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권치규 작가 그리고 김경희 대표의 공간

그동안 많은 공간을 소개했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정말 마음에 드는 공간인데 소문내고 싶지 않다. 아주 친한 몇몇만 살짝 다녀가고 싶은, 나만의 시크릿 카페로 간직하고 싶은, 요 못된 마음을 꾸욱 누르고 일산에 꼭 가볼만한 곳 '문봉조각실'을 소개한다. 

문봉조각실은 문봉동 대로를 살짝 벗어나서 좁은 2차선 옛 도로 안쪽에 위치해있다. ‘문봉조각실’이라는 표시를 보고 들어서니 작업장이다. 얼핏 보고는 철공소인줄 알았다. 작업장을 지나 언덕길을 따라 몇 걸음 걸으면 예쁜 단독주택과 그보다 3,4미터쯤 위에 지어진 2층 건물이 반겨준다.

야경은 그야말로 '아트 스페이스'다. 밤이면 하늘의 별도 볼 수 있는데 '스카이 스페이스'다. 

지붕 위에서 웬 여자가 앉아서 망원경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저 여자, 어디서 많이 봤는데... 얼마 전까지 고양시청 현관 처마 끝에서 망원경 들고 있던 그 여자다. 백석역 앞에서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걸어가는 남자, YTN 신사옥 앞에 취재가방 메고 노트북을 들고 성큼 걸어가는 기자, 고양과 서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저 얼굴. 김경민 조각가의 작품이다. 

김경희 대표의 색감은 몰입에서 나온다.

문봉조각실은 부부 조각가로 유명한 김경민 권치규 작가의 작업실이자 갤러리면서 카페다. 20년 전 이곳에 터를 잡아 작품을 만들고 생활하던 공간이다. 문봉조각실의 대표를 맡은 김경희 씨는 김경민 작가의 언니. 자매는 이곳에서 세 명 씩의 자녀를 키웠다. 여섯 아이들은 자연과 작품 속에서 함께 놀며 자라났다. 작품과 아이들이 자라던 공간이 지금은 갤러리 겸 카페로 변신했다. 

해학적이고 즐거움과 볼거리가 가득한 2층 전시실. 남몰래 그들에게 두리번 거리다 말도 걸어보게 된다.

문봉조각실은 어느날 문득 생겨난 카페가 아니라 20년간 작가의 삶이 녹아있는 예술공간이다. 허브가 가득 심겨진 마당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여자와 남자, 다섯 명의 가족이 무등 타고 있는 모습, 깊은 숲속을 들여다보는 분위기의 조형물 등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 곳곳이 포토존이다. 밝은 표정, 길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 유난스레 커다란 발, 익살스러운 표정과 행동, 김경민 작가의 작품과 함께 찍은 사진은 인생사진이 되기에 충분하다. 

김경희 대표. 그에게는 문봉조각실이 삶이고 즐거움이다.

문봉조각실은 오래된 건물 느낌이 드러나면서도 창문 하나 문틀 하나까지도 작품처럼 다가오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카페에는 100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김경민 작가의 작품은 야구하는 가족, 자전거 타는 가족, 화장실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워 문 남자, 아내의 등을 밀어주는 남편 등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권치규 작가의 작품은 숲 저 너머에서 비치는 햇살같은 조명으로 실내를 멋스럽게 꾸며준다.

참 정겨운 모습이다. 책에는 무슨 내용이 있을까?

다락방을 올라가듯 층계를 오르면 그곳에도 즐거운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안쪽으로는 20명 정도는 족히 들어갈 만한 모임공간이 있다. 독서모임, 가족모임, 송년회 등 오붓하게 모임하기에 제격이다. 이 방을 보는 순간 송년회 장소로 마음속에 점찍어뒀다. 
문봉조각실의 모든 공간은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고 차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기에 적합하다. 애초에 작가 가족이 살던 공간을 변형한 곳이라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 벽이 있거나 공간이 구분되어 있다. 

1층과 2층을 이어주는 공간중에 공간. 넓지막한 테이블, 은은한 조명은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문봉조각실 김경희 대표는 “우리는 이곳이 차를 파는 카페가 아니라 문화를 함께 나누고 즐기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이곳이 좋아서 오는 분들이 하나둘 조금씩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다. 카페로 돈 벌겠다는 목표로 시작한 일이 아니라 아직 운영의 많은 부분이 유동적이다. 메뉴도 조금씩 바뀌고 있고, 문닫는 시간도 조금은 유동적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목표는 ‘문화를 즐기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점이다. 
올봄 문을 연 이후 매월 한 번씩은 이벤트를 열어왔다. 태풍이 수도권을 강타했던 지난 9월 7일에도 재미난 문화행사를 열었다. ‘가을, 커피, 음악 문봉조각실’이라는 제목의 연주회에 가와지밴드, 김창성, 홍성아 등이 공연을 했다. 초대받은 참가자 30명은 지정된 드레스코드인 연두색에 맞춰 입장해 음악과 차와 대화를 즐겼다. 

무슨 음악을 듣는지는 모르지만 꽤 평온해 보인다. 이분을 찾는 것도 즐거움이다. 찾기 힘들다.

9월 28일에는 ‘에디오피아와 커피 - 짝을 이루다’라는 제목의 행사가 열린다. 에디오피아인 부부가 에티오피아 전통방식으로 커피를 내리는 시연을 보여준다. 주최측에서 와풀을 구워주면 참가자들이 직접 토핑을 얹어서 커피와 함께 먹는 행사다. 재미난 것은 초대받은 20명이 특별한 사연이 있는 지인 1명씩을 대동해 참석하는 방식이다. 총 40명이 모여 자신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함께 어울리는 사교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문봉조각실에서 준비하는 이런 행사에는 참가비도 없다. 김 대표는 “문화를 즐기는 분들을 초대해 함께 나누는 것이 즐거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앞으로도 이런 행사를 꾸준히 기획하고 즐길 계획이란다. 

지역에 애착을 가지며 소소하고 멋진 문화공연을 펼칠 예정인 문봉조각실. 지난 9월 7일 월드산타문화예술협회와 작은 콘서트를 진행했다. 비오는 가운데도 문봉조각실 카페는 공간을 즐기고 음악을 즐기는 관객들로 꽉찼다.

조각품이나 큰 조형물은 가격대가 만만치 않아서 일부 계층만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문봉작업실에 가면 기분 좋아지는 작품들 사이에서 음료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고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그 순간의 내가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문봉작업실은 전시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공간을 내어줄 계획이다. 카페보다는 예술공간이고 싶다는 김경희 대표는 작품전시, 작은 공연, 각종 문화행사에 기꺼이 장소를 제공하고 행사를 준비해주겠다고 한다. 조만간 김경민 작가의 작품이 굿즈와 피규어로 제작되어 판매된다고 한다. 한정판으로 제작되는 미니어처를 소장할 기회가 곧 온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주소_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문봉길 34-10
전화_ 031-977-5812
메뉴_ 아메리카노, 까페라떼, 아인슈패니, 얼그레이 밀크티, 모히또, 자몽에이드, 까르보나라, 토마토 파스타, 피자, 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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