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윤의 하류인문학

김경윤 인문학자

[고양신문] 일국의 대통령이 100일 동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백서(百書)를 내놓았다는데, 일개 시민이 백서를 못 내놓을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본래 백서는 백서(白書)라 씁니다. 정부가 정치·경제·외교 등에 관한 실정(實情)이나 시책을 발표하는 보고서인데, 표지가 하얗다고 하여 백서라 했다지만, 흰 백과 일백 백조차도 구분이 중요하지 않게 된 오늘날이고보면. 이참에 나의 백서를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백일이라고 백 가지 사건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설령 백 가지가 아니라 천 가지 사건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모두가 하나 같이 중요한 것이 아닐터이니, 대통령 취임 후 백일동안 일어났던 일개 시민의 이런저런 생활 사건 기록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요즘은 자신의 일정을 수첩에 기록하지 않고 핸드폰 다이어리에 적어놓는 것이 대세인지라, 핸드폰 다이어리를 중심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대통령이 취임하던 5월 10일 화요일날 저녁에 나는 젬베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 배우는 젬베는 벌써 3년이 다 되어갑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배울지는 저의 생물학적 조건이 결정하겠지만, 모든 괴로운 일상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악기 하나쯤 연주하는 일은 참으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행복한 일이 아닐가 싶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권장하고 싶은 활동입니다.

4월부터 시작했던 고양시 시민연사 프로젝트 <내나이 365>도 계속 잘 진행되어 8월에 잘 마무리되었으니, 이 또한 보고할만한 내용입니다. 한 달은 글쓰기를, 한 달은 말하기를 전문인에게 배워 자신의 이야기를 녹화하고 공개하는 프로젝트인데, 고양시민 10여 분이 참석하여 즐겁게 진행했습니다. 조만간 그 결과물이 고양시 평생교육과 홈페이지와 각종 SNS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시민이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 진행되는 이런 프로젝트는 이후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네요.

6월은 지방선거로 시작했네요. 결과들이야 다들 아실 것이고, 제가 후보로 참여한 것도 아니니 일개 시민의 보고사항은 아닌 것 같고, 2년 남짓 지속되었던 글쓰기 모임이 결실을 맺어, 그동안 같이 공부했던 문우(文友)들이 자신만의 책을 계약한 것은 참으로 보고하고 싶고 축하하고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시민들이 읽는 시대가 아니라 쓰는 시대로 넘어가야한다고 주장해온 바, 앞으로도 주체적인 글쓰기, 자기발견의 글쓰기, 민주시민적 글쓰기가 확장되리라 생각합니다.

7월에 저에게 가장 큰 일은 제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한 달 남짓한 휴가를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 빈 공간을 교인들이 매꿔 교회를 운영했는데, 제가 맡은 부분은 주보 만들기, 예배 사회보기였지요. 성직자는 아니지만 성직자의 마음으로 다가가 직접 경험해본 드문 기회이자 고난이었습니다. 이 한 달 기간 동안 제가 깨달은 것은 성직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 것 중 많은 것은 참으로 별 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하기에는 참으로 힘든 것 투성입니다.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요. 

8월에는 한 출판사에서 노자 관련 책을 써보자고 제안이 들어와서 이모로 저모로 수고로웠습니다. 그 와중에 장모님의 구순도 맞이했고요. 글쓰기반의 1박2일 성석동 엠티도 진행했네요. 아, 그리고 네 종류의 노자공부하기 프로젝트 <노자 페스티벌>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달입니다. 그리고 한국 역사상 최악의 물난리가 일어난 달이기도 하네요. 대통령은 어떻게 지내셨는지 잘 모르겠으나, 저는 힘들고, 바쁘고, 즐거웠습니다. 아참, 대통령 취임 100일이 되던 날이 큰아들 생일이라서 생일카드를 정성껏 쓰고, 5만원을 첨부했습니다. 좋아하더군요. 이상 일개 시민 백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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