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랑방] 책방이듬 '일파만파 낭독회'

오픈 3년 맞은 ‘책방이듬’
신작시집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출간한
손택수 시인 초청 낭독회 개최 
“바람, 농요, 소 울음소리도 시”

책방이듬에서 진행된 '일파만파 낭독회'에 초청돼 신작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손택수 시인.
책방이듬에서 진행된 '일파만파 낭독회'에 초청돼 신작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손택수 시인.

 

[고양신문]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 10일 오후, 장항동에 있는 ‘책방이듬’(대표 김이듬 시인)에서 손택수 시인이 독자들과 만났다. 올 2월 『붉은빛이 여전합니까』라는 신작 시집을 출간한 이후 처음으로 독자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책방이듬 오픈 3년을 맞아 ‘제61회 일파만파 낭독회’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 관객들은 시인의 시집을 한 권씩 손에 들고 있었다.  

전남 담양 출신의 손택수 시인은 17년 차 고양시민으로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라는 시로 등단했다.  『나무의 수사학』,  『목련전차』,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등의 시집이 있고, 그동안 신동엽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올해 ‘제2회 조태일 문학상’을 받았으며 ‘한국 서정시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그의 신작  『붉은빛이 여전합니까』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기록이면서도 이 사회와 부딪치는 저항을 그치지 않는 서정시로서 위의를 보여 준다’는 평을 받았다.

이날 손택수 시인은 시를 감상하는 법, 시적인 언어를 찾는 법 등에 대해 들려주고 관객들과 함께 시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인은 “고양시에서 두 번째 시집을 낸 후 지금까지 계속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저에게 고양시는 글쓰기의 수호지 같은 공간”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강연을 요약한다.

손택수 시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참가자들.
손택수 시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참가자들.

책방이듬은 고양시의 문화적 자산

일산은 축복받은 도시다. 고양시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시와 소설들을 쓴다. 그들이 책방이듬을 다녀가면 책방과 관계된 시, 노래,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단순히 책방이 아니라 미디어 같은 역할을 하는 문화적 자산이다. 그동안 100명 이상의 작가들이 다녀갔다니 대단하다.

고향의 정자, 면앙정과 시정

제가 태어난 담양에는 면앙정과 시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면앙정은 양반들이 시를 짓는 정자로 높은 곳에 있다. 반면 시정은 평지에 있는 정자로, 농부들이 땀을 식히고 아낙네들이 빨래하다 쉬는 곳으로, 그곳에는 시가 없었다. 시가 없는데 왜 시정이라고 불렀을까? 생각해 보면 시정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농부들의 농요 소리, 아낙네들의 이야기 소리, 소 울음소리, 이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세상에는 면앙정에 있는 것처럼 글자로 된 시 ‘유자서(有字書)’가 있고, 시정에 있는 것처럼 글자가 아닌 시 ‘무자서(無字書)’도 있다. 언어 사이의 침묵, 가을 하늘의 여백, 기호화되지 않은 사물의 소리, 이런 것들도 전부 시이지만, 우리는 무자서를 읽을 줄 모른다. 시는 의미화할 수 있는 부분과 의미화할 수 없는 부분이 함께 있는 생명체다. 문자 너머의 시를 망각하면 아주 협소한 시가 된다.

시를 향유하는 법

저는 면앙정과 시정을 오가면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제도교육을 받으면서 유자서의 삶을 충실하게 익혔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주제와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해가 안 돼도 아름다운 작품들을 향유하는 방법은 많다. 특정 작가가 좋으면 그의 모든 것에 무작정 끌리게 된다. 정리할 수 없는 고요한 떨림이나 시인만의 분위기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20세기의 시나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들은 잘 빚은 항아리처럼 매끈하다. 반면 요즘 젊은이들의 시는 매끈한 항아리에 수많은 금을 낸다. 균열이 가고 조각조각 파편화된 것 같다. 그것들이 우리를 꿈꾸게 하고 살아 숨 쉬게 하고 울림을 준다. 익숙하게 내면화한 제도, 개념, 질서, 상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바란다.

제도권의 언어 뒤집는 시적 언어

제도권의 언어는 “무엇은 무엇이다”에서 절대 바뀌지 않는다. 왜 뻐꾸기는 항상 ‘뻐꾹뻐꾹’, 토끼는 '깡충깡충', 파도는 '철썩철썩'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를 기호의 감옥 속에 가둬 획일화시키고 기계화시켜서 상상력을 억압한다. 다른 언어로 표현하면 틀린 존재, 이상한 존재, 아웃사이더가 된다. 뻔한 질서를 뒤흔들고 시적 발화를 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제도 언어를 끝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면서, 자유롭고 성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의 시간과 속도에 끌려다니며 살게 된다.

일상언어와 제도언어의 특징은 철저하게 도구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구로서의 생명이 끝나면 폐품이나 쓰레기가 되어 버려진다. 요즘은 이별도, 해고도 휴대전화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도구적 삶을 살면 안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시적 언어, 정서적 언어들을 통해서 일상을 누릴 때 우리 삶은 달라질 것이다.

글쟁이들은 꼭 국어사전 봐야

글쟁이들은 반드시 국어사전을 봐야 한다. 저도 가끔 시가 안 써지면 국어사전을 본다. 눈감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단어 하나를 고른다. 다시 아무 페이지나 펼쳐 단어를 골라 그 두 단어를 연결해 본다. 평상시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 문장이 만들어진다. 이게 개념화되고 제도화된 질서들을 넘어서는 가장 초보적인 상상력의 모습이다. 이런 연습을 우리 아이들에게 시키고, 우리도 자기 안의 어린 예술가를 찾아내기 위해서 연습을 해야 한다. 여러분들도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일상의 질서를 넘어서고 깨뜨리는 훈련을 해 보기 바란다.

가난 체험이 시 '찬란한 착난'으로

“북한산 아래 지층방에 머물면서부터는 빛을 뼈아프게 실감한다 담벼락 아래 창문으로 적선처럼 땡그랑 떨어지는 빛을 따라 옷가지를 옮겨가며 말리고, 키우던 수선화 분도 뱅글뱅글 자전을 한다” - 시 '찬란한 착난' 중에서

독바위역 근처 지하에 토굴을 파고 작업실을 꾸린 적이 있다. 몇 년 전 장마철에 비가 엄청나게 와서 밤새워 물을 퍼내기도 했다.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일상 속에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빛,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다. 지금 코로나 국면과 비슷하다. 그때 제가 체험한 가난이 시에 더 깊이 다가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일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떨어뜨려서, 아픔, 슬픔, 좌절 같은 상태 속에 있어 보는 것, 이것이 우리를 시에 더 가까이 가도록 한다. 시인은 ‘잘 실패하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능숙하게 ‘잘쓰는’ 사람이 아니라 ‘자주 쓰는’ 사람들이다.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끝없이 시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잘쓰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자주 쓰는 시인들을 사랑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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