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보고] 공릉천 하구 다시 가보니

포크레인에 파헤쳐진 공릉천하구 둑방길 
억새와 갈대 하늘거리던 수풀 사라지고 
생태교란 외래식물 단풍잎돼지풀만 무성 
되돌릴 수 없는 풍경, 속상하고 참담해  

하천정비공사가 진행되며 둑마루가 포장된 공릉천 하구 둑방길. 양 옆 경사면을 단풍잎돼지풀이 뒤덮고 있다.
하천정비공사가 진행되며 둑마루가 포장된 공릉천 하구 둑방길. 양 옆 경사면을 단풍잎돼지풀이 뒤덮고 있다.

[고양신문] 기자는 몇 해 전부터 거의 매주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코앞에 보이는 공릉천 하구(영천배수갑문~송촌대교 사이 3㎞ 구간)를 찾곤 했다. 탁 트인 풍광과 변화무쌍한 자연이 어우러진, 공릉천 하구만의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이 기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포크레인이 둑방길을 야금야금 파헤치는 모습을 목도하며 둑방길을 찾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다가 올해 봄, 공릉천 하천정비공사의 면모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부터는 아예 발길을 향하기가 주저됐다. 붉은 흙더미를 뒤집어쓴 둑방 사면, 콘크리트로 덮여버린 둑마루, 게다가 일명 ‘죽음의 수로’마저 깊게 파여버린 참담한 풍경을 두 눈으로 마주하기가 괴로웠기 때문이다. 

무서운 기세로 둑방길을 점령해버린 단풍잎돼지풀.
무서운 기세로 둑방길을 점령해버린 단풍잎돼지풀.

환경활동가와 생태전문가, 그리고 파주와 고양시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공사는 지난 4월부터 잠정 중단된 상태다. 그동안 공릉천 하구 풍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공사가 일단 멈췄으니 훼손의 시계도 멈췄을까? 천만의 말씀. 예상했던 대로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공릉천 하구 둑방길은 생태교란종 외래식물인 단풍잎돼지풀이 완전히 점령해버렸다. 

공릉천 하구 전체를 한 바퀴 돌면 약 7㎞ 코스가 되는데, 위쪽과 아래쪽, 이편과 건너편 가릴 것 없이 이미 전체 둑방길 경사면의 7할 이상을 단풍잎돼지풀이 잠식했다. 지금쯤이면 둑방에 길게 줄지어 서서 은빛 머리채를 하늘거리고 있어야 할 물억새도 몇몇 지점에서 겨우 눈에 띌 뿐이다. 포크레인 삽질이 시작되고 고작 1년 만에 그토록 풍성하고 다채롭던 식물 생태계는 말 그대로 작살이 나버린 것이다. 오래간만에 공릉천 하구를 찾아가서 이 꼴을 마주하자니 억장이 무너졌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뻔히 예상했던 결과였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풀줄기마다 씨앗을 가득 매달고 있는 단풍잎돼지풀. 
가느다란 풀줄기마다 씨앗을 가득 매달고 있는 단풍잎돼지풀. 

단풍잎돼지풀이 무서운 건 너무나도 강력한 번식 전략 때문이다. 가을이면 어마어마한 양의 씨앗을 생산해 주변의 흙속에 무작위로 심어놓는다. 이 씨앗들은 기존의 토종 식물들이 선점하고 있는 곳에서는 발아를 못 하다가, 땅이 파헤쳐지고 맨땅이 드러나게 되면 이때다, 하고 가장 먼저 무서운 기세로 싹을 올린다. 

그렇게 한번 자리를 잡으면, 웬만해선 다른 식물들에게 절대로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점령지를 이내 주둔지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전국 각지의 하천제방공사 현장에서 활약하는 포크레인들이 단풍잎돼지풀의 가장 고마운 번식 도우미 역할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다양한 종류의 풀들이 가득 덮고 있었던 공릉천 하구 둑방길의 예전 모습. 
다양한 종류의 풀들이 가득 덮고 있었던 공릉천 하구 둑방길의 예전 모습. 

수년 전만 해도 공릉천 하구는 단풍잎돼지풀이 미처 침범하지 못한 청정지대였다. 다양한 수목과 초본류가 서로 공생하며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기자가 날짜별로 폴더를 만들어 저장하고 있는 수많은 사진들이 당시의 아름다운 둑방길 풍경을 증언해준다. 그런데 그 기특한 녀석들을 아무런 보존 가치 없는 잡목, 잡풀로 취급하며 잘라내고 밀어내고 덮어버렸으니, 이제는 어리석음의 대가를 톡톡히 치를 일만 남았다.       

공사를 시작한 이들은 이리될 줄 몰랐던 걸까. 하천 주변 생태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단풍잎돼지풀이 얼마나 무서운 풀인지 너무도 잘 안다. 고양시 하천 수계별로 조직된 고양하천네트워크 활동가들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풍잎돼지풀 제거작업을 펼치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제거해도 체감되는 성과는 늘 미미하다. 워낙 넓게 퍼져 있고, 워낙 왕성하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쪽에서는 하나라도 더 제거하기 위해 애를 쓰는 단풍잎돼지풀을 한쪽에서는 시원시원하게 길을 터 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둑방 공사는 잠정 중단됐지만, 둑방길 진입로 공사는 다시 재개됐다. 11월 18일 모습.
둑방 공사는 잠정 중단됐지만, 둑방길 진입로 공사는 다시 재개됐다. 11월 18일 모습.

공릉천 하구에서 생태 모니터링을 해온 생태전문가와 환경지킴이 활동가들은 공릉천하구 하천정비공사의 근거서류인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가 수원청개구리, 금개구리, 뜸부기, 노랑부리저어새 등 멸종위기종이나 보호종들의 목록을 누락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생태 모니터링을 할 안목이 없어 매번 경관 모니터링이나 하고 돌아가는 기자의 눈에는 흙더미에 파묻혀 단풍잎돼지풀에게 속절없이 영토를 내어주고 사라져버린 잡목과 잡풀들의 운명도 보호종들만큼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립고 안쓰럽고 속상하다.   

파주시민들이 공사를 중단하며 내걸은 현수막. 
파주시민들이 공사 중단을 촉구하며 내걸은 현수막. 

 

아래 사진은 공릉천 하천정비공사 이전 공릉천 하구의 모습. 이제는 사진 속에서만 남아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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