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우주분야 최고대학 걸고
학제개편하고 교수혁신 요구
홍남기 오현웅 등 석학 영입  
학교홈페이지 공개 글도 화제
고양이 고향, 각별한 애정 

[고양신문]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오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만큼 소중한 것이 없고, 사람이 변해야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간이 갈수록 짙어진다. 지역사회의 변화도 결국 사람으로 직결된다. 그래서 어느 곳이든, 사람이 바뀌게 되면 유심히 살펴본다. 한국항공대학교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지난해 총장이 바뀌고,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허희영 총장은 항공대가 모교다. 항공대 항공관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박사를 마친 후 모교 교수로 돌아왔다. 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로서, 국가 주도의 항공관리분야를 민간 주도의 항공경영산업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항공·경영분야의 학자로서 할 일은 다 했다는 허 총장은 지난해 교수 정년과 동시에 총장으로서 첫걸음을 내딛었다. 강단에서 내려와 경영 실전에 뛰어든 셈이다. 

허 총장은 총장이 된 후 긴장감을 놓은 적이 없다. 총장 취임 때, 항공대를 항공우주분야 최고의 대학으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목표는 국내가 아니다.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항공우주 특화 대학이기 때문에 세계의 항공우주 캠퍼스들과 경쟁해야 한다. 짧은 임기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반은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안고 있다. 첫 출발은 대학 내의 혁신이었다. 시대와 산업의 흐름에 맞게 학제를 개편하고, 국내 최고의 학자들을 교수로 영입하고 있다. 강의 평가제도를 강화하고, 성과급제도 도입했다. 교수들의 반발도 있고, 변화에 대한 부작용도 따르지만 감내할 작정이다. 무엇보다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고, 그들의 역량을 키워야 우주든 어디든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희영 총장의 삶이 담고 온 과거와 현재, 미래 이야기를 들어본다. 

 ▍우선, 지역사회에 대한 각별한 마음은 어디서 시작됐는지 듣고 싶습니다.
군대 기간 빼고는 다 고양에 있었어요. 춘천에서 나고 자랐지만, 항공대(항공관리학과)에 입학했고, 신혼도 행신 가라뫼에서 보냈어요.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박사를 마치고 다시 항공대 교수로 온 이후 한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특히 화전하고 뿌리가 깊은 거죠. 60년 70년대 화전골목 다방이 어땠고, 중국집이 어땠는지 알려주면 주민들이 깜짝 놀라요. 주민들하고는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죠. 화전이 허허벌판일 때 왔는데…. 화전 상가골목 활성화를 위해 착한가게 브랜드 캠페인도 하고, 회식도 하고, 축제 전야제 프로그램도 하면서 다양한 궁리를 하고 있어요. 

▍총장님 학교다니실 때 항공대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항공대는 6·25 전쟁 중인 1952년 6월에 만들어졌어요. 전쟁 중에 조종 통신 관리인력이 긴급하게 필요했고, 그 인력을 조기에 양성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했죠. 교통부 산하 교통고등학교 특설 항공과가 항공대의 시작입니다. 당시엔 부산에 학교가 있었어요. 그 후 63년에 국립항공학교로 전환됐고, 68년에 한국항공대학으로 출범했죠. 제가 대학다니던 시절엔 항공대가 서울대학교보다 좋았어요. 국립대학 특채과정이었기 때문에, 항공대 시험 먼저 보고 그 다음 서울대학교 시험보는 학생들이 많았거든요. 그때보다 학교 위상이 많이 떨어져서 안타까워요. 그렇지만 아직 자긍심은 높아요. 

▍모교 교수에서 다시 총장이 되셨으니 감회도 각오도 새롭겠어요. 
학교 위상을 어떻게든 높일 겁니다. 지난해 개교 70년 주년 기념식 때 약속했어요. 항공우주분야에서는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일단 ‘아시아 최고의 항공우주 종합대학’으로 슬로건을 만들었어요. 항공조종부터 드론, 자율주행, 도심항공모빌리티(UAM)까지 다 있으니 항공우주 종합대학으로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거든요, 항공우주 미래산업이 융합된 연구역량과 실무역량을 키울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있어요. 제 임기가 25년 12월이거든요. 그 때까지는 항공우주 분야 아시아 톱 대학으로 만들 거예요. 

 ▍요즘 허희영 총장님과 항공대가 지역사회 화두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인 총장과 다른 모습이고, 그래서 기대하는 바가 큰 것 같아요. 
지난 1년간은 공부했어요. 대학 발전 로드맵을 만들고 분위기도 끌어올리고. 이제 2년 차거든요.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바꿔야해요. 첫 과업은 학사구조 개편이에요. 3개 대학 3개 학부로 개편하고 있어요. 역동성을 잃은 학부들을 쪼개고, 학과도 시대 흐름에 맞게 세분화시켰어요. 교수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요. 교수 입장에서는 사실 변화가 좋지만은 않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저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하고, 소통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교수들과 학교 임직원, 학생들, 그리고 외부에서도 볼 수 있는 홈페이지에 총장의 메시지를 계속 올리고 있어요. 이 메시지를 통해 하고 싶은 말 다 해요. 비판도 하고 제안도 하고, 15번째 메시지를 올렸고 계속 올릴 생각이에요. 아마 총장이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직접 글 써 올리는 건 제가 처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안티도 많고 기대도 많아요.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 등 역량있는 학자들을 잇달아 교수로 영입해 화제가 되고있는데요. 인맥인가요, 능력인가요. 
대학의 수준은 교수의 역량과 직결됩니다. 큰 반발에 부딪히면서도 혁신하려는 이유도 바로 교수 역량의 강화를 위해서입니다. 없는 역량은 외부에서 찾아와야 해요. 대학에 앉아서 이력서를 받는 시대는 지났어요. 밖으로 나가서 인재를 찾아와야 해요. 카이스트는 해외 학자 발굴을 위해 부총장을 해외에 파견하고 있어요, 이론과 실무를 고루 갖춘 홍남기 전 부총리는 여러 대학에서 욕심내는 학자입니다. 삼고초려해서 모시고 왔어요. 인맥도 조건도 아니고, 연구 환경을 제대로 받쳐주겠다는 약속이 우선이었어요. 최근 인공위성 탑재분야의 최고 석학인 오현웅 교수도 모셔왔어요. 제 목표는 강소대학 ‘히든 챔피언’입니다. 독일 학자가 만든 말인데 규모는 작지만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을 히든챔피언이라고 해요. 서울 대학이나 카이스트하고 경쟁하는 대학이 아니라 항공우주분야의 최고가 되는 거예요. 국내는 경쟁이 없죠. 국제화에 공을 들여야 해요.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진학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 거예요. 매년 100명씩 외국 유학생을 선발해 국제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춰갈 예정이에요. 국제화의 관문은 교수진과 그 역량입니다. 교수 입장에서도 항공대는 경쟁력 있는 대학이고요. 

 ▍지난해 개교 70주년을 맞아 ‘항공우주분야의 아시아 최고 대학’이란 슬로건을 발표하셨다고 했는데, 핵심은 무엇인가요. 
이제 우주 시대가 열렸어요, 정부도 연내에 우주항공청을 출범시킨다고 해요. 우주 경제 발전 로드맵이 발표됐어요. 최근 국내 최초로 상업용 우주발사체가 만들어졌는데, 우리 항공대 졸업생이 만든 거예요. 기계과 90학번인데, 이노스페이스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했고, 그 기업에서 이룬 쾌거예요. 그런 스타트업들이 속속 나올 거예요. 특히 우리가 집중하는 분야는 우주발사체분야예요. 우주산업의 핵심이 탑재 기술이거든요. 발사는 잘 하는 곳이 많아요. 항공대는 우선 학부과정에 관련학과를 신설하고 우주시스템기술연구소를 만듭니다. 이달 22일 출범식이 있어요. 조선대에서 모시고 온 오현웅 교수가 맡게 되죠. 미국의 나사와 같은 일본 우주항공국에서 연구했고, 탑재체 분야의 최고 석학입니다. 드론과 자율주행 분야의 학과도 있고 연구소도 있어요. 자율주행의 핵심인 배터리분야 연구도 집중적으로 이루어질 겁니다. 항공대는 대학원과정을 보다 전문화하고 기업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거예요.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대학원에서 맞춤형으로 양성하고 바로 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거지요. 현대차그룹과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분야 복합기술개발을 위한 공동프로젝트도 시작했고 한화 등 많은 기업들이 항공대와 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대학과 산업이 협력해 항공우주산업과 드론 자율주행, 항공모빌리티산업을 성장시킨다면 대학도 산업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어요. 

▍고양시 입장에서도 항공대는 미래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큰 자산입니다. 어떻게 상생성장할 수 있을까요.
고양시가 드론센터를 만들잖아요. 고양시와 항공대가 힘을 모아서 드론산업 클러스터를 만들면 좋겠어요. 드론은 산업화가 됐기 때문에 투자할 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동환 고양시장님하고도 얘기를 했는데 생각이 같아요. 경기도나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져줘야 해요. 드론산업은 곧 자율주행 산업이에요. 핵심은 배터리 기술이에요. 항공대는 드론공학과 자율주행학과 등 관련분야 교육과 연구, 기술이 집약돼 있어요. 대한민국 드론 자율주행 클러스터는 고양시와 항공대가 만들어야 해요. 

▍항공대 최고경영자과정이 큰 호응을 얻고 있어요. 무엇보다 이 과정을 쭉 맡아오신 총장님이 형님처럼 아우처럼 지역기업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점이 다르다고 해요.
2010년 제가 학장할 때예요. 지역사회에서 기업인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경영자과정이 성공할까 우려도 많았는데, 성공했어요. 지금 13기인데 수료생 모임이 경기 북부에서 가장 활성화된 경제단체가 됐어요. 우리가 한 400명 넘어요. 나름 기준을 가지고 수강생을 선발했어요. 업종도 겹치지 않도록 고려하고, 피해야 할 업종은 피했어요. 참여 기업인들의 기업 현장에 거의 다 가보거든요. 현장에서 경제쟁점에 대해 토론도 하고 그래요. 그러면 기업인들마다 참 존경스러워요.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도 내고, 우리 사회가 돌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잖아요. 그분들 한분 한분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지원해요.   

▍그간의 삶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시간을 잘 쓰는 거예요. 보통 10시에 자서 새벽 3시에 일어나요. 새벽 5시 전까지 개인적 업무를 끝내고 5시부터는 운동을 해요. 저녁약속은 가능하면 안 잡고, 주말엔 잠을 많이 자요. 총장이면 보통 저녁 시간에 약속이 많은데 가급적 안 쓰려고 그래요. 그런데 중요한 자리는 피할 수가 없거든요. 젊었을 때부터 연구만 한 게 아니라서 시간 활용에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것 때문에 제일 힘들어 했어요. 사람도 만나야 하고, 술도 한잔 해야하고, 공부도 해야하고, 책도 써야하고, 건강도 챙겨야 하고…. 인생 최대의 과제가 시간 활용이었던 것 같아요. 점심은 20년 넘게 늘 도시락을 싸왔어요. 점심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요. 총장이 된 이후로는 교수들과 도시락 소통을 자주 하죠. 

 ▍총장의 권위를 내린,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인맥도 좋으시다고 하던데 학교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아버지가 3살 때 돌아가셨어요. 5남매 중 막내였는데,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뭐 안 시켜주는 거예요. 옛날엔 치맛바람이 셌잖아요. 가장 든든한 인맥인 아버지가 없는 것이 아픔이었어요. 아마 그때부터 콤플렉스가 있었는지, 젊어서부터 사람의 소중함을 깨달았던 것 같아요. 만나는 모든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그래서 인맥도 좋은 편인데, 모두 학교를 위해 쓸 거예요. IQ보다도 EQ 좋은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제일 중요한 게 공감할 수 있는 거. 상대의 정서를 읽고, 판단하고,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일이 즐거워요. 사람 만나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즐거워요. 그래서 기업인들과도 형님 동생 하면서 친밀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권위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권위는 그들이 만들어주는 거니까요. 

▍지역사회와 더불어 하고자하는 일이 있으시다면.
저는 평생 경영을 가르친 사람이에요. 우리 학교가 있는 화전지역이 고양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보니, 화전을 활성화시키는 일에 참여하고 싶어요. 그래서 학생들과 연합해 화전 상권 착한가게를 선정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하려고 해요. 현재 청춘상회라는 고깃집 하나가 선정됐는데, 거기서 학생들과 ‘총장과의 대화 마당’을 열었어요. 착한가게를 계속 늘려갈 예정이에요. 그렇게 좋은 모델이 만들어지면 다른 상가들도 따라서 바뀔 수 있을 거예요. 올해 5월 학교 축제에 맞춰 화전상권을 집중 이용하는 화전경제활성화 캠페인도 시작합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대학 사회가 변하고 지금 구조조정 시작됐잖아요. 이제 적자 생존인데 환경에 적응하는 대학만 살아남을 겁니다. 아마 30% 이상 무너질 거예요. 항공대는 고양시라는 엄청난 도시를 배후에 두고 있고 그래서 지역하고 대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려고 해요. 특히 시민을 위한 평생교육기관이 돼어야 해요. 지역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찾아내야 해요. 드론 교실, AI 교실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과 시민교육을 매칭해야 됩니다. 자격증도 주고, 직업과 연계시키고, 대학의 신모델이죠. 지금 한창 구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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