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영역 넘어서 정치색 드러내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 이후에 수립한다는 국토부 발표 이후 주민반발이 거세지자 이를 진화하기 위해 국토부가 후속조치를 내놓았지만 주민들은 대통령의 ‘공약파기’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23일 일산을 비롯해 분당, 평촌, 산본 등 1기 신도시 주민들은 ‘1기 신도시 특별법 공약 이행 촉구 시민연대(가칭)’를 결성하고, 정부의 1기 신도시 특별법 공약 이행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1년 앞당긴 2023년 상반기까지 1기 신도시 재정비마스터플랜을 완료해야 한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재건축을 추진하는 백송마을의 한 주민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조정,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완화 등 대선 공약 중 하나라도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조치를 정부가 내놓지 않았다. 지금까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정부가 향후 내놓는 여러 조치도 믿음이 안 생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토부, 9월부터 연구용역 추진 
주민반발에 떠밀려 국토부가 내놓은 후속조치 역시 ‘제스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23일 국토부가 내놓은 후속조치는 크게 두 가지다.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1기 신도시 태스크포스(TF)를 확대·개편하고 차관급으로 격상한다는 것, 그리고 9월부터 당장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하겠다는 것' 등이다. 

국토부는 후속조치에서 재정비 추진의 ’속도감‘을 강조하고 있지만,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이 늦춰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1기 신도시 재정비는 단순 정비사업이 아닌 새로운 도시모델을 제시하는 과제로, 인구구조 변화, 4차 산업혁명, 기후변화 등을 고려한 새로운 개념의 도시계획과 기반시설 확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토부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오는 8일 이동환 고양시장을 비롯해 1기 신도시 5개 지자체장과 간담회를 가진다. 이 간담회에서 수렴된 의견을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에 담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도 ‘1기 신도시 종합대책’ 발표 
국토부에 불만의 화살이 쏟아지자 경기도의 김동연 도지사가 1기 신도시 재정비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4일 김 도지사는 분당 샛별마을 한 아파트를 방문해 ‘1기 신도시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내용으로는 ▲도지사 전담조직 구성 ▲시급한 재정비 사업 재정 지원 ▲노후화 실태 조사 ▲재정비 개발 방향 수립 등을 제시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6일 이동환 고양시장과 함께 고양시 백송마을5단지 삼호풍림아파트를 방문해 입주민들로부터 고충을 듣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6일 이동환 고양시장과 함께 고양시 백송마을5단지 삼호풍림아파트를 방문해 입주민들로부터 고충을 듣고 있다.

이어 26일에는 고양시 백송마을5단지 삼호풍림아파트를 방문해 단지 내부뿐만 아니라 지하 배관실, 지하주차장을 들여다보며 입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김 지사 측은 성남 분당, 고양 일산에 이어 부천 중동, 안양 평촌, 군포 산본 등 나머지 3개 신도시도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도지사의 이러한 행보는 차기 대권경쟁을 염두에 둔 다분히 정치적인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대로라면 국토부와 경기도, 모두 재정비 관련 전담팀이 생기고, 각자 연구용역을 하게 된다.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연구원에서 지난 2월부터 1기 신도시 재정비 방안 연구에 착수했고, 경기주택도시공사는 8월 초 1기 신도시 재정비 개발방향 종합구상 용역을 시작했다. 

이처럼 국토부와 경기도가 별도의 정비방안을 모색하게 될 경우 업무중첩은 물론 효율성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주민들에게 혼선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 내년 ‘도시재정비기본계획’ 재수립 추진  
한편 국토부, 경기도와는 별도로 고양시에서도 1기 신도시 재정비 관련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수립과 정비구역지정, 안전진단 실시, 조합설립·사업계획 인가, 준공 처리 등이 모두 고양시장의 권한에 포함되기 때문에 고양시도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재건축을 추진하려면 고양시는 가장 먼저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재건축은 사업준비단계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수립 ⟶ 안전진단 ⟶ 정비계획수립 및 정비구역지정의 절차를 밟는다. 

고양시는 이미 연구용역을 통해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작년 5월에 수립하고 고시까지 했다. 하지만 일산의 노후아파트 재건축 계획은 포함되지 않아 고양시는 기본계획을 다시 수립하는 절차를 밟기로 했다. 올해 들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재건축 관련 공약이 쏟아지며 1기 신도시에서 주민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고양시 재정비관리과는 “이전의 기본계획 연구용역이 발주되던 2019년 말 당시에는 일산신도시에서 재건축이 가능한 준공 30년 된 아파트단지가 없었다”며 재건축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전했다. 강촌마을 일부단지 등 올해부터 일산에서 처음으로 준공 30년 된 아파트단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고양시 재정비관리과는 “내년에 본예산에 반영해서 기본계획을 새로 수립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연구용역은 보통 1년 반 내지 2년이 걸린다”고 전했다. 기본계획 내용에 대해서는 “연구용역을 통해 정비예정구역을 지정하게 된다. 정비예정구역을 지정하기 위해서는 각 아파트 단지의 노후도, 비용분석을 통한 사업성, 이주대책, 기반시설 확충 계획 종합적으로 검토해 지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고양시가 내년에 시작하는 기본계획 연구용역이 정부가 2024년 이후에 내놓기로 한 1기 신도시 재정비 마스터플랜과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마스터플랜이 고양시의 기본계획에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2024년 이후에야 고양시의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고 기본계획이 수립될 수밖에 없다. 고양시 재정비관리과는 “최대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정부의 마스터플랜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기반시설 확충안, 이주대책 관련한 내용부터 연구용역에 담을 것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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