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예술프로젝트’ 포기 통보받은 벌말미적공동체 한선현 작가

‘벌말예술마을 프로젝트’ 주도한 장본인
신도시 발표 이후 사업 스톱, 소통 단절
서로 책임 떠넘기는 소극행정에 “분통”
“오랜 가치, 새 공간 조화된 마을 만들자”

5년간 열정을 바쳐온 '화전 벌말 예술마을사업'의 무산을 고양시로부터 일방 통보받은 한선현 작가.
5년간 열정을 바쳐온 '화전 벌말 예술마을사업'의 무산을 고양시로부터 일방 통보받은 한선현 작가.

[고양신문] 13일 열린 ‘화전지역 도시재생 활성화계획 변경을 위한 주민공청회’에서 ‘벌말예술마을 환경개선사업’을 실질적으로 포기하겠다는 방침을 고양시 도시재생과 관계자로부터 통보받은 한선현 작가(벌말미적공동체 대표, 화전도시재생주민협의체  부대표)는 “말할 수 없는 허탈과 분노를 느낀다. 시가 도시재생 사업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고 홍보했던 주민들을 허수아비 취급하는 느낌”이라는 말로 답답한 심경을 전했다.  

한 작가는 벌말예술인마을 사업을 태동시킨 장본인이다. 벌말은 30사단 정문 앞을 지나는 화랑로에서 창릉천을 향해 꺾어 들어간 600여m의 골목길(화랑로 165번길)을 따라 오래된 주택과 식당, 잡화점, 공장, 철공소, 교회 등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자연마을이다. 목조각과 회화 작업을 왕성히 펼치던 한 작가는 옛 골목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벌말에 반해 비어있던 가게를 얻어 ‘안녕, 화전상회’라는 예술아지트로 꾸미며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됐다.

이후 무대장치를 제작하는 코리아 트러스, 철공작업을 하는 한국공작소 등 주변 이웃들과 의기투합해 자발적으로 마을재생작업을 시작했다. 이 모습을 눈여겨 본 고양시의 제안으로 화전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벌말지역이 포함됐고 ‘벌말예술마을 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됐다.

하지만 창릉3기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며 모든 일정이 멈춰섰다. 사업 주체인 고양시 도시재생과도, 현장 실무 추진과 소통을 담당해야 할 도시재생지원센터도 책임 있는 논의를 미룬 채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을 수년째 반복했다. 하지만 오랜 희망고문 끝에 돌아온 것은 ‘사업 취소’라는 일방 통보였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기자 앞에 한 작가는 메모와 스케치로 빼곡한 여러 권의 노트와 자료들을 펼쳐보였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벌말예술마을’ 추진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은  흔적들이다. 한 작가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한선현 작가가 펼쳐놓은 벌말예술마을 관련 설계자료와 메모수첩. 
한선현 작가가 펼쳐놓은 벌말예술마을 관련 설계자료와 메모수첩. 

공청회에서 벌말예술마을 사업 변경이 제시됐다. 사전 논의가 있었나.
단 한마디도 없었다. 공청회가 오후 2시였는데, 당일 오전에 다른 모임 때문에 화전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를 찾아갔다가, 오후 공청회에서 벌말 사업에 대한 언급이 있을 거라는 언질을 들었을 뿐이다. 

사업을 함께 설계하고 추진한 장본인인데, 소통이 단절된 이유가 뭔가.
나도 그게 답답하다. 초기에는 고양시에서 벌말예술마을 프로젝트를 도시재생사업의 모범적 사례로 한껏 홍보했었다. 주민들이 먼저 동력을 제안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3기 신도시 발표 이후부터 소통이 뜸해지더니, 언제부터인가 아예 남들이 다 아는 얘기를 나만 모르는 황당한 처지가 됐다. 

그동안 시에서는 사업이 지연되는 사유를 뭐라고 설명했나.
설명이라도 했으면 답답하지 않겠지만, 그냥 “기다려달라”가 전부였다. 그동안 담당 팀장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고, 그럴 때마다 부서를 찾아가 목적과 경과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며 조속한 사업추진을 요구했다. 하지만 “타 부서와 협의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라는 답변만 들었다.  

벌말예술마을 프로젝트, 어떤 사업인지 간단히 설명해달라.
말 그대로 오래된 삶의 자취가 남아있는 벌말에 사람의 온기와 예술의 즐거움을 심는 사업이다. 예술가들을 위한 마을이 아니라, 주민들과 예술가들이 어우러져 함께 공간을 가꾸고, 아름다운 이웃 공동체를 회복하려고 했다. 사업에 필요한 주민동의서도 일찌감치 모두 받았을만큼 이웃들의 공감대도 탄탄했다.
아트갤러리, 출판사, 공방,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 도시재생의 취지에 어울리는 외부 예술가들과 자영업자들의 관심도 높았다. 시에서 약속했던 환경개선사업만 계획대로 추진됐으면, 다채로운 콘텐츠를 채우는 일은 활발하고 순조롭게 진행됐을 것이다. 
  
시가 말을 아꼈다고는 해도, 벌말이 3시 신도시 구역으로 추가 편입될 수 있다는 소문을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소문과 행정의 정책은 엄연히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벌말예술마을 프로젝트가 중단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시에서는 단 한번도 꺼낸 적이 없다. 희망고문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들리는 얘기로는 2년 전에 그런 방침을 정했다는 건데, 그렇다면 적어도 당사자들에게는 시의 방침을 빨리 공개하고, 소통을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적극 행정을 펼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서끼리 서로 책임을 미루며 주민들만 바보로 만드는 행정에 분통이 터진다.     

벌말이 창릉신도시에 편입되는 걸 반대하나.
그렇다. 벌말이 왜 3기 신도시에 추가 편입돼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시대에 던지고 싶다. 이유는 단 하나, 경제 논리다. 신도시 한가운데 섬처럼 오래된 마을이 남아있는 모습을 모두가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벌말을 도시재생의 성공적 롤모델로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오래된 가치와 새로운 기능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신도시이고, 도시재생일 것이다. 지난 5년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해 온 소중한 경험과 가치들을 무책임한 행정이 짓밟지 말아달라. 
물론 현재 주민들의 의견은 여러 갈래로 갈렸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를 준비했던 이웃들은 여전히 우리가 꿈꾸어온 ‘벌말예술마을’을 포기할 마음이 없다. 고양시가 다시 진지한 대화에 나서주기를 바란다.  

벌말미적공동체 사랑방 역할을 하는 ‘안녕, 화전마을’ 상회 앞에 선 한선현 작가. 
벌말미적공동체 사랑방 역할을 하는 ‘안녕, 화전마을’ 상회 앞에 선 한선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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