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빛시론

 

박수택 생태환경평론가

[고양신문] 봄이 왔지만 주위는 조용하다. 새들이 짝을 이뤄 알을 품고 새끼를 키워내느라 바삐 움직이고 지저귀여야할 텐데…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골에서 새들이 죽어나가는 레이첼 카슨은 의문을 품었다. 해양생물학자이기도 한 카슨은 면밀한 조사와 연구를 거쳐 화학물질 농약 특히 DDT가 주범임을 알아내 고발하고 나선다. 해충과 잡초를 없앤다고 마구 뿌려대는 농약 제초제 따위 각종 화학물질에 생태계가 오염된다. 화학물질 영향으로 새가 낳는 알 껍질이 얇아져 부화 번식이 실패하고 만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도 예외가 아니다. 농약회사, 화학업체들은 카슨의 책이 나오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이들의 후원을 받는 정치인들도 카슨을 공격했다. 1962년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 출간되자 책의 진가를 알아본 시민 독자들 덕분에 여론이 뒤집힌다. 당시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백악관에 환경문제자문위원회를 설치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출범하고 1972년에 DDT는 마침내 사용이 금지됐다. 

‘침묵의 봄’은 출간된 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태 환경 분야의 고전으로 꼽힌다. 카슨이 위대한 역작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펜실베이니아의 자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새를 비롯한 동물을 보고 생명에 대한 사랑을 지녔기 때문이다. 책을 집필하는 5년 동안 머문 메릴랜드 교외의 집 정원엔 새 모이통(버드피더)이 남아있다. 카슨은 특히 아이들에게 자연을 통해 경외감을 느끼는 경험, 평생 간직할 수 있는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자신도 새로부터 영감을 얻었음은 물론이다. 새는 생태 환경의 건전성을 살펴보는 잣대가 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 캐나다 등의 구미 선진국 시민들은 새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다. 집 정원이나 공원에 새가 번식할 수 있는 둥지 상자를 만들어 달아주고, 새들이 좋아하는 씨앗류나 쇠기름을 놓아둔다. 새들이 물 마시고 목욕하도록 항아리 뚜껑 깊이로 물을 담아두기도 한다. 새를 통해 자연을 알고 즐기며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다. 

▲ 20세기 환경학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 ‘침묵의 봄’.
▲ 20세기 환경학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 ‘침묵의 봄’.

들로 산으로 강과 바다로 새를 보러 가는 활동을 탐조(探鳥)라고 부른다. 탐조 인구가 많은 북미와 유럽에서는 새를 보호하고 새들이 모여드는 자연환경을 지키는 단체와 기관도 다양하다. 미국에는 오듀본협회, 미국조류보호연맹(American Bird Conservancy), 영국엔 왕립조류보호협회(Royal 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Birds ; RSPB)가 유명하다. 일본에는 1934년에 결성된 일본야조회가 88년의 연륜을 자랑하며 일본에서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환경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엔 이렇다 할 단체나 조직은 없지만 탐조인과 동호회는 꾸준히 늘고 있다. 새와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지자체도 생겨나고 있다. 전북 고창군은 지난달 고창갯벌 유네스코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하는 탐조대회를 열어 전국의 탐조인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전남 순천시는 겨울철새 흑두루미를 지키기 위해서 지난 2009년에 순천만 대대들의 전봇대와 전깃줄을 철거했다. 흑두루미가 3백에서 지금은 3천 마리가 넘게 찾아온다. 지구 생물다양성에 순천은 큰 기여를 하는 셈이다.

새와 자연 보전에 순천이나 고창은 여전히 특별 사례로 꼽힌다. 전국 어디라 할 것 없이 마구잡이 개발로 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특히 고속도로나 지방도로, 아파트 단지나 학교 주변 투명 방음벽에 새가 부딪쳐 죽는 ‘조류 충돌’ 사고는 심각하다. 국립생태원 김영준 박사가 꾸준히 실태를 조사하고 문제를 제기한 덕분에 개선을 촉구하는 여론은 높아졌다. 환경부가 개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조류 충돌 방지 기능이 있는 문양의 방음판 사용'을 고시로 권고하기 시작했다. 조류충돌 저감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도 현재 27곳으로 늘었다. 인구 108만의 ‘특례시’엔 아직 조례도 없다. 지역의 탐조 모임 ‘새와 사람 사이’가 삼송 원흥지구 도로변 투명 방음벽을 2020년에 1년 동안 24회에 걸쳐 관찰한 결과 방음벽에 부딪쳐 죽은 새 243마리를 찾아냈다. 연간 충돌 개체를 추정하면 550~840마리가 된다. 지난해 경기도가 이곳에 시범으로 충돌 방지 무늬를 넣었다. 부딪쳐 죽거나 다치는 새가 얼마나 줄었는지, 사후 조사가 필요하다.

▲ 고양시 도래울초등학교 앞 방음벽에 새가 부딪혀 죽어있는 모습. 사진=고양신문DB 
▲ 고양시 도래울초등학교 앞 방음벽에 새가 부딪혀 죽어있는 모습. 사진=고양신문DB 

‘도시에 새가 날아오는 이유는, 도시가 생겨나기 전부터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산과 한강, 창릉천과 공릉천, 고봉산과 정발산, 호수공원에다 장항습지까지 있어 고양은 다양한 새가 많이 찾아올 만한 곳이다. 고양시처럼 국제적인 멸종 위기종에 천연기념물인 재두루미가 오는 고장은 전국을 통틀어도 10곳 정도뿐이다. 시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새의 자태와 지저귐을 즐길 수 있다면 고양의 생태 복지는 높아진다. 도시가 새를 받아들이면 새는 도시를 바꿀 수 있다. 시민이 새 소리를 들으며 살 수 있도록 이동환 시장이 고양 시정을 이끌어 보길 제안한다. 새가 살기 좋은 도시는 사람도 살기 좋은 도시다. 다리 다친 제비 보살펴 주고 흥부는 큰 복을 받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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