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기업단지 3만여 평 개발
10만평 목표 이루면 고양 진출
분양한 땅 가치 오르면 큰 보람 
4전5기, 신뢰지키며 다시 성장

[고양신문] 도시개발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집 한 채 짓는 것도 복잡하고 힘든데, 수 천 평, 수 만평을 개발하는 사업이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호윤도시개발은 아파트단지 보다는 공업단지, 물류단지를 개발하는 전문기업이다. 일산신도시 개발초기에는 상가빌딩 분양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파주 곳곳에서 공장·물류단지를 개발하고 있다. 3천 평에서 3만 평에 이르는 땅을 매입해 토지를 조성하고, 공장과 물류창고로 분양한다. 그간 여러 차례의 시련이 있었지만 이제는 탄탄한 중견 개발기업으로 성장했다. 크게 4번 망했다. 3번은 금융실명제, IMF, 리먼 브라더스 사태 등 시장의 충격으로 망했고, 한 번은 사기꾼에게 걸려 들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개발 사업은 쳐다보기도 두려울 것 같은데, 김 태 대표는 시간이 갈수록 개발사업이 너무 재밌다고 한다. 천직이란다. 땅을 잘 고르고, 꼼꼼하게 추진하면 수익률도 높고, 나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땅을 분양 받은 사람들까지 함께 잘 되는 일이어서 더 좋다고 한다. 김 태 대표는 시련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개발사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91년 9월 27일. 5억 9천600만원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났다, 지금 돈으로는 60억 원 정도다. 비디오 제작 회사에 다니다가 비디오를 유통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금융실명제가 시행되면서 망했다. 잠깐 보험대리점을 운영하며 빚을 갚다가 큰돈이 안 돼 다시 비디오 유통을 했다. 당시 인기가 많았던 동물의 왕국 비디오 테이프를 여러편으로 나누어 대기업에 납품했다. 그 땐 비디오 테이프가 귀했던 때라서 고가에 팔 수 있었고, 돈도 많이 벌었다. 1년에 7~8억을 벌었다. 그런데 재미는 없었다. 친구에게 사업권을 넘기고 일산으로 들어왔다. 

그 때 선배가 일산신도시 오피스텔 분양사업을 한번해보라고 권유했다. 분양을 잘 마무리했는데, 분양 수수료를 제대로 안줬다. 그 일로 인해 누군가의 사업을 위탁받아 하는 일이 싫어졌다. 비디오 유통하며 벌었던 돈이 있어서 대행하는 일을 때려치우고, 땅 작업을 직접 시작했다. 첫 작업에서 사기를 당했다. 좋은 땅이 나와서 작업을 하려는데 나를 도와주겠다던 부동산업자가 미리 일부 땅을 사서 알 박기를 해버렸다. 다시는 동업을 안 하리라고 생각하고 혼자 덕이동 상가와 통일동산 땅 분양사업을 진행했다. 장항동 야쿠르트 물류부지 조성작업도 했는데, 그 일을 계기로 기업유치에 매력을 느꼈다. 내 적성에 맞겠다 싶었다. 

▍땅을 어떻게 찾나, 원칙이 있다면 
땅 작업은 감에 많이 의지한다. 시국, 금리 등 시장 상황은 큰 방향만 체크하고 현장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감으로 판단한다. 감은 어떻게 생기는지 잘 모르겠다. 머릿속에 이거다, 하고  잡힌다. 30년 동안 한길을 걸어왔으니 감이 생길만도 하지 않은가. 나름 큰 원칙이 있다면 제1자유로 제2자유로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자유로에서 가까운 땅을 작업한다. 파주의 개발 축은 통일로에서 자유로로 넘어왔다. 접근성이 좋으면 파는 건 문제없다. 땅의 가치는 도로와 교통 접근성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대로에 인접한 땅은 비싸다. 이후 길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땅을 잘 골라야 한다. 지금은 길이 없지만, 길을 내면 대로와 연결될 수 있는 되는 곳을 찾아야 한다. 개발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게 길을 확보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거다. 연천 적성 땅은 사지 않는다. 지금은 싸지만 매수자 찾기가 어렵고 회수가 느리다. 무조건 빠르게 수익을 회수할 수 있는 땅이 좋다. 

▍개발사업 과정이 궁금하다 
지나다니면서 보다가 괜찮은 땅이 있으면 그 땅을 계속 생각하면서 자료조사를 시작한다. 9시 10시에 자고 2시 전후에 일어나 생각하고 자고, 생각하고 자고, 늘 깨어 있는 상태로 있는 것 같다. 생각을 많이 한다. 사업부지 생각, 사업부지 개발에 대한 생각, 어떤 업종을 유치하는 게 맞는지, 유치 업종에 맞게 땅을 분할하고 비용을 산출하고 수지를 분석해 수익률을 예측한다. 그 다음 설계업체에 의뢰해 도로 모양과 인허가 리스크를 확인한 후 금액이 적당하면 매입작업을 시작한다. 5~6개 부동산업체에 의뢰해 매입하고 분양은 20여 곳과 협업한다. 유대관계는 다른 것 없다. 주기로 한 수수료 잘 주면 된다. 대부분 업체들이 작업 끝나면 수수료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나는 어김없이 2.5% 내외로 수수료 지킨다. 세금계산서 받고 투명하게 처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어려워도 정도를 벗어나면 안 된다. 당장에 수익에 눈이 어두워 위험한 땅을 선택하면 안 되고, 당장 한푼 더 얻자고, 남을 배신하거나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 개발사업은 신뢰가 무너지면 끝이다. 사기꾼 되는 거다. 나는 4번의 시련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누구를 배신하거나 약속을 안 지킨 적은 없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사기 치거나 속이는 일이 두려워서 나는 모든 과정을 내가 직접 확인하고 시행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업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맡았던 첫 사업은 파주 신촌동 공장부지 개발사업이었다. 비디오 유통사업을 할 때부터 잘 알고 있었던 대학 총장님이 재산관리를 맡아달라고 했다. 파주 신촌동에 총장님 땅이 3006평 있었는데, 이 부지를 공장부지로 개발해보겠다고 했더니, 쾌히 수락했다. 땅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고 공장부지로 조성해 분양하고 세금까지 낸 후, 수익을 총장님 손에 쥐어 드렸다. 총장님이 수수료를 제대로 주시더라. 교수들 재산관리를 많이 해줬는데, 수수료를 약속대로 준 사람은 총장님 한 분 뿐이었다. 이 사업은 내 인생과 내 사업의 씨드머니가 됐다. 그 분 재산관리는 아직도 내가 하고 있다. 

▍큰 시련도 4번이나 있었다.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나
4전5기 했다. 금융실명제, IMF,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 한번씩 망했고, 한번은 앞서 말한 사기꾼을 만나 망했다. 경북 상주 시골 깡촌에서 어렵게 자라서인지, 내게 있는 자산 하나를 꼽으라면 ‘의지’다. 의지가 나를 이끌고 온 것 같다. 보통 시련이 오면 자살할 생각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반성을 많이 한다.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다시 일어났던 것 같다. 나를 얼마나 크게 쓰려고 이렇게 시련을 많이 주나, 생각했다. 다시 기회를 잡고 일어났던 가장 큰 요인은 늘 깨어있었다는 점이다. 멍하게 있지 않고, 늘 생각하고 계획하려고 발버둥 쳤다.  

 ▍가장 어려울 땐 언제였나 
리먼사태 터지면서 집도 경매로 넘어가고 거지가 됐다. 보증금 1000만원 만 쥐고 있었지만, 다시 개발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다른 일에서는 도저히 비전을 찾을 수 없었다. 당장 먹고살아야 했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해서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만 2년 동안, 새벽 2시까지 대리운전 하고, 11시 쯤 일어나 부동산 일을 했다. 그 때 나의 은인인 대학 총장님이 나를 찾았다. 12년 동안 나를 지켜보다 자신의 재산관리를 맡아달라고 한 거다. 제대로 챙겨주신 수수료를 씨드머니로 삼아 신촌동에 사옥을 짓고, 새로운 부지를 개발 할 수 있는 초기 자금도 마련했다. 법흥리 사업지 4000여 평을 공장부지로 분양했고, 그 수익금으로 다시 맥금동 땅 3600평을 매입했다. 사업이 탄탄해지니 투자도 들어왔다. 3만 여 평의 부지작업을 추가로 진행하고 있다. 

 개발사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한번 망하면 크게 망하고, 한번 성공하면 크게 성공한다. 그런데 몇 번 망해도 한번 잘하면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다. 땅 작업 하는 것도 재밌다. 양파껍질 벗기듯이 인허가 사항을 꼼꼼하게 체크하고 할 건지 말건지 판단한다. 돈도 준비해야 한다. 어떤 용도로 개발해야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는지. 어느정도 수익을 낼 수 있는지 예측하는 일이 중요하다. 준비과정이 완벽할수록 실패확률은 낮아진다. 

 ▍보통 사람의 배포로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 수익나면 약속대로 어김없이 나누는 배포도 있어야 하고,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도 있어야 한다. 또 실패해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망해볼 만큼 망해봤고, 벌만큼 벌어 봤다. 시행의 메리트를 알고 있다

▍ 다른 업종에 비해 손익이 큰 편인가, 앞으로 전망은 어떤가
아파트 시행은 12% 내외 수익내면 진행한다. 수익률은 크지 않지만, 매출이 크니까 수익도 클 수 있다. 그러나 5년 10년 걸린다. 공장부지 개발사업은 규모는 작지만 회전이 빠르다. 빠르면 1년 길어도 3년 안에 끝난다. 수익률도 좋은 편이다. 30% 기준으로 한다. 규모가 작은 만큼 외적인 충격, 금융위기 등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익률은 매매가 시장가에 맞추어서 잡는다. 일방적으로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양경쟁력, 가격경쟁력 모두 있어야 한다. 안전하게 하면 전망은 좋다. 

▍고양시는 땅값이 많이 올라 개발수익을 얻기가 어려울 것 같다
4~5년 내에 10만평 개발하고 고양시로 나갈 계획이다. 고양은 땅값이 비싸도 자기자본이 확실하면 성공할 수 있다. 투자 자산이 1000억 정도 마련되면, 아니 700~800억 정도 되면 고양으로 갈 거다. 창릉신도시와 대곡역세권 등 제대로 조성되는 땅에 투자하고 싶다. 창릉LH 분양 상가빌딩과 아파트 시행, 테크노밸리 지식산업센터 등에 관심이 많다. 내가 살고 있는 고양에서 사업도 뿌리를 내리고 싶다.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내가 분양한 땅을 매입해 생산활동을 잘 하고 성장할 때, 땅값이 올라갈 때 보람을 느낀다. 그 기업들이 고용창출 잘 하고, 세금 잘 내면 간접적으로 사회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나와 회사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그런 사명감은 없을 텐데, 나름 나만의 철학을 가지고 개발사업을 진행한다. 나는 도로에 인접한 땅을 최대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래야 땅의 부가가치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신촌동 부지는 165만원에 분양했는데 지금 350만원 가고, 법흥리 부지는 165만원에 분양 했는데 지금은 250만원 이하에 못산다. 건물 빼고 땅값만으로도 대부분 수익을 봤다. 뿌듯하다. 

 ▍동국대 CEO과정 재태크 전공 1기 동문회장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재밌나 
동국대 부동산 학과를 졸업했는데, 공부하면서 그동안 폭이 좁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때문에 실망한 일이 많아서 사람들과 얽히고 섥히는 것이 싫었다. 30대 중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전국의 산을 다녔다. 금융실명로 60억 날려을 때 산에 다니면서 극복했다. 가부좌 틀고 반성했다. 왜 나는 이 자리에 있을까. 리먼사태 때도 북한산 백운대에서길을 찾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극복할까를 생각한다. 그래서 산이 좋다. 어느 정도 극복하니 혼자 다니는 것보다 같이 다니고 싶어서 등산동호회 들어갔다. 전국 산을 다녔다. 여유가 생기면서 인문학도 좋아하게 됐다. 배우는 것,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는 게 나쁘지 않다. 

▍꿈이 있다면 
5년 내 10만평 개발, 5년 내 1억 원 기부가 꿈이다. 나는 이제 사업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수명이 길어져서 나도 120살 까지는 살 것 같다. 아버지는 97세인데 아직도 건강하시고, 어머니는 94세에 돌아 가셨다. 장수집안이다. 지금 62세이니, 딱 반 살았다. 지금 시작하면 한 40년은 개발사업 할 수 있지 않겠나. 친구들은 다 정년하고 집에서 부부싸움 하느라 바쁜데, 나는 아침이면 출근하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개발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나에겐 행복이다.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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