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의 이웃 김이듬 시인
전미번역상 루시앙스트릭상
시집 히스테리아로 동시 수상

한글 시집 『히스테리아』와 영문 번역본을 들고 포즈를 취한 김이듬 시인.  수상 소식을 듣고 얼떨떨했다는 김 시인은 이번 수상을
한글 시집 『히스테리아』와 영문 번역본을 들고 포즈를 취한 김이듬 시인. 수상 소식을 듣고 얼떨떨했다는 김 시인은 이번 수상을 "시의 정신을 치열하게 구현하라는 째찍질"로 받아들였다.

김이듬 시인이 시집 『히스테리아』로 한국 문학사에서는 처음으로 전미번역상과 루시앙스트릭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등단 20년을 맞은 김 시인은 고양시에 거주하며 일산호수공원 근처에서 ‘책방이듬’을 운영하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찾은 책방 입구에는 단골손님들이 걸어놓은 축하 플래카드가 걸려있었고, 책방 안에는 꽃다발이 가득했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수상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얼떨떨했어요. 앞으로도 시를 잘 쓰라는 격려의 손길이 저에게 다가왔다고 생각해요. 시의 정신을 치열하게 구현하라는 채찍질이기도 하죠. 그동안 마음을 비우고 살았어요. 저는 한국에 인맥, 학연, 지연이 없거든요. 힘들 때 대화를 나누고 위로받을 문인도 드물어요. 책방에 오시는 손님들과 페이스북 친구들이 제 인맥이죠. 홀로 시를 쓰며 살아갈 고독한 운명인가보다 생각하며 살았죠.
이번 상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는 제가 썼지만, 책을 구입한 독자가 있고, 훌륭한 번역자들이 있고 그걸 출판해준 출판사가 있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니, 앞으로 한국 문단에 희소식들이 많이 들릴 것 같아요. 제가 물꼬를 튼 셈이죠.

두 상은 어떤 상인가요.
전미번역상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국 문학번역가협회(ALTA)가 수여하는 상이에요. 올해로 22회를 맞았는데 매년 그해에 미국에서 나온 세계의 시와 소설 번역 서적 중에서 한 권씩 선정하죠. 그리고 루시앙스트릭상은 아시아의 작가들 작품만을 가지고 선정하는 상이지요. 같은 작품으로 한 해에 두 가지 상을 동시에 받은 첫 번째 사례여서 그들도 놀랐다고 해요.
번역은 세 명이 함께 했어요. 미국인 번역자 제이크 레빈은 서울대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고, 현재 계명대 교수로 재직 중이에요. 제 시는 한국인들도 난해하다는 분들이 있는데요, 미국인이 번역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겠죠. 미국에 유학 중인 최혜지, 서소은씨가 번역에 합류했어요.

수상작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어떤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나요.
2014년 초에 미국에서 제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이 먼저 번역됐어요. 당시 “굉장히 독특하고 충격적이면서 센세이션하다”는 평가를 받았죠. “그 시집도 괜찮았는데 이번 시집은 더 좋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믿을 만한 시집으로 인정받았다고 하더군요. “도시의 일상적인 경험들을 도발적인 언어로 그려낸 흥미롭고 놀라운 작품이다. 현대 시들은 틀에 갇힌 합리성과 서정성을 추구한다. 반면 이 작품은 보편적인 미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적인 규범과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있다. 한국 페미니즘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김이듬 시인이 운영하는 '책방이듬' 입구에는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김이듬 시인이 운영하는 '책방이듬' 입구에는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표제 시 ‘히스테리아’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언젠가 만원 전철을 탔을 때 누가 제 엉덩이를 만져서 소리를 질렀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저를 이상하게 보는 분위기였어요. 그 충격이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데요. 분노가 가라앉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사람들이 비인간적으로 변해간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보이지 않게 이런 일을 당할까 싶었고, 아웃사이더에 대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시를 쓰면서 인간과 세계를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시가 세상을 구할 수는 없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어느 정도 구원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만약 시를 쓰지 않고 이런 공간만 운영했다면 경제적인 부분만 고려했을 텐데, 시를 쓰는 사람이라서 이곳에 오는 주민들이나 독자들, 작가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어요.

시인의 시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가요, 재즈, 클래식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은 다양해요. 시 또한 다양한데, 다른 장르의 예술에는 관대하면서도 시는 감동이 바로 오지 않으면 쉽게 외면하죠. 자신의 취향이 아니거나, 이해를 못 하면 읽지 않아요. 가끔은 시를 대중적으로 써보려고 해도 저만의 특징이 들어가게 돼요. 제 시집을 마음으로 읽으면 별로 난해하지 않을 거예요. 다소 접근하기 어렵더라도 곱씹어 보면 좋겠어요. 푸른 하늘, 향기로운 꽃, 희생적인 어머니만 시에 담아야 하나요? 왜 분비물, 더러운 사물, 몸을 파는 여자는 시로 쓰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써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누가 그런 못을 박아놨는지, 그 못을 다 빼고 싶어요.

시에 있어서 못이란 어떤 것인가요.
재작년 경주의 호텔에서 국제펜클럽 세미나를 할 때 『히스테리아』 시집에 있는 ‘시골 창녀’라는 시를 낭독하는 도중에 객석에 있던 한 남자가 고함을 쳐서 놀란 적이 있어요. 당시 쇼크를 받고, ‘시에는 그런 말을 쓰면 안되나’ 고민했던 시집이 공교롭게도 이번에 상을 받았어요. 미국에서는 “시가 후련하고 통렬하다. 약자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말을 대변해 주고 있다. 이렇게 화를 내는 시가 놀랍다”며 칭찬을 받았다고 해요. 이제는 시간이 흘렀고 사회적인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죠. 그때의 사건이 남긴 마음의 상처가 다 낫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분이 이해가 되기도 해요.

앞으로 계획은.
시인이 직접 책방을 운영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변방에서 다른 일에 종사하더라도 꾸준히 시를 쓰면 그 시는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서 더 먼 세상에서 오래도록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장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지라도, 소신 있게 쓰다 보면 분명히 인정받을 수 있지요. 언어는 놀랍고 신비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거든요.
앞으로도 저는 ‘책방언니’이자, 평범한 이웃이고 싶어요. 책방에서는 이번 주 24일에 김경윤 작가가 ‘작가가 되는 법’을 강의할 예정이고요. 31일에는 ‘우리들의 낭독회’라는 행사도 진행할 계획이에요.

고양의 이웃들에게 인사의 말씀 해주세요.
저는 고양시가 좋아요. 이곳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 월세가 저렴한 곳을 찾고 있어요. 이제 책방이듬 시즌1을 끝내고, 시즌2를 부담 없는 공간에 마련해서 주민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예정이니 그때도 찾아와 주세요. 시인은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전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일상 속에서 공감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눠 갖는 존재죠.
친구, 약간의 돈, 시를 쓸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저는 만족해요. 3년 동안 꾸준히 책방을 찾아오시는 분들, 책방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공간이라고 말해주는 분들이 존재하는데요. 그분들이 저에게 용기를 줘요. 한 사람을 얻는 것은 세상을 얻는 것과 같다는데, 저는 수십 명의 세상을 이미 얻은 셈이죠.

'책방이듬' 내부.
'책방이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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