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욱의 시민생태이야기 에코톡

역대급 장마… 장항습지 물에 잠겨
강의 범람은 역동적인 자연현상
사람 생각 넘어서는 생태적 균형 선물

길었던 장마로 인해 물에 잠겨버린 장항습지.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길었던 장마로 인해 물에 잠겨버린 장항습지.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고양신문] 역대급 긴 장마가 지나갔다. 장항습지도 잠겼고 상류 쪽 행주역사공원 수변도 침수되었다. 하천 제방 사면에 설치했던 버들장어전시장도 피해를 입었다. 100년 빈도의 홍수에 대비해 쌓아둔 국가하천 제방이었는데 이번 장마에 불어난 강물에는 소용이 없었다. 수해 피해 복구로 한숨이 나오지만, 한편으론 요즘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하천제방에 전시장이 웬말인가,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사실 습지연구자의 입장에서 보면 제방과 고수부지는 강의 것이니 강에게 범람을 허하는 게 맞다. 강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스스로 물길을 만들고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이 물길을 인간이 만든 제방과 하천 안에서만 움직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폭력이요 무지다. 강은 언제든 자기의 길을 가려고 하고 이를 위해 항상 여유분을 만들어 두니 이것이 습지다. 육지와 강물의 중간지대에 푹신푹신한 뻘이나 모래, 갈대밭, 연성의 버드나무숲을 만드는데 이것이 하천에 발달하는 하도습지(riparian wetland)다.

장항습지 갯골 안쪽까지 물이 가득찼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장항습지 갯골 안쪽까지 물이 가득찼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이런 공간을 제 맘대로 전용한 것이 인간이다. 도시의 일부처럼 굳은 경성의 재질로 포장하고 시설을 설치하니 강으로서는 마뜩찮을 것이다. 하천공학자들은 나름 과학적으로 홍수위를 산정하고 제방높이를 결정했을 터이지만 긴 장마와 예측불허인 물폭탄에는 그 용함도 무용지물이다. 요즘 유행가 가사처럼 ‘싹 다 갈아 엎고’ 원래의 제 모습을 가지려 한다.
고수부지는 원래 강이 빗물을 받아 내던 물길이었으니 다시 내어 놓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겠는가. 다행히도 장항습지구간의 하도습지는 선버들이 우점하는 갯물숲으로 오히려 물이 들어야 사는 곳이니 이번 범람은 반가운 일이다. 비록 온갖 쓰레기와 뻘이 퇴적되어 복구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상류의 강물과 사리 때 밀려든 밀물로 오랜 만에 장항습지는 푹 잠겼다.

장항습지 안쪽 농경지도 물에 완전히 잠겼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장항습지 안쪽 농경지도 물에 완전히 잠겼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습지 범람으로 생물다양성 오히려 높아져

평상시 잠기지 않던 습지가 범람으로 잠기게 되는 것은 자연적으로 생기는 일종의 교란이다.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특별한 ‘사건’인 것이다. 보통 교란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자연에선 교란이 일어나야 생물다양성이 높아진다. 오래된 숲이나 육화된 습지는 극상종이 우점하여 종다양성은 감소한다. 외래종이 침입하고 고유종이 감소하기도 한다.

이때 번개로 인한 산불이나 홍수로 인한 범람은 새로운 천이를 유도한다. 다시 말해 잠자고 있던 종자가 발아하고 물을 기다리던 휴면란들이 발아하며, 피난 갔던 고유종들이 돌아온다. 교란이야 말로 생태적 순환의 방아쇠요 윤활유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적인 교란은 생태계의 자가치유과정이라 할 수 있다. 뭍 생명들에게 홍수로 인한 범람은 위기이자 기회이다. 

장항습지는 2006년 여름 홍수 때에 비유컨대 버드나무 머리꼭대기만 남기고 다 잠겼었다. 그 후 6년 뒤인 2012년 여름 홍수에는 버드나무 허리까지만 잠깐 잠기고 말았다. 그리고 8년만인 올해 버드나무는 목까지 잠기고 제법 긴 기간 범람이 이어졌다. 그동안 갯골입구가 퇴적되어 육화되어 가던 장항습지가 범람하여 물에 잠기면서 어떤 생태적 변화가 올까.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선버들 군락.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선버들 군락. [사진제공=에코코리아]


홍수가 생태교란종 가시박 확산 막아 

가장 큰 변화는 가시박이다. 가시박은 생태계교란야생식물로 지정되어 있는 외래침입종이다. 원래 자생하던 북미 캐나다에서는 원주민이 전통적으로 줄기를 다려서 성병치료제로 사용했으며 줄기에 독성이 있다고도 알려져 있다. 싱싱한 잎과 열매는 식용하기도 했고 특히 씨앗은 한약재로도 사용하니 꽤나 유용성이 있는 식물이었다.

문제는 호박이나 수박 모종을 접붙이는 식물로 수입하여 야생화되면서 터졌다. 특히 하천변의 건조한 지역을 융단처럼 덮어서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게 한다. 또한 육화된 버드나무습지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자라면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 빛을 가려 죽게 한다. 고유종과 경쟁해서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침입성은 가공할 만한 위력이다. 더구나 줄기나 열매는 가시로 무장하고 있으니 인간은 물론 다른 동물들이 먹기에도 힘들다.

무서운 기세로 주변을 잠식하는 가시박 덩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무서운 기세로 주변을 잠식하는 가시박 덩굴.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더 큰 문제는 씨앗수이다. 봄에 발아한 가시박은 한 개체에 암꽃과 수꽃을 따로 피우며, 그루당 평균 4만2000개, 많게는 8만개까지 씨앗을 맺는다. 늦게 발아한 개체는 적어도 250개 정도의 씨앗을 생산해 낸다. 이런 씨앗들이 땅속에 묻혀있으니 과연 인간의 힘으로 얘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데 자연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홍수로 인한 범람으로 일정기간 물에 잠긴 가시박은 뿌리부터 고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뻘을 뒤집어 쓴 넓은 잎은 물리적인 스트레스로 말라죽게 된다. 실로 범람이 주는 생태계의 지원서비스다. 

장항습지내 10만평이나 되는 농경지도 모두 침수되었다. 장항 농부들에게 위로를 건네자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한 2년 농사는 망치겠지만 땅이 좋아져 그 뒤에는 풍년이 올 거예요.”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충적평야’에 대해 농민들은 이미 몸으로 체득해 있었다. 현장에서 또 한수 배운다. 그래. 힘을 내자. 인생사 새옹지마가 아니겠는가.

가시박 수꽃.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가시박 수꽃.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가시박 암꽃.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가시박 암꽃.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가시박 열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가시박 열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가시박 줄기.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가시박 줄기.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버드나무숲을 뒤덮어버린 가시박. [사진제공=에코코리아]
버드나무숲을 뒤덮어버린 가시박.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침수 후 고사되고 있는 가시박.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침수 후 고사되고 있는 가시박.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시민들의 휴식처였더누 행주산성역사공원도 침수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시민들의 휴식처였더누 행주산성역사공원도 침수 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침수 피해를 입기 전 장항버들장어전시장 모습.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침수 피해를 입기 전 장항버들장어전시장 모습.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침수된 장항버들장어전시장. [사진제공=에코코리아]
침수된 장항버들장어전시장. [사진제공=에코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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