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 땅’ 부른 38년 독도지킴이 정광태

뗏목도 타고 헤엄도 치고…
독도 100번 갈 때마다 애국심 샘솟아
<기생충> ‘제시카송’으로 다시 화제

38년 독도지킴이 가수 정광태
38년 독도지킴이 가수 정광태

[고양신문] 길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독도는?”이라고 물어보면 모두가 “우리 땅!”이라고 합창을 할 것이다. 이 방정식을 만든 사람은 가수 정광태다. 20년차 고양시민이기도 한 그는 최근 영화 ‘기생충’에 삽입된 ‘제시카송’ 원작자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38년 동안 ‘독도홍보대사’를 하고 있는 그에게 독도는 애국심의 원천이자 구심점이다.
그는 일본 대사관에서 입국비자 신청을 하다 ‘고함과 호통으로 일본인들에게 염치 교육을 시킨 사건’으로 영구 입국제한자가 됐다. 이후 독도로 본적을 옮겼고, 현재 독도의 명예군수다. 울릉도에는 그를 기념하는 노래비와 표지석도 세워져 있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위치한 독도는 서도와 동도, 그리고 89개의 작은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도에는 민간인이 거주하고, 동도에는 독도경비대와 등대지기, 삽살개가 1년 내내 지키고 있다.
정광태씨는 『독도는 우리 땅』 이라는 책을 출판했고,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노래 가사를 직접 썼다. ‘아름다운 독도’라는 서정적인 노래도 만들었다. ‘김치 주제가’, ‘짜라빠빠’, ‘힘내라 힘’ 등의 응원가를 불렀고, ‘도요새의 비밀’은 가사 대상을 받았다.
동네 카페에서 그를 만나 ‘독도는 우리 땅’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가슴에 태극 마크가 붙은 한복을 입고 나왔다.

독도 방문 기념 (사진=정광태)
독도 방문 기념 (사진=정광태)

 

개그맨으로 데뷔했다는데.
처음에는 명동의 한 카페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개그맨이었다. 1973년 KBS에 ‘젊음의 행진’이라는 옴니버스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을 때, ‘한심이 이야기’라는 토크송으로 스탠딩 개그를 처음 선보였다. 이후 TBC를 거쳐 군대에 다녀왔고, KBS에서 게임쇼 보조 MC를 했다.

‘독도는 우리 땅’을 부르게 된 계기는.
1983년 ‘유머 1번지’라는 개그 프로가 있었다. 라디오 PD 겸 작가로 활동하던 박인호씨가 작사·작곡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그 프로에서 불렀다. 당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국민들의 분노가 컸던 때였고 ‘요즘 시대에 딱 맞는 노래’라고 권유를 받아 곡을 취입했다. 또 다른 음악 프로에서는 이순신 장군 복장을 하고 노래했다. 다음날부터 온 나라가 그 노래로 뒤덮였다. 노래의 힘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후배들을 불러놓고 “나는 오늘부로 개그계를 떠난다. 나는 독도를 지키러 가야 하니, 너희들은 남아서 대한민국을 웃겨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개그맨을 그만두고 독도 가수가 됐다.

그 노래로 신인가수상까지 받았다는데.
그해 연말에 남자신인가수상 후보에 올랐다. 후보에 올랐다는 자체만으로도 영광이었다. 신인가수상을 발표하는데 방청객들이 ‘정광태’를 외쳐댔고, 사회자가 실제로 내 이름을 불렀다. 수상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라 무척 놀랐다. 상을 받고 트로피를 챙기느라 늘 가지고 다니던 기타를 잃어버렸다. 상금으로 기타를 새로 장만해야 했던 에피소드가 있다. 

독도를 처음 방문한 것은 언제인가.
창설 30주년을 맞은 독도의용수비대의 홍순칠 대장이 1983년에 울릉도로 나를 초청했다. 독도의용수비대는 독도를 몸으로 지켜낸 울릉도 주민들로 구성돼 있었다. 다음해인 1984년에 해양경찰청배를 타고 처음으로 독도에 갔다. 당시에는 접안시설이 없어서 민간인들이 독도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독도경비대장과 주민들 환영이 대단했다. 당시 서도에는 독도의 최초 주민 최종덕 씨와 자녀들, 어부와 해녀들이 살고 있었다. 독도는 젊고 웅장한 대한민국의 섬이었다.

독도의용수비대 창설 30주년을 기념해 홍순칠 대장의 초대로 울릉도 방문 (사진=정광태)
독도의용수비대 창설 30주년을 기념해 홍순칠 대장의 초대로 울릉도 방문 (사진=정광태)

 

뗏목을 타고 독도에 간 적도 있는데.
2000년에 뗏목으로 독도에 가겠다고 알리고, 여의도 광장에서 한 달 동안 뗏목을 전시했다. 독도수호대 청년들과 함께 실제로 뗏목을 타고 울릉도에서 독도에 갈 때는 날씨가 좋지 않아 고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뗏목을 타고 독도에 도착했다. 그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수영을 해서 독도에 간 이야기도 마저 들려 달라.
2004년에는 울릉도를 출발해 수영으로 독도에 도착하는 행사에 참여했다. 고양시의 독도사랑회 길종성 명예독도관장이 당시 추진위원장이었다. 신청자가 쇄도했고 그 중 60명을 선발해 고양시와 북한산, 강원도에서 훈련을 했다. 8월 5일 새벽, 울릉도에서 일제히 바다에 입수했다. 87km를 릴레이로 28시간에 걸려서 도착했다. 당시 TV에서 밀착 취재를 했고, ‘우리 땅 독도를 알리기 위해서 60명의 애국전사들은 거친 파도에 몸을 던졌다’라고 보도했다. 모든 국민이 함께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장애인, 중학생, 60세 이상 어르신도 참여했다. 배를 타고 독도에 가던 유람선 승객들도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해줬다. 눈물이었고 감동이었다. 몇 년 후 조오련 선수가 그 일을 다시 했다. 2005년도에는 33인의 여전사들이 수영으로 독도에 가는 행사를 했다. 

영화 기생충의 ‘제시카송’으로 다시 화제를 모았는데.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  영화 기생충에 나온 제시카송이다. 주변에서 ‘제2의 전성기가 왔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코로나19의 전성기가 와서 행사가 없다.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강연을 하러 다닐 생각이다. 일본의 독도침탈은 대한민국을 재침탈하려는 것과 같다. 좀 더 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고양시민으로서 활동은.
호수공원과 고봉산을 좋아해서 자주 간다. 백마부대에서 강연을 많이 했다. 매년 일산문화공원에서 여는 재향군인회 행사의 사회를 보고 있다. 장애인 시설의 명예원장으로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독도지킴이 25년이 되는 해에는 문화훈장을 받았다. 큰형 정길홍 박사도 사회사업가로 모란장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안타깝게 의료사고로 고생하다 일찍 타계했다.

지금도 매년 독도를 3~4번씩 간다고 들었다.
그동안 독도를 100번 정도 다녀왔다. 배, 뗏목, 수영, 헬기를 타고 간 사람은 내가 유일할 것이다. 그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올해도 한번 다녀왔고, 8월에는 독도사랑회에서 70여 명이 3박 4일로 갈 예정이다. 독도는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일단 가보면 애국심이 솟구치게 된다. 이제 나는 66세 노인이지만 마음은 늘 독도에 있다. 페이스북에도 “나는 오늘도 울릉도 독도를 간다”고 쓴다.

2000년 뗏목을 타고 독도에 간 후 독도수호대 청년들과 (사진=정광태)
2000년 뗏목을 타고 독도에 간 후 독도수호대 청년들과 (사진=정광태)
2004년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수영 종단 성공 후 애국전사들과 함께 (사진=정광태)
2004년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수영 종단 성공 후 애국전사들과 함께 (사진=정광태)
독도 방문 기념 (사진=정광태)
독도 방문 기념 (사진=정광태)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