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범 개인전 <어떤 여행(un Voyage)>
~ 5월 7일, 공 갤러리카페

흘러간 시간의 흔적 캔버스에 표현
다양한 시리즈 작품 꾸준히 선보여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다섯 작품이 모인 '사계, 다시 봄’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다섯 작품이 모인 '사계, 다시 봄’

“삶이 곧 여행이고 여행이 곧 삶입니다.” 
권영범 서양화가의 여행에 대한 정의다. 권 작가는 일산서구 가좌동에 자리한 ‘공 갤러리카페(대표 구성욱)’에서 ‘어떤 여행(un Voyage)’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10일부터 5월 10일까지 계속되는 전시에서는 그의 작품 3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권영범 작가는 프랑스 랭스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고, 프랑스 살롱오랑쥬예술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했다. 1995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살롱전 및 공모전에서는 그랑프리를, 귀국 후 2008년에는 ‘제9회 포항국제아트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어떤 여행’ 시리즈를 비롯해 ‘일상’ ‘무제’ ‘장미 가족’ 등 구상과 비구상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권 작가의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계절이 익어가는 봄날에 공 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났다. 

권영범 서양화가 
권영범 서양화가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93년에 크레용 한 다스만 들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혼자 고군분투했어요. 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그림을 그렸고, 7년 동안 활동을 했습니다. 제가 살았던 랭스라는 도시에는 동양인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더 주목받고 도움을 받으면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01년도에 귀국을 했지만 학연과 지연, 인맥이 없어 작품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런 결핍이 오히려 저에게는 동력이 됐지요. 그림이 애증의 대상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고맙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작가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요?

평소에 여행을 좋아하는데요. 제가 유학을 간 것도 여행이었고 귀국한 것도 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곁에는 항상 스케치 도구가 있었고요. 99년도부터 여행 시리즈를 시작해, 25년째 이어오고 있지요. 저는 캔버스와 액자 틀을 직접 제작하는데요. 캔버스나 천, 나무를 사러 다니는 것도 저한테는 여행이에요. 계절을 바라보는 시간도 그렇고요. 여행이란 외부로 떠나는 것만이 아닌 내면으로 떠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권영범 작 '어떤 여행' 
권영범 작 '어떤 여행' 

전시 중인 ‘어떤 여행’은 몽환적인 느낌입니다. 작품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하얀 캔버스 위에 기초 단계의 붓질인 젯소를 바르고, 그 위에 유화를 엷게 칠해요. 그런 다음에 나이프로 물감을 올리지요. 자세히 보면 색이 입체적으로 올라가 있어요. 먼저 칠해진 색은 지워지고 그 위로 새로운 색이 덧칠되는 거지요. 지워진 색상들은 잊혀진 시간을 의미해요. 모든 시간은 흔적을 남기는데요, 캔버스 위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처음의 색상들은 기억, 아픔, 추억 등 지나가 버린 시간의 흔적을 의미합니다. 

작품마다 자리 잡고있는 덩어리는 삶의 터를 표현한 거에요. 그곳에 새겨진 표지판은 사회적인 약속이나 규칙, 혹은 삶의 방향성이나 의무일 수도 있고요. 삼각형이나 타원형 모양의 이정표에는 ‘SARANG(사랑)’이라고 쓰여 있거나, 하트나 느낌표가 하나씩 들어있어요. 우리의 삶은 흐릿한 이정표를 따라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에 벤치가 하나씩 놓여 있어요. 벤치는 휴식이나 또 다른 만남, 부재, 혹은 죽음을 의미해요. 이 일련의 과정을 저는 여행이라고 본 거예요. 그 중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이라는 다섯 점이 모여 ‘사계, 다시 봄’이라는 한 작품으로 완성되기도 하고요.

다른 작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시들어 버린 해라기를 그린 ‘시들지 않는 꽃’ 시리즈가 있어요. 보통은 해바라기를 부와 번영의 상징으로 생각하는데요. 저는 조금 달라요. 그리스 신화에서 물의 신 클리티에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를 사랑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아요. 클리티에는 하늘만 쳐다보다가 쓰러져요.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 해바라기지요. 거절당했지만 변하지 않는 사랑, 최선을 다한 사랑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시들지 않는다고 표현한 것은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그림 속 해바라기를 보고 ‘시들었다, 곧 쓰러져 버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예술은 서로 다른 것들을 재해석하는 과정이잖아요. 각자의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저처럼 바라볼 수도 있겠지요. 

‘풍경’ 시리즈도 있어요. 여행 중에 그냥 스치는 풍경들이 많은데요. 삶 속에도 이런 풍경이 있지 않을까를 상상했어요. 제 작품은 생활 속에서 나오는데요. 작가가 행하는 모든 것이 작품이어야 한다고 믿어요. 살면서 맞닥뜨리는 고난이나 어려움 등이 작품활동의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붓을 들다’라는 시리즈도 있는데요. 1호짜리 아주 얇은 붓으로 어떤 작품은 한 달 정도 짧게, 어떤 작품은 4~5년에 걸쳐 완성했어요. 붓을 든다는 것은 곧 내가 살아있음을 의미하지요. 붓을 들어 하루를 열고, 그것을 내리며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권영범 작 '붓을 들다'
권영범 작 '붓을 들다'

작업을 하면서 어려움이 있었다면요?

프랑스에서는 작업실을 지원받았는데, 우리는 그런 제도가 미흡한 것 같아요. 곳곳에서 묵묵히 작업하는 작가들을 발굴해서 지원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좋겠어요. 저 같은 경우도, 현재의 김포 작업실에 정착하기까지 열여섯 번이나 옮겨 다녔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랍니다. 

작가란 ‘희망의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작품 활동을 통해서 자기 내면의 어떤 것들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는 거지요. 그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내 주시길 바래요. 

개인전을 50회, 그룹전을 300회 이상 하셨는데요. 앞으로 계획은?

5월 6일부터 한 달 동안 판교에 있는 ‘아트스페이스 KC’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고요. 8월과 11월에도 전시일정이 잡혀 있어요. 전시에서는 항상 신작들을 선보이고 있어요. 작품은 변해왔지만, 앞으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꾸준히 작업할 생각입니다.

공갤러리 카페
주소 고양시 일산서구 송산로 387-18
문의  031-92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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