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작가
이인숙 작가

[고양신문] 하늘에서 바라본 갯벌,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는 갯벌이 그려내는 물길은 한 폭의 추상화였다. 갯벌에서 살아가는 별처럼 많은 생명들, 진흙 속에서 조개가 고개를 내밀고 게들은 집을 짓고 고둥도 기어 나와 모래밭 위에 그림을 그린다. 

  다큐 영화 <수라>는 간척공사가 시작되기 전 서해 군산 주변 갯벌이 살아있을 때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으로 시작한다.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생생한 생명들의 향연, 반짝이는 금빛 모래와 조개를 채취하는 어민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이제는 사라져버린 갯벌과 함께 피폐해진 현실과 대비된다. 

  1991년에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서해 군산 주변 갯벌에 33킬로미터에 달하는 둑을 쌓아 바다를 메우고 거대한 농토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쌀 소비량은 줄어들었고 정부의 쌀 수매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는 요즘 처음의 계획은 아무 의미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공사는 계속되었고 세계 최대 규모의 방조제가 생겼다. 세계 최대의 방조제는 세계 최대의 생태 파괴를 가져왔다. 바닷물을 기다리며 땅속에 숨어있던 조개들이 폭우가 내리자 바닷물이 들어온 줄 알고 모두 밖으로 기어 나왔다. 짠물이 아닌 민물을 맞고 입을 벌린 채 죽어간 조개들의 주검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갯벌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대량학살의 현장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바깥쪽은 푸른 바다, 안쪽은 검은색의 썩은 물이 확연히 대비된다. 

  갯벌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어민들은 갯벌이 주는 풍요로운 선물 덕에 자식들을 공부시키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하루벌이가 쏠쏠치 않았던 어민들은 이제 자동차가 달리는 새만금방조제 도로에서 청소를 한다. 갯벌에서 며칠 벌이도 안 되는 돈을 한 달 수당으로 받으면서 일하는 어민은 옛날 얘기를 하면서 눈물짓는다. 

  누구는 거대한 ‘뻘짓’이라고 부르는 간척사업은 삼십 년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처음의 목적은 쓸모없어지고 농업용지는 산업단지로, 다시 태양광 부지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군산 신공항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다 끝난 줄 알았던 간척사업, 갯벌도 다 죽었다고 믿었는데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말라버린 갯벌에 새들이 깃들고 알을 낳고 품는다. 갓 깨어난 어린 새를 다리 밑에 품는 흰물떼새의 조심스러운 몸짓,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새의 사랑스러움. 법정 보호종인 이름 모르는 게도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을 피해 숨어 지내던 생명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조금씩 고개를 내민다. 군산의 수라 갯벌, 거대한 제방에 가로막혀 말라버린 갯벌 한 귀퉁이에 잔존하는 아슬아슬한 생명들, 그들은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이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은 카메라를 들고 말라버린 수라갯벌을 드나들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생명들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있었다. 새만금에 이렇게 매달리는 이유를 한 활동가는 ‘아름다움을 본 죄’라고 말한다. 메마른 갯벌 여기저기에 풀무더기가 있고 가느다란 물줄기가 어렵사리 흐른다. 황량하게 보이는 그 안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는 생명들의 아름다움을 감독과 활동가들은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그러나 새끼를 품은 갈매기 바로 옆에서 신공항을 위한 매립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지방 공항의 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 굳이 마지막 남은 수라갯벌까지 매립해서 신공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옆에 있는 미군 기지를 위해서라고 한다. 미군은 왜 굳이 그 남쪽에 공항을 필요로 할까.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기대하는 자연 다큐의 아름다움은 수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온 하늘을 덮으며 날갯짓하는 데서 절정에 이른다. 도요새들의 군무를 보면서 문득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가 떠올랐다.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새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하는 시인의 소망이 귓가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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