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최소리 개인전 <소리를 본다>

유명 밴드 드러머·뮤지션으로 활동하다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화가로 변신
활발한 작품활동, 해외에서도 큰 반향 
~7월 31일, 아트인동산 일산갤러리

알루미늄판을 그라인더로 갈아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최소리 작가. [사진=아트인동산)
알루미늄판을 그라인더로 갈아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최소리 작가. [사진=아트인동산]

[고양신문] 최소리 작가는 소리를 그리는 예술가다. 그의 그림은 열정적인 연주로 만들어진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 행하는 타악 퍼포먼스를 보고 있노라면, 관객들은 매혹적인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의 미술 작품에서는 소리가 넘쳐흐르고, 그의 음악 공연에서는 색깔이 새어 나온다. 그는 소리의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색깔의 구분을 넘나들기도 한다.

세계적인 퍼커셔니스트, 타악솔리스트, 록밴드 ‘백두산’ 드러머, 최소리 작가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작년 10월, 성석동에 위치한 ‘아트인동산 일산갤러리(관장 정은하)’의 개관전에서 그가 들려준 ‘소리금’ 연주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름도 생소한 악기인 소리금을 그가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 제대로 갖춰진 무대가 아니었음에도 혼신을 다한 그의 연주에 많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1일부터 이곳 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 <소리를 본다>가 진행 중이다. 음악가였던 그가 화가가 된 계기는 한쪽 귀의 이상 때문이었다. 음악가에게 절대적인 청력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그는 드럼 스틱을 집어 던졌다. 그 순간 벽에 스크래치가 길게 나는 것이 마치 작품처럼 보였다. 그때 그는 소리를 듣는 것만이 아니고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행위를 화폭이나 캔버스에 남겨서 소리를 보여주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가 작품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혹은 그가 추구하는 것은 뭘까. 
“<제5원소>라는 영화가 있는데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재료들은 4개의 원소, 물, 불, 흙, 공기이지요. 다섯 번째 원소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는 그것이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네 가지의 원소와 잘 버무려져 나라는 존재가 완성되고 이 세상을 살아가지요. 제가 작업하는 것 중에는 물을 이용한 작업이 있고, 불로 그린 그림이 있고, 흙이나 나무 밑에서 오랜 시간 자연이 그려 낸 것을 작품으로 만들기도 해요. 바람이나 공기를 이용한 작업도 있고요.”

최 작가는 지금도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이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은 그걸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지리산은 원소들과 그와의 만남이 이뤄지는 장소였다.
“저를 하나의 원소로 봤을 때 나머지 원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제가 자연을 닮아야 하잖아요. 지리산에 갔던 이유이기도 해요.”

신작 Visible Sound(Song of Forest )
신작 Visible Sound(Song of Forest )

그의 예술적 베이스는 음악에서 출발한다.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타악기를 오래 연주해서인지 화성보다는 울림과 파장이 그에게는 더 친숙했다. 파장은 작업의 주제였던 원소들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됐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도 소리가 없으면 재미없게 마련이죠. 아무리 강렬한 소리를 들어도 영상이 없으면 감흥은 떨어지고요. 현장에서 라이브로 콘서트를 본다고 하지만, 사실은 소리를 보는 것이에요. 제가 ‘소리를 본다’는 말을 몇십 년째 하는 근거입니다.”

최 작가가 연주할 때 보여주는 제스처나 퍼포먼스는 소리의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뜻일 게다. 그가 들려주고자 하는 소리, 그 메시지는 바로 다섯 가지 원소에 대한 이야기 임에 분명하다. 

“저는 아티스트이지만, 그보다 먼저 인간으로서 느끼는 게 있잖아요. 비가 와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걸 보고도 느낌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생으로 비유할 수 있고, 거기서 뭔가 교훈도 얻을 수 있지요. 그런 것들을 작품화하는 거예요. 그들의 이야기를 제가 대신해 주는 거죠. 제 예술의 정체성은 거기서부터 비롯된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와 에너지에는 그들만의 메시지가 있어요. 저는 그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단순한 전달자에 불과하지요. 목사님은 설교로, 선생님은 강의로, 저는 그림이나 음악으로 하는 거죠.”

철판을 스틱으로 세게 두드려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최소리 작가. [사진=아트인동산]
철판을 스틱으로 세게 두드려서 흔적을 남기고 있는 최소리 작가. [사진=아트인동산]

그의 작품에는 ‘바람 시리즈’가 있다. 같은 바람이라도 오늘의 바람과 어제의 바람이 다르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바람이 전부 다르다. 그런 바람처럼 어제의 그와 오늘의 그, 그리고 내일의 그가 다를 것이고, 그의 작품도 그럴 것이다. 

‘소리 시리즈’는 알루미늄 캔버스에 물감을 부어놓고 드럼 스틱을 두드리면서 완성했다.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두 번, 세 번, 여러 번에 걸쳐 진동의 층들이 계속 겹쳐진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컬러 별로 깊이감이 켜켜이 중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판이나 알루미늄판을 그라인더로 갈거나, 스틱으로 연주했던 흔적을 남긴 상태에서 특수 안료로 채색한 작품은 입체적이다. 마치 용암이 분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음대나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 음악을 할 때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힘들었는데, 미술도 그렇게 하니 힘들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남들이 요구하는 그림을 그려야 하고, 그렇게 해야 성공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기준에 맞춰 작업을 시작하는 순간, 지속적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의 작품을 고집한다. 

“저는 아마 죽을 때까지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할 거예요. 작업에 제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재료나 크기, 비용 같은 것들은 가능하면 무시하죠. 100호짜리 캔버스 100장을 하루 만에 전부 소비한 적이 있어요. 보통은 1년 내내 그려도 100장을 다 사용하지 못하는데 말이에요.”

몇 년 전, 지리산에 첫눈이 엄청나게 내렸다. 산속 마당 뿐만 아니라 온 천지가 하얗게 변했는데 놀라운 풍광이 펼쳐졌다.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물감을 눈 위에 뿌리고 판화를 찍듯이 캔버스 100장을 눌러서 찍었다. 100장 중에 3점만 건지고, 97점을 버렸다.

신작 Visible Sound(Song of Forest 2)
신작 Visible Sound(Song of Forest 2)

그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전시를 하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게 그의 전시다. 전시장에는 항상 천 명에서 이천 명씩 찾는다. 독특한 기법과 특별한 스토리를 간직한, 파격적이고 정형화 되지 않은 작품들을 선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고양신문에만 살짝 공개한다며 “최근에 미국의 갤러리 2곳에서 전속 작가로 러브콜을 받았다. 곧 계약을 맺을 것 같다”는 소식을 들려줬다. 세간의 말들을 무시하고 묵묵히 작업을 해 온 그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원한다. 

아트인동산의 정은하 관장은 최 작가를 이렇게 말한다. 
“최소리 작가는 2007년에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생애 첫 초대 전시를 했어요. 그전에는 음악으로 세계 시장을 돌아다녔고요. 최근 들어 국내외의 여러 전시를 통해 활동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데요. 올해 2월과 5월, 미국의 LA와 뉴욕에서 열린 아트페어 참가가 무척 성공적이었어요. 작품도 여러 점이 판매되었고요. 올 9월에는 일본 후쿠오카 아트페어에도 방문하려고 해요. 우리나라, 특히 고양시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최소리 작가는 스틱을 들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음악은 언제 하세요? 음악은 이제 안 하세요?”라고 물어보는 이들이 가끔 있지만, 이제 그는 작품 안에서 연주를 하고, 연주 안에서 작품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가 작품하는 장면을 현장에서 보고 있자면, 음악이 그림이 되고, 그림이 음악이 되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그것들은 작가의 내면에서 하나로 승화됐다. 그의 신작을 포함해 4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7월 31일까지 계속된다.

아트인동산 일산갤러리 (문화휴식공간 동산)
주소 고양시 일산동구 고봉로551번길 17
문의  010-8941-0344 (일요일 휴관)

Visible Sound(Untitled)
Visible Sound(Untit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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