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애 칼럼 <어느 책모임 중독자의 고백>

[고양신문] 한창 ‘고유정 사건’이 이슈였던 때, 독서모임에서 『아웃 1, 2』(기리노 나쓰오)을 선택했다. 남편 살해, 사체 훼손 등의 잔인한 소재 때문에 회원 모두 읽기를 주저했다. 게다가 연일 계속되는 아베 총리의 혐한 발언으로 반일 감정이 높아지던 때라 일본 소설을 읽는 것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730페이지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는 그러한 염려를 묵직하게 눌렀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단순히 사람을 죽이고 범인을 쫓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웃 1, 2』(기리노 나쓰오, 황금가지 刊)

여기 네 명의 여자가 있다. 열렬하게 구애해서 결혼했는데 이젠 도박과 여자에 미친 남편 때문에 하루하루가 괴로운 야요이. 남편도 없이 병든 시어머니 수발과 철없는 애들 뒷바라지에 지칠 대로 지친 요시에. 허영심과 자격지심 등으로 카드빚을 잔뜩 지고도 늘 남 탓만 하는 구니코. 학교에서 퇴학당해 말을 하지 않게 된 아들과 회사로 인해 울적한 남편 때문에 늘 불안하고 고독한 생활을 하는 마사코. 이들은 각자 생활고 타개를 위해 도시락 공장의 야간 파트 타임을 선택한다.

왜 하필이면 도시락 공장이고, 왜 파트 타임이고, 왜 야간 근무인가? 보통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낮은 계층이 편의점 도시락을 소비한다. 따뜻하고 근사한 집밥도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자들의 몫이다. 도시락 공장은 그들의 일자리이고 그들의 주식이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군이란 한정되어 있다. 게다가 기혼 여성의 경우, 낮 시간에는 ‘주부’ 또는 ‘엄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라면 이들 네 명처럼 ‘도시락 공장의 야간 파트 타임’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존중받지 못한 이들은 ‘울화’가 가득 차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외쳐 댔는데, 사실 일찌감치 그들은 소외된 이들이었으리라. 그래서 야요이의 남편이 ‘아직도 공장에 출근하지 않았냐’고, 그런데다 ‘정답게 대해 달라’고까지 하니까 야요이의 인내심이 바닥 난 거겠지. 야요이는 남편을 가죽 벨트로 목을 졸라 살해한다.

그다음은 문제 해결 과정이다. ‘살인’은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었고, 평소 야요이를 폭행했으며, 야요이는 그를 ‘우발적’으로 죽였다. 법으로는 그를 심판할 수 없으나 도덕적으로 그는 매장되어도 마땅하다는 것이 주인공 마사코의 판단이다. 그래서 마사코는 야요이를 도와주기로 한다. 요시에와 구니코는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 함께한 경우다. 물론 이들에게 돈의 가치는 서로 다르다. 마사코는 요시에가 자식들 뒷바라지 때문에 늘 돈이 궁하다는 걸 알기에 의도적으로 끌어들인다. 구니코의 경우엔 돈 냄새를 맡아서 할 수 없이 한 팀이 되었다.

사체 훼손과 시신 유기, 네 명의 공동범죄는 그렇게 이루어진다. 물론 완벽 범죄란 존재하지 않는다. 구니코는 허술하게 흔적을 남겼고, 마사코와 요시에 역시 ‘한 번’으로 끝내지 못하고 ‘사체 처리 사업’까지 하게 된다. 이 작품의 소설적 재미는 운 좋게 경찰은 따돌렸지만 이들의 범죄를 또 다른 범죄자가 냄새를 맡고 쫓는다는 점에 있다. 마치 피 냄새를 맡고 흥분한 상어나 드라큘라처럼.

김민애 기획편집자·독서동아리 활동가.

정상참작을 하더라도 요시에는 살인을 했고, 세 명은 사체를 훼손하고 유기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후에 여러 차례 신원을 알 수 없는 사체를 훼손하여 돈을 번다. 이 기괴하고 잔인한 행위를 읽으면서 쓸쓸함과 슬픔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들의 공허감이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과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꿈꾸었을 그들이 도무지 그 안에 버티고 있을 재간이 없으니 어떤 식으로든 사회 밖으로 스스로 나오게 되는데, 그 몸부림의 수단이 그 행위로 대치된다고 하면 과장일까? 주변 인물을 사회 밖으로 끌어내 주고, 본인 역시 한 걸음 내딛는 마사코. 젊은 시절 사회에서 ‘아웃당한’ 경험이 지금의 마사코를 만들었다면, 이제 마사코는 스스로 사회를 ‘아웃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분에게도 마사코의 용기를 전하고 싶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