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 아파트 입구서 제지당해
노조 “진입금지 차별철폐해야”
입주민은 “안전 위해 제지해야”
경비노동자 고충도 무시 못해

'배달 오토바이 진입금지 차별철폐' 기자회견 현장모습.
'배달 오토바이 진입금지 차별철폐' 기자회견 현장모습.

[고양신문] “크게 대우받길 원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 노동자로서 기본적 존중이면 충분합니다.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양보와 배려일 겁니다.”

배달플랫폼노동조합 경기지부(이하 노조)는 지난 27일 일산 두산위브 더 제니스 아파트(이하 제니스)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노조 측은 ‘배달용 오토바이의 아파트단지 진입금지’ 등 여러 차별 규정을 지적했다. 본 회견에 앞서 심의석 경기북부지회장은 “작년 9월, 진입금지 규정을 모르고 단지에 진입한 배달원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보안요원의 폭력이 있었다”라며 “개인신상정보를 기록하게 하는 차별적 관행도 타도하자!”라고 외쳤다.

현재 제니스의 용역보안업체는 본사 메뉴얼에 따라 배달원이 아파트 입구에 오토바이 주차 후 배달지(고객)까지 걸어서 음식물을 전달하도록 규정·통제하고 있다. 또한 단지 진입 시 개인신상정보를 적어야지만 출입 가능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복잡한 세대확인절차를 거치거나 입주민이 음식물을 직접 수령하려 내려와야 하는 등의 수고로움이 존재한다. 이에 반해 고정출입자로 등록된 택배 차량은 별다른 제한없이 아파트에 자유롭게 출입한다.

 

(가운데 앞)피해 배달원을 대신해 입장 표명 중인 경기북부지회 김영중 사무부장. (오른쪽 앞)경기북부지회장 심의석.
(가운데 앞)피해 배달원을 대신해 입장 표명 중인 경기북부지회 김영중 사무부장. (오른쪽 앞)경기북부지회장 심의석.

진입금지 규정에 대한 배달원들의 불만은 전부터 누적되어 왔지만, 크게 폭발한 것은 작년 가을이다. 지난 9월, 해당 규정을 모른 채 단지로 진입한 배달원이 헤드셋 때문에 보안요원의 경고를 듣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했다. 노조 측의 주장에 따르면, 항의하는 배달원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보안요원 3명이 집단폭력을 행사했다. 경기북부지회 김영중 사무부장은 “진압 과정에서 해당 배달원이 타박상·찰과상을 입었다”라며 “CCTV 영상 속 보안요원 가해 장면은 삭제되어 라이더 가해 사실만 부각되는 바람에 실제로 피해자에 해당하는 배달원이 피의자로 수사를 받았다”라고 밝혔다.

이에 제니스 관계자는 “오토바이가 지정 구역에 정차되지 않아 관련 규정을 안내하려 접근했고, 배달원이 항의하며 먼저 보안요원을 밀쳤다.”라며 “난동 중 보안요원의 옷이 찢기고 피가 나는 등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이며, 신고·수사 후 검찰에 송치되었지만 배달원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피해 보안요원과의 합의로 마무리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본 사건에 대해 경기북부지회 권혁진 조합원은 “이번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소위 ‘딸배’라는 멸칭으로 불리며 시민들의 기피 대상이 된 배달노동자가 환영받으며 일할 수는 없는 현 상황이 사무치게 서운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진보당 고양시지역위원회 이영춘 부위원장은 “배달노동자가 차별받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며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그래서 내가 무시해도 되고, 짓밟아도 되는 사람들은 절대로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함께 뭉쳐 노동자의 인격과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그날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문 낭독 중인 한은규 조합원.
기자회견문 낭독 중인 한은규 조합원.

모순되게도, 이 위원장이 말한 ‘짓밟히는 노동자’에는 제지를 ‘당한’ 배달노동자뿐만 아니라 제지를 ‘한’ 경비노동자도 포함된다. 제니스 보안실장은 “보안요원들은 입주민의 감정노동을 담당하며 주민들의 요구를 충족해야 하는 동시에, 배달원의 항의도 모두 감당해야 한다”라며 “어쩌면 가장 취약한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는 경비노동자일 것이라 밝혔다.

성수기 때는 최대 월 400만원의 급여를 받는 배달노동자와 달리 제니스 경비노동자들은 최저시급만 받으며 근무하고 있다. 배달원에게는 ‘배달’이 최우선이기에 갈등 발생 시 보안요원들에게 화를 내고 폭언을 퍼부어도 요원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만약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다가 입주민 혹은 배달노동자의 민원이 아파트·본사에 제기되면 해당 잘못을 경비노동자가 오롯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속이 없어 통제받지 않는 배달노동자와는 달리 본사의 제재를 받는 경비노동자들은 넘쳐나는 요구 속에 대책 없이 방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해당 규정에 대한 입주민의 의견은 어떨까. 제니스 입주민 A(66세)씨 는 “배달 오토바이 진입금지 규정은 안전한 단지 환경 조성을 위해 필수적이다”라며 “제니스 2700세대 중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가 1000명이 넘는다. ‘신속배달’을 표방하는 배달 오토바이의 경우 말 그대로 ‘시간이 돈’인지라 단지 내에서 빠른 속도로 운행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성인보다 반응속도가 느린, 뛰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오토바이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탄현동 두산위브더제니스 정문 모습. 1층이 전부 필로티 구조로, 오토바이가 통행하기엔 좁은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탄현동 두산위브더제니스 정문 모습. 1층이 전부 필로티 구조로, 오토바이가 통행하기엔 좁은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배달 오토바이에 대한 안전 문제는 지난 5년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제니스는 주상복합식 초고층 아파트로 바닥면적이 타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좁다. 고양 최대 규모의 아파트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2588세대가 입주해 있는 인근의 '큰마을 아파트'와 비교했을 때 바닥면적이 약 5분의 1에 불과하다. 부족한 바닥면적을 보완하기 위해 모든 건물의 1층이 필로티(기둥) 구조로 되어 있어 오토바이 운행 중 시야 확보, 급커브 등이 어렵다 보니 속도를 낮추지 않을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관리사무소를 관리하는 제니스 생활지원센터장은 “입주민과 배달원 간 큰 규모의 충돌사고가 최근 2021년 6월, 2020년 4월 두 건이나 발생했다. 이 밖에도 생활지원센터에서 확인한 자잘한 접촉 사고도 잦다”라고 밝혔다. 또한 센터장은 “단지 내 안전한 교통환경 조성을 위해 ‘입주민들이 식은 음식을 먹더라도’ 혹은 ‘배달원이 걸어서 배달하더라도’ 부득이하게 오토바이 진입 제한 규정을 마련했다”라며 “이에 그치지 않고, 배달원의 불편함을 고려하여 제니스로 배달오는 건에 대해 1000원에서 2000원의 배달료를 더 받도록 하고 있다. 실제 배달 시간도 1~2분 정도 더 걸릴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두산위브더제니스 전경. 초고층 주상복합으로 고양시 내에서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한다.
두산위브더제니스 전경. 초고층 주상복합으로 고양시 내에서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한다.

현실은 어떨까. 실제로 도보 배달 시 걸리는 시간을 기자가 측정했다. 제니스 정문 기준으로 오토바이를 입구에 정차하고 동 출입구까지 이동하는 데에는 평균적으로 약 35초가 소요되었다. 가장 가까운 동이 10초, 늦는 곳이 최대 1분까지 걸렸다. 아파트에 도착 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또한 평균 1분 정도였다. 최대 59층이나 되는 제니스의 특성상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몰린다면, 실 배달 시간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배달노동자 이헌(58세)씨는 “음식뿐만이 아니라 헬멧, 간이단말기 등 여러 보조 장비를 소지해야 하는 배달원에게 모든 짐을 들고 단지 내부까지 걸어오는 것은 큰 부담이다. 특히 추운 겨울에 꽁꽁 언 손으로 음식을 들고 갈 때면 가슴이 시린다”라며 “도보 배달 중 음식이 식거나 배달이 지연되어 이에 대해 항의가 들어오기도 한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오토바이 전용도로 마련 등 아파트 차원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당한 차별로부터 배달노동자를 관리하고 보호해줄 지자체의 도움도 필요하다. 남동호 경기지부 조직국장은 “2021년도 갑질 아파트 행태에 반발하여 인권위에 진정을 냈으나, 결과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관여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라며 “안전한 배달환경을 위한 조례 마련, 배달노동자에 대한 차별금지법 조항 추가 같은 열린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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