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선유천 탐방길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한가로운 마을 
마을길 물길 사이좋게 걷는 가을 나들이  
소설가 떠난 빈집 마당엔 낙엽만 쌓이고… 

[고양신문] 지명에 신선 ‘선(仙)’자가 들어간 곳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옛날 옛적 신선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는 동네인 만큼 대개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들이다. 고양에도 그런 마을이 있다. 이름 그대로 신선이 내려와 유유자적하며 노닐 만큼 아름다운 동네, 선유동(仙遊洞) 바로 그곳. 동쪽으로는 일영로, 서쪽으로는 호국로가 지나지만, 그마저도 큰길과 마을 사이를 야산이 막아주고 있어서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조용한 동네다. 

신선이 노니는 땅에 물길이 빠질 수 없다. 선유동을 가로질러 흐르는 소박한 물길이 선유천이다. 개명산에서 발원한 선유천은 약 4㎞를 흘러 내려와 공릉천과 합쳐진다. 양주와 고양, 파주를 거쳐 한강으로 흐르는 공릉천이 고양시 구간을 흐르는 동안 가장 먼저 만나는 물줄기가 선유천이다. 울긋불긋 가을빛으로 물든 선유천을 따라 한가로운 나들이를 나서보자.   

국화 향기 가득한 불미지마을 

선유천 탐방길의 출발점은 선유천과 공릉천이 만나는 합류점이다. 이곳에선 콘크리트 교각이 두 개, 아치가 세 개뿐인 미니 철교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교외선 열차가 이 철교 위를 달렸지만, 지금은 철로 위에 잡초만 무성하다.  

선유동길과 교외선 철길, 선유천 물길이 만나는 동네 이름은 불미지(佛彌池)마을이다. 부처님과 미륵과 연못을 아우르고 있으니, 이름이 심상찮다. 옛날에는 마을 입구에 미륵 불상을 모신 큰 절과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마당 넓은 화원들이 모여 있다. 가을에 마을길을 걸으면 화원 마당을 가득 채운 향기 그윽한 국화꽃 화분들이 나들이꾼을 반긴다.  

불미지마을 화원 마당에 가득한 국화 화분.
불미지마을 화원 마당에 가득한 국화 화분.

만났다 헤어지기 반복하는 마을길과 물길 

선유천 탐방길은 폭이 넓지 않은 포장도로와 시멘트길, 농로길을 번갈아 밟으며 이어진다. 천변을 따라 이어진 논둑길을 걷기도 하고, 좌우로 수목이 울창한 마을길을 지나기도 한다. 

수량이 아주 풍부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물지도 않은 선유천 물줄기는 마을길과 만났다 헤어지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그때마다 사람의 길과 물의 길, 두 개의 곡선이 어우러지는 우아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특히 바닥이 암반으로 된 곡류 구간에선 제법 산골 계류(溪流)의 정취도 느껴진다. 그 풍경에 맵시를 더하는 것은 단풍이 곱게 물든 나무들이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물길 폭은 좁아지고 풀들이 왕성하게 둔치를 덮고 있다. 길 한쪽으로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가 마당을 호위하고 있는 오래된 기와집도 보인다. 길은 추수를 마치고 휑하니 바닥을 드러낸 논을 감싸 안으며 두렁을 따라 이어지다가 선유1교를 건너 선유동 마을회관에 닿는다. 경로당 간판이 나란히 내걸린 마을회관 마당에선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운동기구와 넓은 정자 쉼터가 따사로운 가을볕을 쬐고 있다. 

선유천에 깃들어 살아가는 생명들

선유천 탐방길을 걷다 보면 두 개의 입간판을 만날 수 있다. 하나는 ‘그린빌리지 선유천’ 안내간판이다. 녹색 하천을 중심으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건강한 마을 만드는 사업이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또 하나는 선유천에 터잡고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들이 그림과 함께 소개되어 있는 ‘선유천의 친구들’ 간판이다. 하늘에선 개개비, 꾀꼬리, 호랑지빠귀, 물까치가 날아다니고, 고라니가 뛰노는 물가에선 황로와 중대백로, 호반새가 물고기를 노리고, 물속에선 얼룩동사리와 버들치, 가재가 헤엄치는 풍요로운 생명의 그물을 보여준다. 

그린빌리지 '선유천의 친구들!' 안내간판.
그린빌리지 '선유천의 친구들!' 안내간판.

선유동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이호철 소설가 

선유천 나들이의 종점은 개명산 아랫자락에 자리한 군부대 울타리다. 물길은 울타리 안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나들이꾼은 이쯤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반환점에서 조금 내려오다 보면 검붉은 기와를 얹은 단층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너른 마당을 품고 있는 이 벽돌집에 머물렀던 주인장은 바로 분단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호철(1932~2016) 소설가다. 함경도 원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 징집되기도 했고, 1·4후퇴 때 혈혈단신 월남해 실향민이 된 이호철 소설가는 전쟁의 참상과 그리고 통일의 열망을 담아낸 작품들을 쓰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선유천 상류 서리골마을에 자리한 이호철 소설가의 집. 
선유천 상류 서리골마을에 자리한 이호철 소설가의 집. 

이호철 작가의 자택은 서울 불광동에 있었지만, 그가 오랜 기간 생각과 글을 다듬고 문단의 동료, 후배들과 문학 이야기를 나눴던 곳은 바로 이곳 선유동집이었다. 작가는 1988년 선유동 가장 안쪽 마을에 집필공간을 마련한 후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이곳을 창작의 산실로 삼았다.

또한 문인들은 물론 문학지망생과 독자들에게 소설을 함께 읽는 기쁨을 선사하고자 소설 독회와 단편소설 페스티벌을 이곳 선유동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열기도 했다.

작가가 떠나간 붉은색 벽돌집의 문은 굳게 닫혀있지만, 그가 가장 고요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마당에는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낙엽이 가을바람을 타고 차곡차곡 내려앉고 있다.  

이호철 소설가의 집 마당의 단풍나무와 사방이 유리문으로 된 작은 오두막. 
이호철 소설가의 집 마당의 단풍나무와 사방이 유리문으로 된 작은 오두막. 

놓치면 아쉬운 북한산 풍경 두 장면  

선유천 탐방길 인근에는 북한산이 멋지게 조망되는 포인트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서릿골길에서 오선누리길로 넘어가는 안장고개 숲길 초입이다. 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조금 올라가니 왼쪽으로 선유동 서리골마을과 노고산 능선, 그리고 멀리 북한산의 우람한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온다.

두 번째 포인트는 탐방길의 출발점에서 조망되는, 공릉천과 신선유교와 북한산이 어우러지는 경관이다. 선유천 나들이의 멋진 보너스 컷 두 장면 보고 나면 아, 이래서 신선이 이 동네에서 노닐다 갔구나, 하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안장고개에서 내려다 본 서리골마을과 북한산 풍경.
안장고개에서 내려다 본 서리골마을과 북한산 풍경.
선유천과 공릉천 합류지점에서 조망되는 공릉천과 신선유교, 북한산의 모습. 
선유천과 공릉천 합류지점에서 조망되는 공릉천과 신선유교, 북한산의 모습. 
선유천 맨 아래 지점의 교외선 미니철교.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선유천 맨 아래 지점의 교외선 미니철교. 여름에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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