터치가 되지 않는 업무용 PDA

■ 오후 3시, 햇빛에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A씨는 기자에게 괜찮은지 물어보며 컨디션을 확인한다. 괜찮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집배원의 속도를 맞추다 보니 굉장히 힘든 상태다. 무더위에 빈손으로 따라다니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짐을 들고 계단까지 올라야 하는 집배원들은 오죽할까.

A씨는 자신은 계속해서 해왔던 일이기에 괜찮다고 하지만 오전과 안색이 많이 달라졌다. 무더위 속에서 장시간 빠르게 다녀서 그런지 굉장히 피로해 보인다. 그는 하루종일 땀에 젖은 상태로 배송을 이어갔다. A씨는 갑자기 가지고 있던 PDA를 엘리베이터 에어컨에 가져댄다. 그는 “업무용 PDA에 땀이나 물로 인해 습기가 생기면 터치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업무시간이 지연된다”며, “대부분의 업무를 외부에서 진행하는 집배원들에겐 이렇게 지연되는 1분 1초가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고 토로한다.

집배원들의 집배구별 부하량에 대한 결과가 게시판에 붙어있다.

■ 오후 5시10분, 오늘 물량을 모두 배송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배송이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어제 배송업무 중 발생한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다리상태가 좋지 않은 A씨가 걱정된다. 오늘 받은 물량을 마감하기 위해 하루종일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A씨는 “일산이 도・농 복합도시인 것처럼 우리가 배송하는 지역도 주거밀집지역, 중심상업지역, 농촌지역 등 각각의 특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특성은 배제된 채 업무부하량이 낮게 나오는 경우엔 업무평균치를 맞추기 위해 추가로 다른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며, “현장을 한 번이라도 경험하면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데이터에 의존해 우리의 근무성과를 판단한다는 게 안타깝다”라고 말하며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업무부하량은 컨베이어 벨트가 있는 공장에서 데이터로 쓰는 것이지 택배, 등기, 편지 등을 배달하는 데 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업무를 초단위로 구분해놨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서 곧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며, “경기북부의 한 우체국 같은 경우에는 최근까지도 부하량과 물량만 보고 초과근무 수당을 산정했다. 초과근무를 했다면 일한 시간만큼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편지 분류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독수리팀의 모습.
매일 흘린 땀으로 인해 조끼에 소금기가 생긴 모습.

■ 오후 5시30분, 땀에 젖어있는 상태로 실내업무 시작

A씨는 배송업무를 마무리하고 우체국으로 귀소했다. 보통 배송이 끝나면 우체국에서 편지를 분류하고, 다음 날 오전에는 택배와 등기를 분류해서 같이 일괄 배송한다. 그는 편지량이 이전에 비해 줄어든 것은 맞지만,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은 아니기에 편지 양에 따라 집에 가는 시간이 좌우된다고 얘기한다.

A씨는 “오늘 업무를 마감하지 못하면 내일까지 이어진다. 전국적으로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업무를 마무리하지 못하더라도 다음날 조기출근이나 초과근무를 하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문제는 배달에 대한 책임을 집배원들이 전적으로 지기 때문에 그 피해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온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이런 규정이 생겼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본지 기자가 집배원과 오늘 하루를 동행하며 걸어 다닌 총거리.

■ 오후 7시, 대부분의 집배원들이 업무를 마감하고 퇴근

A씨는 이날 업무가 남아있어 조금 더 진행하고 오후 7시30분에 퇴근할 수 있었다. 오늘 하루 동안 얼마나 걸었는지 궁금해 만보기를 확인했다. 만보기에 찍혀있는 걸음은 1만6000보에 가까웠다. 기자가 오전에 집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며 걸었던 200보를 제외해도 1만5700보 이상을 걸었다. 주거밀집지역에서 이동수단을 이용한 거리를 제외하고 1만5700보를 걷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집배원들은 매일 고강도 노동을 진행하다 보니 이를 버티기 위해 저녁에 폭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아울러 반복된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관절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얘기한다. 젊은 축에 속하는 A씨도 현재 관절이 좋지 않아 병원을 자주 다니고 있으며, 선배들의 경우엔 디스크나 협착증과 같은 병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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