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직접 민주주의 첫발 주민자치회, 무엇이 달라지나

고양 44개 주민자치회 출범
3월부터 곳곳에서 총회 개최
갈등과 혼란의 첫걸음 딛고 
풀뿌리 직접 민주주의 실험

국민과 가장 밀착된 마을의 변화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지지하는 대통령이 당선된 유권자도 있고, 떨어진 유권자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이제 마음을 정리를 할 때가 왔다. 대통령은 내 마음대로 만들기 쉽지 않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는 영역도 있다. 바로 지역이다. 예전 같으면 지방선거가 지역을 바꾸는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이제 더 가까운 대안이 생겼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일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주민자치회이다. 동별로 구성된 주민자치회는 자치센터 운영은 물론 마을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프로그램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주민자치회는 지역주민과 가장 밀착된 행정의 최소단위이며 지역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치기구이다. 

삶의 결정권을 높여가는 참여의 길 
그냥 말만 들어서는 잘 공감이 가지 않겠지만, 주민자치회의 출범은 소리 없는 혁명이나 마찬가지다. 행정과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는 일에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동안은 시의원, 도의원,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 등 누군가 유권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하는 행위가 유일한 참정권이었지만, 이제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해 정책을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내가 살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인 동 행정의 정책 결정권에 영향을 미치는데 불과하겠지만, 주민자치회 기능이 조금 더 성장하면 고양시 정책 모든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라를 바꾸는 일은 오래 걸리고 쉽지 않지만, 이제 지역을 바꾸는 일은 나의 참여에 의해 도전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민 참여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의 틈새가 제도적으로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선출직 정치인들에게 너무 기대지 말고, 나와 이웃을 믿고 참여하고 연대해서 내가 사는 마을을 바꾸고, 삶에 대한 나의 의사결정권을 조금씩 높여가는 일에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다. 

2020년 중산동 시민총회 현장. 자치계획을 보고하고 주민의제를 주민투표로 선정했다.
2020년 중산동 온라인 시민총회 현장. 자치계획을 보고하고 주민의제를 주민투표로 선정했다.

문재인 정부, 지역에 준 마지막 선물 
가장 짧은 시간에 정권을 내준 문재인 정부지만, 지역의 입장에서 보면 잘 한 일도 있다. 주민자치회가 출범할 수 있도록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지방분권 강화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최소한의 분권 틀은 만들어 놓았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약칭 지방분권법)’이다. 이 법을 근거로 각 지역마다 주민자치회 관련 조례가 만들어 졌고, 올해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안타까운 점은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 자치분권과 관련한 공약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공약집을 들여다보면, ‘건강한 지방자치’라는 항목이 하나 있는데, 막상 내용을 보면 자치분권과 관계가 약한 공약들이다. 지방소멸에 대한 이주활성화 지역 지정, 지역별 문화격차 해소, 통장님 이장님 수당지원 등이 골자다. 대통령 당선자는 물론 ‘국민의힘’ 진영이 자치분권 정책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공약집에는 통장 이장의 임명 근거를 지방자치법으로 상향하고, 특화 예우하는 조례를 만들고, 특화 수당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주민자치회가 출범하면서 약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통장과 이장의 권한을 확대하고 보장하겠다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행정의 지시체계인 통장과 이장의 권한은 옹호하고 주민자치회의 권한은 약화시키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지점이다. 

대리정치보다 나와 이웃을 믿으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출발한 제도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법으로 보장된 주민자치회의 권한을 살리고 못 살리는 주도권은 오히려 주민에게 있다. 더 많은 주민들이 주민자치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면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의 장을 만들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좀 귀찮은 행정기구 하나가 더 생긴 셈이 될 수도 있다. 대리정치는 대리정치일 뿐이다. 현재로서는 가장 강력한 참정권인 선거제도를 통해 내가 원하는 정치인을 잘 뽑는 일이 아주 중요하지만, 사실 정치인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민주주의는 누구도 믿지 않는, 모두를 의심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고 한다. 그래야 더 나은 기회를,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 시작은 싸움의 연속일 수도 
주민자치회 참여는 나와 이웃, 마을을 믿고 연대하는 일이다. 일단 내가 참견하기 쉽고, 그 참견이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 나라 일에 참견하는 것 보다는 훨씬 효율적이다. 주민자치회는 지난 2020년 처음 구성되고 이제 태동의 단계에 진입했다. 태동의 진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하고 다양할 수 있다. 권한을 내주어야 하는 행정과 권한을 가져와야 하는 주민의 싸움부터, 주민자치위원 선출과 운영권을 둘러싼 싸움 등등 온 동네가 싸움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자치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일 수 있다. 이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자치와 분권, 풀뿌리민주주의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삶과 이웃이 원하는 삶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주민자치회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 아직은 인적 자원도 부족하고 제도적 한계도 많지만 현재 주어진 조건에서 성장의 길을 찾고, 점진적으로 나아질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우선 주민자치회 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 실행되고 있는 주민자치회 구성과 운영, 권한과 역할에 대한 정보를 개괄적으로 이해 할 수 있도록 정리해본다. 

고양시 44개 동 주민자치회 출범 
현재 고양의 주민자치회는 44곳, 모든 자치센터마다 주민자치회가 만들어 졌다. 기존의 동사무소 역할은 각 동별 행정복지센터로 전환되고, 행정복지센터와 협업하는 주민참여 주체로 각 동별 주민자치회가 출범했다. 주민자치회는 행정복지센터의 업무 중 일부를 위탁 수탁 받을 수 있고, 독자적인 사업과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자치센터와 문화센터 프로그램 운영권과 기타 유휴공간이나 공공시설에 대한 운영권도 가질 수 있다. 또 마을을 발전시키고 활성화 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고양시 주민참여예산 사업도 신청해 진행할 수 있다. 나아가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 수익사업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수익사업의 이윤은 지역을 위해 공공적으로 환원해야 한다. 

위원 50% 이상 공개모집 공개추첨 
주민자치회 위원은 20명에서 50명 까지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구성할 수 있고, 위원장은 위원들의 투표로 결정한다. 주민자치위원은 추첨과 추천 방식으로 선출한다. 우선 주민자치위원 공개모집을 통해 신청한 주민 중 6시간 이상의 주민자치 교육을 이수한 주민을 대상으로 공개추첨을 통해 50% 이상을 선출한다. 그리고 지역의 단체, 입주자회, 학교, 공공기관 등에서 추천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선정위원회가 심사를 진행, 추천 위원을 선출한다. 추천위원의 수는 50% 미만이다. 주민자치회 별로 지역 여건을 고려해 분과나 분소를 만들 수 있어 사안별 지역별 현안을 분업해 다룰 수 있다.   

주민총회 주민투표로 마을예산 집행 
주민자치회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는 주민총회이다. 주민자치회별로 연 1회 이상 주민총회를 개최해야 하고, 이 총회를 통해 사업과 예산을 심의 받아야 한다. 심의는 주민투표를 통해 의결된다. 투표를 통해 결정되지 않은 사업은 추진할 수 없다. 총회에서 다루어지는 안건은 주민자치회 활동평가, 동 행정사무에 대한 의견제시, 다음연도 자치계획안, 주민참여예산에 대한 계획 등 주민자치회 활동 전반에 관한 사항이다. 고양시도 올해 3월을 시작으로 주민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서 올 초 주민자치회가 구성된 후 이제 막 서로 인사를 나누고, 사업을 고민하는 단계에서 총회를 치러야 하는 곳도 있어 갈등과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회를 통해 의결되지 않은 사업은 추진할 수 없기 때문에 힘겹게 총회를 진행하는 곳도 있고, 사업을  늦추더라도 6월 이후로 총회를 미룬 곳도 있다. 이 과정에서 원리원칙대로 진행하기를 원하는 고양시 집행부와 현실적 여건을 감안해야 한다는 주민자치회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첫 총회는 태동기의 주민지치회가 넘어야 할 크고 높은 산이 되어 버렸다. 

보조금 참여예산 주민세 등 예산투여 
주민자치회의 운영예산은 고양시 보조금과 주민참여예산, 그리고 지역별 주민세로 부담된다. 고양시는 올 초 각 주민자치회별로 3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총회 등 초기 사업을 집행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하반기 2000만원의 추가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다. 그러나 고양시가 추가 예산 2000만원에 대해 총회를 3월 내 추진하는 주민자치회에 우선 배분한다는 입장을 내놓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예산권을 쥔 행정과 예산을 받아야 하는 주민자치회의 갈등이 시작된 셈이다. 일부 주민자치회 위원들은 예산에 대해 시가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주민자치회 예산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이 원하는 사업에 예산이 투자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공모를 통해 배분되기 때문에 절실하고 참신한 사업을 발굴한다면 더 많은 예산을 받을 수도 있다. 지역별 주민세는 지역별 가구수에 따라 다르다. 고양시는 지역 간 예산 격차를 줄이기 위해 주민세 상한선을 1억원, 하한선을 5000만원으로 잡았다. 출범 초기인 올해는 예산이 다소 불안정하고, 고양시 보조금이 주축을 이룰테지만, 내년부터는 주민세 예산과 주민참여예산 추가 확보 등으로 상당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 

자치센터 등 공공시설 운영권 가져  
주민자치회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주민자치센터 운영이다. 주민자치센터는 각 동별 행정복지센터 내 공공 공간이다. 시설 여건에 따라 행정복지센터 외 별도 의 공간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고양시의 경우 대부분 자치센터가 행정복지센터 시설을 그대로 활용한다. 주민자치센터는 주민을 위한 문화, 복지, 편익, 시민교육 등 지역사회 공공기능을 활성화 하는 공간으로 이용될 예정이다. 주민토론회, 회의, 문화행사, 생활체육, 마을문고, 청소년공부방, 평생교육, 알뜰매장, 마을기업 등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센터 외에서 지역의 학교 유휴공간이나 공원의 유휴공간, 공공시설 등 공유가 가능한 공간을 활용해 지역과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과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는 국민과 가장 밀접한 지역에서 참여를 보장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통로이다. 이제까지 없었던 권한을 주민에게 주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선물을 지역사회에서 백분 잘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새롭게 주어진 권한을 다시 내어주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민의 참여이다. 태동의 진통을 다중의 지혜로 잘 넘기고, 주민자치회가 직접 민주주의를 연습하고 경험하고 실천하는 민주주의 광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직접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마을의 변화가 지역과 나라, 세계를 바꿀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힘일 수도 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