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서 만나는 한국전쟁의 역사]
① 곳곳에 자리한 호국보훈장소

치열한 공방전 한복판에 있던 고양 땅
반공지하결사대 태극단의 목숨 건 활약
행주산성으로 진격한 해병대 도하 작전
고귀한 희생 증언하는 참전비와 기념비

고양현충공원 현충탑 조형작품.
고양현충공원 현충탑 조형작품.

[고양신문]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6·25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기리는 여러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고양 땅 역시 전쟁의 참화를 고스란히 겪은 땅이었다. 전쟁 발발 3일만에 인민군에게 점령당한 후 수차례 빼앗기고 되찾기를 반복했던 혼돈의 땅. 승리의 영광 이면에 희생의 아픔이 동반됐던, 한국전쟁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들을 찾아가보자.

영령들의 넋 기리는 고양현충공원

고양의 호국보훈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나들이의 첫 일정은 일산서구 덕이동 ‘고양시 현충공원’에서 시작한다. 2010년 태극단 묘역 일대를 새롭게 정비하며 만들어진 현충공원에는 충혼탑과 현충탑, 고양지역 6·25참전 호국영령 417위를 모신 위패봉안실 등이 자리하고 있고, 공원 서쪽 언덕 태극단 묘역에는 한국전쟁 당시 고양지역에서 반공지하결사대로 활약하다 희생당한 태극단유공자 54위가 잠들어 있다. 

또한 공원 입구에 자리한 고양시 현충전시관에서는 명봉산전투, 고봉산전투 등 고양지역의 한국전쟁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시물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관 지하로 내려가면 한국전쟁의 생생한 현장들을 기록한 사진들과 함께 총알자국이 선명한 무명용사의 철모 등 처절함이 묻어나는 전쟁유물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②고양지역 반공지하결사대로 활약한 태극단 묘역. 
②고양지역 반공지하결사대로 활약한 태극단 묘역. 

서울탈환 교두보, 행주 덕양산을 확보하라!        

이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행주동으로 가보자. 전쟁 초기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던 국군과 UN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 세계전쟁사에 남을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수도 서울을 탈환하려면 또 하나의 상륙작전이 성공해야 했다. 바로 천연의 방어선인 한강을 건너는 것. 임무를 부여받은 한미연합해병대가 선택한 도강 포인트는 바로 행주나루였다. 400여 년 전 권율장군이 왜적과 회심의 일전을 치른 덕양산 일대가 이번에도 전쟁의 명운을 가를 무대가 된 것이다. 

비록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연합군쪽으로 기울었다고는 해도, 마지막 보루를 지키려는 인민군의 저항도 거셌다. 한미연합해병대는 19일 1차 교전, 20일 도하작전을 펼친 끝에 한강을 건너 125고지 덕양산 정상을 차지함으로써 서울 탈환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해병대 장병들의 희생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서울 탈환의 교두보를 마련한 한강도하작전 성공을 기념하며 세워졌다.  
해병대 행주도강 전첩비. 서울 탈환의 교두보를 마련한 한강도하작전 성공을 기념하며 세워졌다.  

행주산성 주차장이 바라보이는,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서 있는 ‘해병대 행주도강전첩비’는 그날의 빛나는 승전에 대한 증언이다. 두 개의 하얀색 삼각형이 마주하고 있는 비의 모습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작전을 함께 완수한 한국과 미국 해병대의 우정과 기상을 보여준다. 1958년 해병대 사령부에서 건립한 비문에는 ‘자유의 신으로 승천한 그대들의 빛나는 공훈과 아름다운 이름은 저 한강수와 더불어 이 국토와 겨레의 마음속에 영원무궁히 흐르리라’는 문구로 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아래쪽에는 한국전쟁 당시 상륙작전에서 활약했던 수륙양용장갑차도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에 행주도강전첩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조차 많지 않다. 다채로운 힐링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는 행주산성의 스토리텔링에서 한국전쟁 행주도강의 자랑스러운 역사도 빠져서는 안 되겠다.     

행주도강전첩비 아래에 전시된 상륙작전용 장갑차.
행주도강전첩비 아래에 전시된 상륙작전용 장갑차.

기억해야 할 해외참전국의 희생 

한국전쟁은 국군과 연합군이 피를 나눈 전쟁이었다. 해외에 군대, 또는 군수물자 지원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신중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오늘날의 국제관계에 비추어보면, 한국전쟁 당시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동방의 작은 나라를 돕기 위해 무려 16개 국가의 군대가 참전했다는 사실은 실로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에티오피아와 같은, 현재의 국가적 위상으로 보면 대한민국보다 훨씬 국력이 왜소한 나라의 젊은이들도 한반도의 산하에서 피를 흘렸다. 그중 한 나라가 필리핀이다.

통일로변에는 자유를 염원하는 군상이 부조된 넓은 기단 위로 하얀 탑신이 하늘을 향해 기운차게 내뻗은 ‘필리핀군참전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1500여 명의 장병들을 파병한 필리핀군은 전·후방 전선을 오가며 중요한 전과를 세웠다. 1974년 건립된 참전비의 비문은 ‘태양같이 밝고 불타는 정열의 기상을 지닌 삼성좌(필리핀 국기에 그려진 세 개의 별)의 용사들!’이라는 문구로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488명 필리핀 전사자들을 호명하며 영령을 위로하고 있다. 

필리핀군참전기념비의 조형작품.
필리핀군참전기념비의 조형작품.

6·25참전비와 참전용사 어르신들

필리핀군참전기념비 바로 옆에는 조금 작은 규모로 ‘고양시6·25참전기념비’가 서 있다. 2001년 처음 건립돼 2011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된 비석은 고양지역 출신 6·25 전몰장병들이 숭고한 넋을 위로하고, 참전용사들의 빛나는 전공을 기리고 있다. 참전기념비 좌우의 검은 석비 전면에는 기념비에 바치는 글과 6·25의 노래가 나란히 적혀있고, 뒷면에는 고양지역 호국영령들의 출신지와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필리핀참전비 인근에는 과거 통일로휴게소로 운영됐던 팔각정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고양시지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참전용사 어르신 세 분을 우연히 만났다. 가슴에 반듯하게 찬 참전유공자 배지가 자랑스레 반짝인다. 한국전쟁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하자 90이 넘은 노병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짧은 대화를 마치며 마음 깊은 감사를 담아 인사를 올린다. 
“어르신들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건강하고 평안한 여생 보내세요.”

6.25참전유공자회 사무실 앞에서 우연히 만난 신영복 회장(가운데)과 이영상·이재도 참전용사 어르신.
6.25참전유공자회 사무실 앞에서 우연히 만난 신영복 회장(가운데)과 이영상·이재도 참전용사 어르신.
태극단의 활약을 담은 전시 사진들.
태극단의 활약을 담은 전시 사진들.
고양현충전시관에 전시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
고양현충전시관에 전시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
고양시6.25참전기념비. 
고양시6.25참전기념비.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탑신이 인상적인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탑신이 인상적인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관산동 태극기공원. 인근에 6.25참전유공자회 고양시지회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관산동 태극기공원. 인근에 6.25참전유공자회 고양시지회 사무실이 자리하고 있다.
필리핀군참전기념비 광장의 6.25 참전국 깃발. 
필리핀군참전기념비 광장의 6.25 참전국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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