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3주년 특별 기획④부풀려진 재건축 기대감, 이대로 괜찮은가 

대선·지선 지나며 정치권이 기대감 부풀리고
자산가치 올린다는 희망에 ‘너도나도’ 재건축
단지별 세대수에 맞춰진 1기 신도시 공공시설 
기존 도시계획, 전면적인 재수정 필요할 수도 

[고양신문] 아파트의 수명은 어느 정도 될까. 전문가들은 아파트 수명이 일반적으로 구조물의 뼈와 살이 되는 철골 콘크리트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국내 아파트의 구조를 이루는 철근콘크리트의 물리적 수명은 보통 100년으로 보고 있다. 철근·콘크리트 자체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썩지 않는 검증된 재료이기 때문에 아파트의 물리적 수명을 100년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주택시장에서는 아파트의 연한이 20~30년만 지나도 재건축 사업이 화두에 오른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재건축을 추진했던 아파트들의 평균수명을 조사한 결과 26.9년으로 30년을 채우지 못했다. 반면 평균적으로 일본은 54.3년, 미국은 71.9년, 프랑스는 80.2년, 독일은 121.3년, 영국은 128년이 지나야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실제 수명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크게 짧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아파트의 ‘경제적’ 수명을 40년으로 보고 있는 이유다. 철근콘크리트로 건설한 건축물을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한이 평균 40년이라는 것. 우리나라 아파트에 20~30년 거주했을 경우 배관 등 수리가 필요한 부분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전기, 배수, 환기, 냉난방 등 내부설비 배관이 철근콘크리트에 내장되어 있어 이러한 내부설비의 성능저하에도 교체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녹물이 나오고, 하수구가 막혀 폭우가 내릴 때 물이 역류하기도 한다. 또한 밀폐 기능이 떨어져 곰팡이가 쉽게 번지고 난방과 냉방 기능도 떨어져 입주민들은 ‘새 아파트’를 희망하게 된다. 결국 그렇다보니 재건축 연한 기준인 ‘준공 30년’이 되어가는 아파트는 서서히 재건축 시장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 재건축 붐에는 문제가 없을까.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빨라지는데 여기저기서 세대수가 늘어나는 재건축을 해도 괜찮을까. 개보수와 점검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내부설비 배관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배관의 수선이나 교체가 용이하도록 시공할 수는 없을까. 고양신문의 이번 창간호에서는 재건축 붐의 고양시 현황, 이러한 재건축 붐이 일어난 이유, 그리고 재건축 붐 추진 시 알아야 하는 점과 우려되는 점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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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이전만 하더라도 아파트 리모델링이 노후아파트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 대안이었다. 재건축의 경우 아파트 준공 후 30년 이상 연한을 채워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15년 이상이면 사업 조건을 충족한다. 또한 리모델링은 안전진단에 있어서도 덜 까다롭다. 재건축은 건축물 안전진단에서 D등급 이하가 나와야 하는데 리모델링은 C등급 이상만 받으면 사업에 들어갈 수 있다.

리모델링 약 10개 단지 비해 
재건축 40여 개 단지 넘어서  

여러모로 재건축보다 사업 문턱이 낮은 리모델링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었고, 정책적으로도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경기도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컨설팅 시범단지’ 사업을 벌여 작년 3월 고양시의 문촌16단지(주엽동)를 시범단지로 선정했다. 고양시도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경우에 한정해서 용적률을 상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고양시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하기도 했다. 또한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해 구도심 전역에 걸쳐 지구단위계획을 재정비하는 용역도 추진하려고 했다. 

실제 고양시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서도 리모델링 열기가 나타났다. 올해 5월에는 문촌16단지, 강선14단지(주엽동)가 조합설립인가를 받았고 뒤를 이어 별빛8단지(화정동), 장성2단지(대화동), 옥빛16단지(화정동), 강선12단지(주엽동) 등이 조합창립총회를 열거나 추진위를 출범시켰다. 고양시 제1호 조합설립 단지인 문촌16단지 관계자는 ”이르면 8월말 경 시공사 선정을 예상하고 있고, 올해 하반기에는 안전진단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대선, 지방선거 등 두 번에 걸친 선거 기간에 재건축 공약이 쏟아지면서 분위기는 달리지기 시작했다. 용적률 500% 상향을 비롯해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 촉진을 위한 특별법’ 제정,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 정밀안전진단 면제 추진,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완화 등의 공약이 나왔다.

이에 재건축 연한 기준인 ‘준공 30년’이 도래하는 1기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용적률 상향에 대한 ‘환상’ 때문에 이미 리모델링 조합이 결성된 단지에서도 재건축 추진 움직임이 일 정도로 재건축은 붐이 일었다. 대선 기간 이후 재정비사업의 축이 빠르게 리모델링에서 재건축으로 옮겨간 것이다. 특히 여러 개 단지를 하나로 모아 재건축을 추진하는 통합재건축 추진이 고양시 재정비사업의 주류가 되고 있다. 
지난 5월 통합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발족한 후곡마을 3·4·10·15단지(일산동)에 이어 후곡마을 7·8단지(일산동)와 문촌마을 1단지(주엽동)가 통합재건축 준비위 출범을 목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백마마을 1·2단지(마두동)와 강촌마을 1·2단지(마두동) 등도 통합재건축 논의가 한창이다. 현재 고양시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10개 단지 남짓인 반면 재건축 추진단지는 어림잡아 40개 단지를 넘어서고 있다.

재건축 용적률 상향의 조건   
공공시설·임대주택 기부채납 의무  

재건축은 얼핏 집주인 입장에서 손해볼 게 없는 장사로 판단할 수 있다. 가령 용적률 상향 적용을 받아 20층짜리 아파트를 허물고 30층 새아파트를 만든다 치면, 새로운 10층 아파트를 분양해 수익금으로 챙길 수 있다. 재건축을 위한 공사비도 이렇게 들어온 ‘분양대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 

하지만 재건축 용적률 상향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재건축이 자산가치를 획기적으로 상승시키는 도구가 아니라는 지적도 한다.   

우선 완화된 용적률의 일정비율을 임대주택, 공공시설 등으로 기부채납해야 한다는 데 큰 이유가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는 정비사업 시행시 기부채납 규정을 명시되어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용적률을 완화해주는 반대급부로 예산을 들이지 않고 지역에 필요한 도로, 공원, 상하수도 등 공공시설을 확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재건축 조합원들이나 사업시행자들에게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공공시설 ‘기부채납 비율’이 높을수록 사업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용적률 상향으로 조합원들이나 사업시행자는 얼핏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결국 세대수, 인구수가 늘어나게 되면 도로, 공원,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 확충이 필요하게 되므로 기부채납의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재건축을 서두르기보다 특별법에 구체적인 사항이 명시됐을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도 합리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고양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자문위원인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재건축 용적률 상향의 기본전제가 공공기여다. 공공기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땅을 기부채납하거나 공공시설물을 기부채납하는 것이다. 1기 신도시 재정비사업 특별법에서 용적률 상향의 조건으로 기부채납 비율이 확정됐을 때 비로소 재건축의 사업성을 보다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재건축에 대한 기대심리가 너무 커져있다. 사실 정치권이 무책임하게 유권자들의 탐욕만 키운 측면이 있다. 여야를 가릴 것없이 대선을 치르면서 용적률 상향만을 공약으로 내세우다보니 기대감을 부풀렸다”고 지적했다. 

재건축 용적률 상향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다. 재건축 후 세대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주거환경이 열악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양시 대부분의 아파트 용적률은 현재 130~200%의 저·중밀도로 계획되어 있다. 일산 등 1기 신도시들은 계획 단계에서 단지별 세대수에 맞춰진 도로폭, 공원면적 등 기반시설이 이미 규정됐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대규모의 재건축이 추진된다면 기존 도시계획을 전면적으로 재수정해야 한다. 교통량이 늘어나게 됨에 따라 도로를 넓혀야 하고, 공원과 녹지 규모를 더 크게 해야 하며, 학교를 더 지어야 하고, 상하수도 용량을 증대해야 한다.

공공기반시설 확충 등 도시 전체의 전면적 재수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저마다 높아진 아파트들이 하늘을 가리게 되고, 그만큼 조망권, 일조권도 위협받는다. 사람 사는 도시가 아니라 콘크리트 정글이 되는 셈이다. 

용적률 499%로 지은 수원 ‘화서역 파크푸르지오’ 전경. 작년 8월 입주가 시작된 이 아파트는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용적률 완화의 폐해 사례로 지적되기도 한다. ‘홍콩식 닭장 아파트의 재현’이라는 지적이다. 사진출처=나무위키
용적률 499%로 지은 수원 ‘화서역 파크푸르지오’ 전경. 작년 8월 입주가 시작된 이 아파트는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반면 용적률 완화의 폐해 사례로 지적되기도 한다. ‘홍콩식 닭장 아파트의 재현’이라는 지적이다. 사진출처=나무위키

대표적 실패사례, 서울시 공공재건축 
“주민선호도에만 맡기는 건 무책임”  

재건축과 관련해 가장 대표적인 실패사례가 서울시가 최근 몇 년간 추진한 공공재건축이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서울시는 공공재건축을 통해 용적률을 상향시키고 일정부분을 임대주택으로 기부채납하게 해 주택난 해소를 이루려했지만, 공공재건축이 받아들여진 곳이 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용적률은 크게 높아졌어도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이권에 민감한 강남의 어느 아파트단지도 공공재건축에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용적률을 500%까지 높이기보다는 차라리 인허가를 위한 통합심의, 절차의 간소화가 재건축의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하더라도 고양시에서 재건축의 성공 가능성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용적률이 140~150% 정도의 저층 단지들은 재건축을 추진해볼 만하다고 지적한다. 재건축 연한 기준인 ‘준공 30년’이 도래하지 않았지만 대표적으로 용적률 완화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정발산 연립주택 등 일산에도 제법 재건축에 유리한 단지들이 있다.

다만 아파트 재건축 추진은 사적재산 측면이기도 하지만 공공적 접근도 필요하다. 각 단지별, 혹은 통합재건축이 추진되기는 하지만 도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산발적으로 추진되다 보니 종국에는 도시전체의 틀이 흔들릴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재건축을 추진하되 옆 단지와의 관계성, 혹은 도시전체 속에서의 조화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지적한다.   

백준 대표는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주민들의 선호도에만 맡기는 것은 공공적 입장에서 매우 무책임한 태도다. 리모델링 기본계획과 재건축 기본계획을 통합적으로 검토하고 향후 도시계획의 방향성을 재설정해야 한다. 고양시의 리모델링 정책처럼 재건축과 관련해서도 기본계획을 세우고 시범단지를 선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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